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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설교일2024.07.28 말씀시편 31편 11-15절, 사도행전 13장 36절 상반절 설교자석기현 은퇴목사

    2024.07.28 주일대예배

    2024′경향의 강단(32)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시편 31편 11-15절, 사도행전 13장 36절 상반절

    석기현 은퇴목사

    제가 입대해서 논산 훈련소에 입소한 후 며칠 지났을 때, 우리 연대의 전 훈련병이 다 연병장에 모여서 연대장의 훈시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단에 오른 연대장께서 거두절미하고 하신 말씀이 “너희들의 목숨은 지금부터 삼 년간 나라가 맡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의 목숨은 이제부터 3년 동안은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국가의 소유물이나 마찬가지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미국에서도 군인을 가리켜 ‘G. I.(government issue)’ 즉 ‘관급품’이라는 말로 칭할 때가 있는데, 이 말 역시 군인은 국가가 소유하고 국가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재산과 같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저는 연대장의 그 훈시를 듣는 순간 ‘내가 이제 진짜로 군인이 되었구나.’라고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에 있을 때 ‘저기 사람 하나, 군인 하나 간다.’라는 농담을 흔히 들었는데, 제가 바로 그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국가가 맡아서 마음대로 쓰는 군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복무연한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군인이 된다는 것은 그 1년 반만큼은 자기 인생이 자기 것이 아니라 국가에 맡겨진 생명이 되는 것만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한 일이기는 하지만, 자기 인생의 일정한 기간을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어쨌든 희생정신을 요구하는 일이며 어떤 사람은 그것이 싫어서 어떻게 해서라도 빠져나가려고 병역기피까지 하는 것입니다.

    일생의 대부분을 사실상 군인으로 살았던 다윗은 이 점에 있어서 남달랐습니다.
    그는 어느 일정한 기간이 아니라 아예 자신의 일평생을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맡겨놓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생애는 결코 부자유스럽거나 불만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또한 보람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이 시간 저는 자신의 전 인생을 오직 하나님께 의탁하고 헌신하는 성도가 누리는 은혜와 복이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에게 자기 인생을 맡긴 성도는 ‘환난 시대에도 반드시 구원받게’ 됩니다.

    시편 31편 11절부터 15절에서 다윗은 “11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13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 빠져 있는 상황은 정말 절박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쫓김을 당할 때, 또는 자기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반역을 당해 피난길에 오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의 “대적”들 뿐 아니라 “이웃”으로부터도 온갖 “욕”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 “친구”인 줄 알았던 자들로부터도 냉랭한 외면과 배신을 당했으며, 심지어 “길에서 보는” 백성조차 자기를 피해가는 철저한 소외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런 처지에 빠진 다윗은 12절과 13절에서 자기 자신이 마치 이미 “죽은 자”와 같고 “깨진 그릇”보다 못한 존재처럼 여겨졌다고 했습니다.
    그의 인생 주변에는 오직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움”이 가득할 뿐이었으며, 그를 “치려고... 의논하며” 그의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는” 원수들만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풍전등화요 사면초가였던 것입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다윗은 14절에서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라고, 실로 불굴의 ‘죽지 않아!’를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곧이어서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라고 그 ‘의지하는 바’를 고백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나의 앞날’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문자적으로 ‘내 시간, 내 때’(my times)라는 뜻입니다.
    즉 ‘내 생명의 모든 순간’ 혹은 ‘내 생애의 모든 단계’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나의 전 인생’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 다윗이 그처럼 막다른 골목, 그 벼랑 끝 같은 처지에까지 몰리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때가 바로 ‘사울이 왕권을 잡고 있던 시대’이며 ‘압살롬의 반역도당이 대세를 압도하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우주의 시종부터 시작하여 역사의 모든 순간, 그리고 각 개인의 인생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시간의 소유주와 주권자는 오직 그 시간의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뿐이시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세상의 그 어떤 강력한 대적도 그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하나님께 맡겨져 있는 자기 인생의 앞날을 어느 한 시대는 물론이요 단 한 순간이라도 결코 빼앗아갈 수는 없다고 확고부동하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 개인에게는 분명히 역경이 있었으며, 다윗 자신의 생애 중에는 죽을 고비의 순간도 무수했습니다.
    다윗의 나이로 따져볼 때는 환난의 연속 가운데 매일을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고, 연대별로 따져보면 실패한 해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완전패배’는 결코 없었습니다.
    곧이어서 17절에 나오듯이 그 모든 역경의 사건과 환난의 시대도 결국에 가서는 그의 ‘원수’들이 “부끄럽게” 되고 그를 ‘핍박하던 악인’들이 “스올에서 잠잠하게” 되는 처지로 최종결말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의 인생을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던 전 시간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확고부동한 철칙입니다.
    하나님의 시대에는 그 어느 때에도 절대로 실수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잠시 동안이라도 차질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계에는 패배의 순간이라는 것이 단 일초라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 인생의 앞날이 과연 누구의 손에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나의 앞날’은 ‘주의 손’에 맡겨지든지 아니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 떨어지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손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필연적으로 원수의 손에 잡혀 죽게 될 수밖에 없지만, 일단 주님의 손에 맡겨지면 완전 안심입니다.
    왜냐하면, 그 손의 주인께서는 당신의 손에 잡혀 있는 귀중한 소유를 놓치거나 빼앗길 분이 절대 아니시며, 아니 조금이라도 다치게 하실 분이 결코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자국 청년을 군인으로 복무하게 해서 그 생명을 몇 년 동안 ‘맡았으면’ 우선 그 청년의 건강과 생명부터 잘 보전해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누구 말대로 ‘군대에서 썩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밥도 잘 먹이고 훈련도 잘 시켜서 강인한 육체를 유지하게 해야 하고, 혹 복무 중에 몸을 다치지 않도록 온갖 안전예방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야 군인으로 제대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시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때에는 군량미고 차량 동원이고 간에 모든 것이 민간인보다는 군인에게 최우선적으로 투입됩니다.
    일단 군인이 생존해 있어야 나라를 지키고 민간인도 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손에 맡겨진 성도의 생명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 주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살아 있어야 교회가 존속할 수 있고, 이 그리스도의 왕국이 서 있어야 그것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속사가 계속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는 아주 간단하고도 당연한 계산입니다.

