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예배 2020-01-01 “너는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 예레미야 32장 6-15절 / 석기현 담임목사

More videos
109
Views
   

WMA음성받기MP3음성받기동영상다운받기동영상다운방법

송구영신예배 2020-01-01
2020′경향의 강단(1)(2020년 1월 1일 / 송구영신예배)
“너는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 예레미야 32장 6-15절 / 석기현 담임목사

경향교회 카톡친구
http://pf.kakao.com/_HxdvSd

(109)

“너는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

예레미야 32장 6-15절 / 석기현 담임목사
2020′경향의 강단(1) (2019년 12월 31일 / 송구영신예배)
“너는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 예레미야 32장 6-15절 / 석기현 담임목사
제가 한 3년 전부터 헬스 운동을 시작했는데, 그때 다니던 피트니스 센터의 벽에 붙어 있던 ‘몸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크게 자극이 되었습니다.
  즉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노력한 만큼 몸은 반드시 더 좋아진다는 뜻이었습니다.
  최근에 그와 비슷한 문구를 하나 보았는데, 바로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부동산 투자를 제대로 하는 요령에 대하여 저술한 책 제목이었습니다.
  물론 과열된 ‘투기’가 여러 가지 부작용과 부조리도 낳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땅 투자’라는 것은 재산증식을 위한 합법적인 경제활동이며 ‘부동산 경기’도 훌륭한 경기(經紀)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처럼 ‘땅 투자’를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1절부터 5절에 보면, 이 본문의 사건은 “유다의 시드기야 왕 열째 해”, 그리고 이미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을 때에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찍부터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바벨론 왕의 손에 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해 왔던 선지자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의 미움을 받아서 “시위대 뜰” 안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로부터 ‘너는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는 아주 희한한 명령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땅 투자’는 무슨 재산증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차원 높은 ‘영적 투자’였습니다.
  즉 지금 함락당하기 직전에 있는 예루살렘 성 안에 갇혀서 완전히 절망에 빠져 있는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미래에 내려주실 해방을 믿고 그 축복의 날을 소망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일종의 ‘상징적 행위’였던 것입니다.
  2019년을 보내고 2020년을 맞이하게 된 오늘 밤 이제 3년을 남겨 놓고 있는 희년을 위하여 모든 경향의 성도들이 각자 ‘아나돗의 밭’을 꼭 사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경향 희년을 위한 투자는 ‘경향인의 특권’입니다.

  6절부터 8절 상반절에 “6예레미야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7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8a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나에게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고 기록했습니다.

  지금 “시위대 뜰 안”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네 숙부 살룸의 아들” 즉 예레미야의 사촌인 “하나멜”이 와서 자기의 밭을 사라고 부탁해 올 것이라고 예언해 주셨는데, 과연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나멜이 예레미야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가 예레미야에게 팔려고 한 밭이 있던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네로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멜은 아마도 전쟁 중에 경제적으로 궁핍해져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는 그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에 대하여 “기업의 상속권”“무를 권리”가 예레미야에게 있음을 상기시켜 주면서 그것을 사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빚을 갚기 위해서 혹은 돈이 필요해서 땅을 팔 때에는 반드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팔게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살 의향이 없으면 그 땅을 살 수 있는 권리는 그 다음으로 가까운 친족에게 차례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나안 정착 초기에 여호수아에 의하여 열두 지파에게 각각 분배되었던 땅이 시간이 갈수록 섞여 버리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경우에 그처럼 땅을 살 수 있는 우선권을 가리켜 ‘기업의 상속권’ 혹은 ‘무를 권리’라고 했습니다.
  즉 그 권리는 어떤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명예로운 책임 즉 ‘특권’이었던 것입니다.

  경향 희년을 맞이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완수해야 할 것이 바로 ‘보리떡 헌금운동 완결’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강서성전 헌당 후에 또 교육관과 선교관을 각각 구입함으로써 추가로 더해진 헌금입니다.
  하지만 그때도 경향의 성도들은 이 헌금을 ‘부담스러운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기업의 상속권’이며 ‘무를 권리’라고 여겼습니다.
  당시 본관에 속한 교육실들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지 오래였지만, 경향학원에 속한 일반 교실들은 법적 제한 때문에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경향학원의 터 바깥으로 교회의 공간을 더 확장시켜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실로 절묘한 타이밍에 바로 우리 교회 예배당과 나란히 붙어 있는 건물과 땅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그것도 두 번씩이나 연이어 우리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때 교육관과 선교관의 건물과 대지를 팔려고 했던 주인들 역시 ‘이것은 경향교회가 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일 먼저 우리 교회에 구매의사를 물어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두 사람이 서로 짠 것도 결코 아닌데, 똑같이 ‘이것은 경향교회가 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공개적인 매매 광고를 내지도 않고 우리 교회 쪽에만 일대 일로 접촉해 왔던 것입니다.
  이 부동산의 원래 임자들부터 이 건물은 경향교회가 그 ‘상속권’을 가지고 있다고, 이 땅은 경향교회 성도들에게 그 ‘무를 권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실로 이 ‘아나돗의 밭’에 대한 권리는 결코 다른 사람에게 넘겨 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만약 이것이 어떤 부동산 업자에게 넘어갔더라면 이 성전 바로 옆에 유흥업소들이 판을 치는 상가가 세워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아니면 아예 무슨 이단교회가 들어서서 사탄이 우리 목에 직접 칼끝을 겨누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습니까?
  경향 희년까지 이제 세 번 남아 있는 ‘희년맞이 비전헌금’ 작정과 실행을 통해 ‘보리떡 헌금운동 완결’을 꼭 성취해 내는 것은 우리가 결코 놓칠 수 없는 영광스러운 특권이라는 사실을 꼭 명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경향 희년을 위한 투자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8절 하반절부터 12절에 기록하기를 “8b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9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10증서를 써서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법과 규례대로 봉인하고 봉인하지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가지고 12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 친 증인 앞과 시위대 뜰에 앉아 있는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라고 했습니다.

