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9-10-06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스가랴 1장 1-17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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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19-10-06
2019′경향의 강단(42) (2019년 10월 6일 / 주일 대예배)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스가랴 1장 1-17절 / 석기현 담임목사
1부 오전 7:00 / 2부 오전 9:00 / 3부 오전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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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스가랴 1장 1-17절 / 석기현 담임목사
최근에 저는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무슨 길만 있으면 이민 가고 싶다.’라든지 ‘최소한 내 자녀만큼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유학을 보내겠다.’는 말을 정말 자주 듣고 있습니다.
  분명히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하고 있는 이 대한민국을 헌법까지 뜯어고쳐서 사회주의 국가로 바꾸어 버리겠다는 의도를 아예 당당하게 주장하는 무리가 날이 갈수록 득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70년 전에 조국을 공산화시키려고 불법남침을 시도했던 북한 독재정권이 하루아침에 평화의 동반자로 둔갑하고 그때 자국민 5만 명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나라를 지켜 주었던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급속도로 갈라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저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실로 암담한 심정에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입니다.

  주전 520년경의 유다인들 역시 그처럼 사기가 저하될 대로 저하되어 있었습니다.
  약 18년 전에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의 칙령 덕분에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조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약 오만 명의 유다인들은 일단 성전재건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웃 사마리아인의 방해공작과 페르시아의 한 관리의 반대 때문에 그 공사는 두 차례나 중단되었습니다.
  결국 다리오 왕이 처음에 반포되었던 고레스 왕의 조서를 인정하고 성전재건을 승인해줌으로써 공사가 재개되기는 했지만, 이때 쯤 유다인들은 완전히 맥이 풀려 있었습니다.
  그처럼 성전재건이 자꾸 방해를 받아 중단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유다인들을 격려하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셨는데, 그것이 곧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비록 주위의 정치적 상황은 복잡하고 경제적 형편은 어려웠으며 시도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하는 현실이었지만, 일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오시기만 하면 그들의 미래는 활짝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그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역시 과연 어떤 민족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회복시켜 주시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회개를 통하여 대신관계(對神關係)부터 먼저 회복하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즉시 돌아오십니다.

  1절부터 6절에 “1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3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5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6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 즉 유다인들이 성전공사를 두 번째로 재개하려 할 즈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지금 그들에게 가장 급한 일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것은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는 회개의 촉구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문제의 모든 근원이 바로 그들의 죄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셨다고 했습니다.
  즉 옛날 남조 유다와 북조 이스라엘로 나뉘어졌을 당시의 이스라엘 선조들에게 크게 진노하셔서 그들의 나라를 망하게 하시고 살아남은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악한 길, 악한 행위”에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지자들을 통하여 선포해 주신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은 곧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 것, 즉 하나님의 육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것과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는 말씀은 바로 그 불순종의 결과로 닥쳐오게 되었던 징벌의 날을 상기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처럼 회개하지 않던 “조상”들은 끝내 다 벌을 받고 죽고 말았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회개를 촉구하며 기회를 주는 것도 결코 “영원”할 수는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내 말과 내 법도” 즉 그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불순종한 조상들에게 정확히 그대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루살렘 멸망의 날을 당하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들은 “돌이켜” 즉 ‘후회하며’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셨도다”라고, 즉 자기네가 당해 마땅한 벌을 하나님께서 내리셨다고 통탄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의 망국의 원인이었음을 깨닫는다면, 지금 고국에 돌아와서 나라 재건을 하려 하는 유다인에게 가장 필요한 급선무는 곧 민족적인 회개였습니다.
  먼저 각 개인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오시며 그들의 조국을 회복시켜 주시는 일도 따라올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개인과 민족은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은 성경과 역사가 증언하는 불변의 원칙입니다.
  그 반대로 회개하는 것이야말로 개인과 가족과 국가가 축복의 길로 전환하게 되는 제일 첫 단계인 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인생이 꼬이고 나라가 쇠약해지는 일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회개를 가리켜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회개란 ‘자기가 저질러 놓은 것을 후회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며, ‘자기가 어떤 법에 저촉된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이 공의의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얼마나 선하고 인자롭게 대해 주시는 분이신지를 자신의 심령 속 깊이 체험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참된 회개를 한 성도가 꼭 이르게 되는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진정한 회개를 통한 은혜부터 맛보지 못하고서는 다른 어떤 복이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길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하여 거의 다 죽게 되었을 때, 이 한반도가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의하여 완전히 적화통일되기 일보직전에 조국을 기사회생시킨 것도 바로 자신과 이 나라가 지은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던 기도운동이었습니다.
  통회하고 자복하는 회개를 통하여 일단 저 하늘 아버지의 마음만 돌려놓으면 그 다음에는 엄청난 기적도 아주 간단하게 벌어질 수 있음을 깨닫고, 오늘 우리 조국이 당하고 있는 환난과 위험 앞에서 그 누구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부터 철저한 회개기도를 올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택자를 절대주권으로써 보호해 주심을 믿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꼭 돌아오십니다.