    저는 목하 우리나라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고 있는 ‘극단적 좌편향’ 현상 때문에 하루도 한숨을 내쉬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을 정도입니다.
    아예 대놓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김정은 독재자를 옹호하는 매국 세력이 애당초 ‘반공민주 정신’으로 건국되었던 이 나라 각계각층에 마치 ‘인간 땅굴’처럼 깊숙이 침투해 있는 현실 앞에, 저로서는 정말 간담이 서늘하고 등골에 식은땀이 흐릅니다.
    게다가 국가 부채가 이미 눈덩이처럼 계속 커지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국민 1인당 25만 원 지원’ 따위의 포퓰리즘 법안이나 ‘노란 봉투법’ 따위의 반기업적 법안들만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악한 방백들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한, 경기회복은 고사하고 국가 부도까지 심히 염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이 실로 현실 상황은 그야말로 ‘사방에 두려움’만 가중되고 있지만, 우리 기독신자가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대가 불경기로 내려가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의 대세가 기우는 법은 전 세계 역사상 단 한순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또는 교회적으로 큰 ‘환난 시대’를 맞이할 때일수록,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의지함으로써 끝내 ‘원수의 손’으로부터 구원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에게 자기 인생을 바친 성도는 ‘평화 시대를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3장 36절 상반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다윗의 생애를 가리켜 “36a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당시에”라고 번역된 말은 ‘그때에’(then)가 아니라 ‘자기 시대에’(in his own generation), 즉 ‘자신의 전 인생에 걸쳐서’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그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일정한 기간의 생애를 시종일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일에만 목표를 두고 거기에만 집중했으며, 또한 “잠들기” 전 즉 죽기 전에 그 차원 높은 인생 목적을 성취해내고 말았습니다.
    ‘자기 전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겼다’라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를 요약하는 말로서는 너무나 완벽한 것이며, 한 사람이 세상에 살 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남기는 비문(碑文)으로서는 달리 필적할 것이 없는 가장 멋진 문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긴 당시’란 구체적으로 어떤 때였습니까?
    사무엘하 7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 앞의 장들에 보면 이때가 바로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던 도피생활을 끝내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후, 그전까지 강력한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빼앗아서 다윗성이라고 이름을 붙여 왕국의 수도로 세우고, 이스라엘의 가장 큰 위협이었던 블레셋 민족을 완파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오는 등, 그야말로 이스라엘에 태평성세가 시작되던 시점이었습니다.
    또한 다윗 개인에게도 정말 원하는 대로 마음껏 자기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시절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고진감래라고, 젊은 시절을 그토록 환난과 죽을 고생만으로 다 보냈을 뿐 아니라 도피 시절부터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구국의 전공을 무수히 세웠고 또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마자 나라를 그처럼 부국강병하게 만들었으니, 이제는 좀 편안하게 여생을 즐긴다고 해서 누가 다윗을 탓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다윗이 자기 인생을 파악하는 방법은 달랐습니다.
    자신이 맞이한 태평시대는 자기가 이룩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찔러’ 주심으로써 누리게 된 시대인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진 ‘평안한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제일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곧 성전을 지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은 피를 많이 흘린 군인인 까닭에 다윗 대신 그의 아들이 성전을 짓도록 해 주겠다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윗은 물론이요 선지자 나단까지도 전혀 예기치 못했던, 참으로 뜻밖에 말씀이었습니다.
    다윗으로서는 어디까지나 자기를 왕으로 세워 주시고 평화 시대까지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성전을 짓겠다고 성심을 다한 청을 올렸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의 서원을 사실상 거절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때 만약 우리가 다윗이었더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전 재산을 다 바쳐서라도 제 생애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예배당을 하나 짓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너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 너 대신에 네 아들이 더 큰 복을 받아서 그 일을 하게 해 주겠다. 그리고 네 집안과 네 기업은 계속 보전되고 영원히 견고할 것이다.’라고 대답해 주신다면, 과연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모르기는 하지만, 열 명 중에 아홉은 ‘이게 웬 떡이냐?’ 했을 것입니다.
    ‘평안한 때에 놀지 않고 일하겠다고, 주신 복을 낭비하지 않고 모두 다 바치겠다고 진심으로 서원을 드렸는데도 하나님 편에서 못하게 하셨으니, 이제는 그저 남은 인생을 평안히 즐기면서 사는 것이 진짜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정말 고맙구나!’ - 아마 이렇게만 생각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도 또 한 번 그 모습이 우리와 달랐습니다.
    바로 그 다음 사무엘하 8장에 보면, 다윗은 갑자기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이방 민족들을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블레셋을 쳐서 항복을 받음으로써 이스라엘의 안보 문제는 충분히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블레셋 외에도 “모압”, “소바”, “아람”, “암몬”, “에돔”, “아말렉” 등등,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이방 국가들을 정복해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평화 시대를 주셨는데, 왜 다윗은 그처럼 위험하고도 어려운 전장에 다시 자기 몸을 내던졌습니까?
    그 이유는 사무엘하 8장 11절과 12절에 나타납니다.
    거기에 기록하기를 “11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12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그 모든 전리품과 조공으로 얻게 된 은금을 여호와께 다 드렸던 것은 바로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자재와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전을 직접 짓지 못하게 하셨다고 해서, 다윗은 이제 자기가 직접 하나님 섬길 일도 없고 필요도 없어졌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성전을 짓는 특권적 사명은 솔로몬에게 주어졌다 해도,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대상 22:5) 성전이었기 때문에, 자기로서는 그 대공사를 위한 준비를 하는 데에만 다 쏟아 부어도 남은 인생이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장차 솔로몬이 건축할 성전을 위하여 “내가 이제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리라”(대상 22:5상반)라고 굳게 결심했으며, 이어지는 역대상 22장 5절 하반절에서 다윗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라고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는 대로 그 목적을 완전히 성취하고야 말았습니다.
    실로 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진 평화 시대를 조금도 허비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데에만 ‘최고의 충성’과 ‘전부의 헌신’으로 멋있게 바쳤던 것입니다.