  사촌 하나멜의 제의를 받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즉시 그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게 됩니다.
  당시의 매매 관례대로 그는 먼저 “은 십칠 세겔”을 저울에 달아서 정확하게 지불했습니다.
  그 밭의 실제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비싼 가격인지 싼 가격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평상시 거래될 때 통용되는 정당한 가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예루살렘이 적군에 의하여 포위되어 있고 나라가 곧 망하게 될 것이 뻔히 내다보이는 상황에서 그런 평상시 가격을 그대로 지불한다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물밀듯이 밀려오는 북한 공산군 앞에 서울이 함락 직전에 있을 때 누가 ‘내 땅을 사시오.’라고 한다고 할 때 그 어떤 바보가 그것을 사겠습니까? 또 만약 서울 수복의 가능성을 믿고 그것을 산다손 치더라도 그 거래 가격은 현 시세보다는 훨씬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레미야가 지불한 ‘은 십칠 세겔’은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 금액 전부를 지불하고 모든 토지매매 계약의 절차들을 정확하게 밟았습니다.
  일단 “증서를 써서” 그 원본은 내용을 고치지 못하도록 진흙이나 파라핀 따위로 “봉인하고” 그 후에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했습니다.
  저 유명한 쿰란 공동체의 ‘사해(死海) 사본’들 역시 토기에 담겨서 잘 보존된 까닭에 오늘날까지 발굴되고 있는데, 바로 예레미야 역시 같은 방법으로 보존하게 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 계약 내용을 언제든지 읽어 볼 수 있도록 일부러 “봉인하지 아니한 매매 증서” 즉 사본도 만들었습니다.
  그 사본은 원래 구매자가 소지하게 되어 있었지만 예레미야는 지금 옥에 갇힌 몸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 친구이며 개인 비서였던 “바룩”에게 맡겨서 역시 토기에 담아 보존하도록 조치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왜 그처럼 생돈을 날려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매매계약을 체결했던 것입니까?
  오늘날의 투자가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한다손 치더라도 소위 ‘구매자의 시장’(buyer's market)에 해당되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니 그 값을 마음껏 깎을 수 있었을 것인데, 왜 예레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것이 곧 “여호와의 말씀인 줄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구매 제의는 하나멜에게서 들었지만 그 ‘아나돗의 밭’을 사라는 것이 곧 하나님의 명령인 줄 깨달았기 때문에, 그로서는 자기 사촌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따져볼 필요도 없었고 땅값이 얼마냐 하는 것도 아무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 경향교회도 지난 47년을 지내오는 동안 여러 가지 계약들을 했습니다.
  비단 이 강서성전 건축뿐 아니라, 선교지의 예배당 구입이나 학원 인수를 비롯하여 몇 차례의 법정 소송건 등 상대방과 흥정을 해야 할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일을 맡은 추진위원 장로님들과 당회원들의 가장 기본적인 방침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확신이 들면 반드시 성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빌립처럼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7)라는 계산이 더 앞섰더라면, 아마 우리 경향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동자동, 아니 을지로의 창고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교회의 일을 그처럼 머릿속으로 수판알만 굴리는 ‘빌립’식으로 하면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 경향교회 성도에게는 그저 상식에 불과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경향교회가 큰 일, 어려운 일, 아니 외부에서 볼 때에는 절대로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일을 맞이하게 될 때마다 철칙으로 지켜 왔던 그대로, 경향의 ‘희년맞이 5대 목표’ 역시 오로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명령’인 줄로 깨닫고 온 몸과 마음과 힘을 합하여 반드시 완수해 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경향 희년을 위한 투자는 ‘큰 축복의 보장’입니다.