  7절부터 12절에 “7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8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9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 10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11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12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라고 기록했습니다.

  귀환한 유다인에게 먼저 죄 회개할 것을 촉구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아주 멋진 장면을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붉은 말”을 탄 “한 사람”의 환상이었습니다.
  그가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마 예루살렘 바로 바깥쪽에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사람 뒤에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 말들 위에도 역시 각각 말을 탄 사람들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이어지는 10절의 문맥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붉은 말을 탄 사람이 어떤 지휘관처럼 앞장서 있고 그 뒤에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를 탄 사람들이 옹위하고 서 있는 장면을 스가랴 선지자가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말이란 동물은 특히 그 당시에는 힘의 상징인 동시에 존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그 말을 탄 사람이 능력이 있으며 존귀한 신분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나중에 11절 이하에 보면 그 ‘붉은 말을 탄 사람’을 가리켜 “여호와의 천사”라고 했는데, 여기서 ‘천사’라고 되어 있는 단어는 그냥 ‘사자(使者)’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며 ‘여호와의 사자’는 곧 구약에 현현(顯現)하신 그리스도를 지칭할 때 대표적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스가랴는 이런 환상을 보면서 “내게 말하는 천사” 즉 곁에서 설명해 주는 천사를 통하여 그 장면의 뜻을 깨달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 천사에게 이 말 탄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자들이냐고 물어 보자, 천사는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세상의 일들을 두루 살피고 있는 하나님의 사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처럼 정찰임무를 마친 후에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사자)” 즉 8절의 ‘붉은 말을 탄 사람’에게 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유다는 멸망당하고 폐허가 되어 있으며 귀환한 유다인들은 그처럼 낙심 가운데 있지만, 반면에 이방 열국은 번영을 누리며 평안한 가운데 있었다는 뜻입니다.
  즉 여기서 ‘온 땅이 평안하다’는 말은 그 이방민족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네의 안녕과 번영을 두고 교만해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 보고를 들은 “여호와의 천사” 즉 붉은 말을 타고 계시던 그리스도께서는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라고 탄원의 기도를 올립니다.

  이런 환상이 뜻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온 세상과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유다가 멸망당하고 칠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께로부터 잊히고 버림당한 민족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방 열국은 마치 하나님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권세를 휘두르며 이스라엘 백성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칠십 년 기간 중에도 그 모든 역사와 사건들을 두루 살피시고 다스리시는 진짜 권위는 오직 하나님의 손 안에 꽉 잡혀 있었습니다.
  그 어떤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눈 밖에서 사람 마음대로 하는 일, 혹은 우연히 벌어지는 일이란 것은 전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이 징벌을 받는 동안에도 그들을 위하여 긍휼을 베풀어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여전히 발동되고 있었으며, 바로 그것이 곧 이 말 탄 자들의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알려 주고 계셨던 사실이었습니다.

  택함 받은 백성은 바로 이처럼 만사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 움직이고 있음을 철저히 믿고 그 어떤 경우에도 이것만 의지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 눈에는 모든 것이 잘못되어 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조차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서 지극히 완벽하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 눈에는 자기에게 저주와 벌만 쏟아지는 것처럼 보여도, 바로 그 순간에조차 당신의 택자를 향한 하나님의 인애와 자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변함없이 발휘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진노와 징벌은 곧 끝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운수가 나빠서 천재지변의 재난을 당한다고만 생각한다면 정말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습니까?
  국력이 약한 까닭에 더 힘이 센 열강들에게 시달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만 생각한다면 그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절대주권자께서 살아계심을 믿는 성도는 자기 주위에 일어나는 만사나 조국과 민족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결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오직 하나님의 관할 아래, 그분의 권위 아래,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긍휼 아래 있음을 확고부동하게 믿음으로써 현재 당하고 있는 불행이나 환난 중에도 결코 낙심치 말고 반드시 당신의 백성에게로 돌아오셔서 결국 구원해 주고야 마실 이 전능자를 끝까지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교회중심으로 살 때 누리게 되는 축복에 소망을 거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돌아오십니다.