    국가가 청년의 인생을 맡게 되면 그 복무 기간에 그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근무 중에 안전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해 주어야 하지만, 그런 것 자체가 징병의 진짜 목적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군대란 곳이 청년들이 그저 놀고먹고 잠이나 자라고 모아놓은 호텔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잘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 진짜 목적은 오직 한 가지, 평소에 국방의 의무를 잘 수행하게 하고 유사시에는 전투에서 필승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너희들의 목숨은 3년간 나라가 맡았다.’라고 할 때, 그 최종 목적은 어디까지나 그 기간 동안 이처럼 ‘나라를 위하여 충성’하게 함에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국가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병역이 결코 ‘썩는 기간’이 아니라 ‘국민의 신성한 의무’인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삶 역시 바른 인생관을 가진 성도에게는 결코 부담이 아니라 오직 특권일 뿐입니다.
    그저 호의호식이 목적인 인생 -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정말 짐승의 수준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더구나 성도는 그 몸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거룩한 도구’와 ‘의의 병기’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까지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구원의 확신이 있는 성도는 절대로 놀고먹는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지켜 주심으로써 자기가 ‘평안히 거하는’ 시대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신자는 그 소중한 평화 시대를 그렇게 무의미하게, 값싸게 낭비할 염치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도 아주 간단한 계산이기 때문입니다.
    평화 시대가 아니라면 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싸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럼 박해 시대에 생존을 위해서 싸우는 것보다는 평화 시대에 충성을 다해 섬기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너희 생명을 취하려고 달려드는 원수의 공격 앞에서 순교의 각오로 싸울 테냐, 아니면 순교하는 대신에 평화 시대에 죽도록 충성하겠느냐?’라고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신다면, 솔직히 말해서 열이면 열 다 후자를 선택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평화 시대에 예배생활도, 기도생활도, 헌금생활도, 봉사생활도 모두 다 그저 순교의 각오로, 즉 문자 그대로 ‘죽도록’ 충성해야 할 뿐입니다.
    같은 순교의 자세로 싸우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순교는 진짜로 죽을 일은 없는 순교이니까, 아주 여유 있지 않습니까?
    아니, 여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바로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것’조차도 내 편의 자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감사드릴 제목만 되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원로목사님께서 미국을 방문하셨을 때, 한인교회의 교인들이 자기네의 미국생활이 바쁘고 힘들어서 신앙생활하기 어렵다고 불평하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그때 원로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디로 보내 주시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제3세계에, 북한에 보내 주시면 예배생활, 헌금생활을 더 잘 하겠습니까?”라고 일침을 놓으셨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평화 시대에 사는 한, 무엇에 바쁘고 무엇이 힘들어서 신앙생활하기 어렵다는 말은 정말 감히 입 밖에 꺼내지도 말아야 합니다.