  13절 이하 15절에 “13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4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봉인하고 봉인하지 않은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 15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매매계약을 끝낸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가 왜 그 ‘아나돗에 있는 밭’을 샀는지, 아니 하나님께서 왜 그 땅을 사라고 명령하셨는지 그 이유를 이제 공포합니다.
  당시 ‘아나돗에 있는 밭’은 다른 유다의 모든 땅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바벨론 군대의 점령 하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남은 예루살렘의 함락 역시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만 생각한다면 그 밭은 ‘은 십칠 세겔’은커녕 사실상 단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실로 놀라운 약속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해 주셨던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만약 예레미야가 그 밭을 다시 팔려고 내놓아도, 그리고 그 가격을 설혹 반값으로 내려 준다 해도 아무도 살 사람이 없을 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아니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바벨론 군대가 침공한 이래 이미 부동산 거래 자체가 중단된 지 오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땅” 즉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다시 사람들이 “집과 밭과 포도원”들을 사고파는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날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입니까?
  바로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을 받고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날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여기서 자신의 매매문서를 토기에 담아서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고 한 것이 바로 그 ‘바벨론 포로 70년’ 간을 의미합니다.
  그 ‘오랫동안’의 기간이 지난 후 이스라엘의 국권이 회복되고 유다 백성이 국토의 소유권을 되찾게 될 축복의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지금 예레미야가 사 둔 밭 한 뙤기의 매매문서는 엄청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물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 땅을 사게 한 것이 어떤 ‘부동산 투기’를 위한 목적이 아닌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70년 후면 예레미야 선지자 자신은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 토기에 담아 보관해 두었던 땅문서를 다시 손에 쥘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유다와 예루살렘의 미래를 크게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바로 그런 예레미야의 ‘상징적 매매’를 통하여 유다 백성에게 전달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아나돗의 밭’을 사촌에게서 사는 모습을 보고 그 계약을 참관하던 “증인”들과 “시위대 뜰에 앉아” 그 장면을 구경하고 있던 “유다 모든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왜 바보같이 저 땅을 사나?’ 하고 모두들 궁금하게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바로 그런 백성들 앞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지금은 적군의 손에 넘어가는 유다 땅과 예루살렘 성이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이 땅을 유다 백성의 손에 반드시 다시 넘겨주실 축복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그것을 믿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미래에 대하여 불신자보다 훨씬 더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야말로 ‘부동산 투기’하는 ‘복부인’(福婦人)이 아니라 ‘영적 투자’에 지혜로운 진짜 ‘복신자’(福信者)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가 세상의 경제활동에서도 불신자보다 더 뛰어나야 하지만, 특히 영적 가치 창출, 영적 이익 획득, 영적 재산 증식에 있어서는 진짜 ‘투자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 투자하는 것에 대하여 ‘시가의 변동에 따라 발생할 차액’을 예지할 수 있어야 하며, 그처럼 미래에 증폭적으로 얻게 될 ‘영적 이득’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소망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경향교회가 경향학원과 교육관과 선교관을 통해 차지하게 된 이 ‘강서구청 사거리’는 이미 강서의 중심이 되어 있고 앞으로 더욱 가속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주변지역들이 계속 개발되면서 이 주변 지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집과 밭과 포도원을 사게 될’ 날이 누구의 눈에도 빤히 내다보이는 것입니다.
  그것만 생각해도 이 ‘아나돗의 밭’의 가치는 틀림없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강서성전을 중심으로 우리의 후손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세계를 받은 교회’의 새 시대를 활짝 펼쳐나갈 것을 생각해 본다면 정말 절로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3년 후의 희년과 함께 우리 앞에는 ‘이보다 훨씬 더 좋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그때까지 더욱 ‘교회중심의 투자’에 ‘생애 전부’를 투자함으로써 그 영광스러운 복을 꼭 함께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원로목사님 때로부터 ‘세계를 받은 교회’라는 실로 멋지고도 영광스러운 기치 아래 지금까지 47년을 달려왔습니다.
  이 경향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벌써 세계선교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오대양육대주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지 교회와 선교지 신학교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20여 년 전에는 경향학원을 인수하게 되어 이 1만 평의 터 위에 성전을 지으면서 축복의 강서 시대를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동자동 시대 때부터 시작했던 신학교 운동은 수 년 전에 제네바신학대학원대학교를 정식으로 인가받게 되면서 새 장을 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제 2023년까지 교회의 모든 빚을 갚고 오로지 전도와 선교에 모든 총력을 집중함으로써 ‘예수 세계화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그처럼 이 ‘아나돗의 밭’이 ‘축복의 산지’가 되고야 말 미래를 각자 한번 마음속으로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낙 자손’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여호와를 온전히 좇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대대로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 강서의 중심지에 있는 한 모퉁이가 ‘경향 코너, 경향 광장, 경향 센터’라는 멋진 새 명칭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낮에는 우리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들의 만국기가 펄럭이고 밤에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네온사인이 번쩍거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주중에는 어린이 선교원에서, 주일에는 교육관과 교육실 사이로 신나게 뛰어 다니고, 천국잔치가 있는 주일에는 새 친구들이 저 경향학원 운동장을 꽉 채워 버리고, 선교관 건물에 ‘강서복지회관’을 만들어서 많은 어르신들이 주중에도 출입하게 되면, 어쩌면 이 ‘등촌동’이 아예 ‘경향동’으로, ‘화곡로’가 ‘경향길’로, ‘강서구청 사거리’가 ‘경향교회 사거리’로 바뀌어 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비록 아직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가 좀 힘들지라도 이처럼 영광스러운 희년의 날을 바라보면서 올해에도 오로지 소망과 기쁨 중에 각자의 ‘아나돗의 밭을 사는’ 경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