    환난 시대에는 정말 충성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때는 신앙사수와 생존만으로도 정말 벅차고, 우선 그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입니다.
    충성은 오직 평화 시대에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평화 시대는 오직 죽도록 충성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평화 시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든지 아니면 ‘자기 욕심’대로 낭비하든지, 둘 중 하나로 쓰이게 됩니다.
    하지만 ‘내 인생을 주님께 맡긴’ 성도에게는 그 평화 시대도 자기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시간이므로 절대로 자기 마음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평안히 살게’ 해 주심으로써 누리게 된 시간이니 오로지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용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내 욕심을 채우는 일에, 내 자식만 키우는 일에, 내 인생 즐기는 일에만 쏟아 붓는 것은 정말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계속될지는 알 수 없는 이 ‘반 시간쯤 고요한’ 평화 시대를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 목적을 정하고 그것을 위하여 ‘순교의 각오’와 똑같은 땀과 눈물과 피를 다 바쳐 섬김으로써 ‘죽기 전에 많이 이루어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이 자신의 ‘환난 시대’를 하나님의 손에 맡겼을 때 그의 인생은 결국 승리로 이어졌고, 그가 누리게 된 ‘평화 시대’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충성하는 삶에 바쳤을 때 그의 인생은 결국 이스라엘의 전성기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역시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 겹겹이 둘러싸이는 위기의 시대를 맞이할지라도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라는 믿음만 끝까지 지키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평화 시대를 살게 되었을 때 모든 성도가 아무도 방심하거나 나태하지 않고 ‘나의 남은 인생을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데에 전부를 다 바칩니다.’라는 각오로 충성해야만 교회의 전성시대가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신자는 자기 인생을 결코 사람의 손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앞날을 악하고 불법한 위정자의 손에 맡겨놓을 수는 없으며, 우리와 우리 자녀의 미래를 원수의 손에 빠지게 할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일생이 오직 시공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구속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확실히 의지하는 가운데,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 남은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장차 혹 환난 시대를 맞이하게 되더라도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습니다.’라고 굳게 믿고 의지하는 신앙으로써 끝내는 ‘원수의 손’에서 구원을 받고, 아직까지는 유지시켜 주시는 조국 대한민국의 이 귀중한 평화 시대를 더욱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충성에만 다 바침으로써, 평안할 때나 환난 중에나 늘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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