  13절 이하 17절에 “13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4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15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16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7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긍휼을 속히 베풀어 주십사고 간구하는 그 ‘여호와의 사자’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기는 했지만 그들을 위하여 오히려 ‘질투’하시게 되는 것이 바로 어쩔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이었습니다.
  즉 그 이스라엘을 징벌하기 위하여 들어 쓰셨던 이방의 여러 나라들이 자기네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민족을 멸망시켜 버렸다고 교만해 하는 꼴을 보이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범죄한 자기 백성을 편들어 주시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택한 백성’을 향하여 자동적으로 넘치는 ‘긍휼’은 하나님 당신께서도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기 아들이라면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어도 결국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아버지의 심정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결국 어떻게 표현되었습니까?
  그것이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라는 말씀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고” 즉 성전을 지어 올릴 터가 지정되고 그 가운데 “내 집” 즉 성전이 더 이상 방해를 받지 않고 순조롭게 건축됨으로써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확증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들”“넘치도록 다시 풍부한” 복을 받게 되며, “시온”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예루살렘”“다시” “택함”을 받는 회복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귀환한 유다인들은 바로 성전재건의 완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시는 온갖 복을 다시금 풍성히 누리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택한 백성에게 복 주실 때에 반드시 교회를 통하여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찾아 왔던 미국의 첫 조상들은 제일 먼저 예배당을 짓고 그 다음에 학교를 짓고 그 후에 각자의 집을 지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생활을 먼저 교회중심으로 해 나갈 때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채워 주실 것을 믿었던 바로 그 조상들의 신앙이 오늘날의 미국을 저렇게 풍요하게 만든 것입니다.

  오직 교회중심으로 우리의 영혼이 먼저 잘되어 갈 때, 그 나머지 ‘범사가 잘되는’ 복은 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교회가 주어지고 예배의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고 있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해 주고 계시며 또한 앞으로 더 크게 축복해 주실 징조입니다.
  신자가 교회를 출입할 수 있다는 이 자체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불신자들과는 달리 신자들을 택하시고 같은 죄인들이지만 오직 그 택자에게만 긍휼을 베풀어 주고 계신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언제든지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역사를 통하여 당신의 구속사를 성취해 가시는 일에 있어서 부동의 거점이요 최고의 사령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번성할 때 그 나라가 잘되고 교회가 복을 받을 때 그 민족의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는 것은 세계사가 고스란히 증명해 주는 사실입니다.
  북한 동포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모여 있는 교회들이 곳곳에 산성과 요새처럼 우뚝 서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을 계속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세계 선교 완성을 위하여 크게 쓰일 별들을 준비하는 신학교들과 후원하는 선교회들이 기지와 보급창고처럼 즐비하게 세워져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이 조국의 ‘성읍’들까지도 넘치도록 복을 내려 주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너무 많다’는 비판은 결코 성립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바른 교회가 적고 이단 교회가 많다’는 데에 있는 것이지, 이 나라에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십자가 탑이 보인다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우리 대한민국이 받은 축복의 징표일 뿐입니다.
  나라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민족의 미래가 걱정될수록 더욱 이 땅에 교회를 바로 세우는 ‘먹줄을 침’으로써, 그 언제든지 ‘예루살렘과 시온을 위하여 질투하시며 열국에 진노를 내려주시는’ 하나님께서 이 조국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우리에게로 돌아오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어린 아이가 이웃집의 힘센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우리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 보자.’ 하면서 스스로 그 서러움을 달랩니다.
  남편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멀리 외지에 가 있고 혼자 어렵게 자식을 키우면서 살림을 꾸려가는 아내는 자기 남편이 돌아오기만 하면 그 모든 어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을 바라며 손꼽아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한 민족과 나라가 혼란과 불안에 빠져 있을 때에 그저 한 명의 훌륭한 정치가가 나타나서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요원한 일입니다.

  이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정치병을 과연 누가 고쳐낼 수 있겠습니까?
  이 대한민국의 건국이념 자체부터 흔들고 있는 종북좌파의 발악을 과연 어떤 한 명의 지도자가 잠잠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벌써 끝났어야 할 북한 공산독재정권이 오히려 갈수록 힘을 얻고 위협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때에 과연 어떤 대통령 한 명이 이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막고 북한의 불쌍한 동포들을 해방시키는 자유민주적 통일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만 생각해본다면 정말 막막하기 그지없는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에게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마지막이면서도 실상 가장 믿음직한 희망이 있습니다.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이 민족에게로 돌아와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재건을 방해하는 열국들에게 진노하시고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로 돌아와 주시는 이것만이 저와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든든한 희망입니다.
  지금처럼 많은 국민들이 이 사회에 대한 신뢰감을 잃고 나라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더 가중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때에, 우리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이 민족에게 다시 찾아와 주시고 함께 해 주시는 이것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깨어 있는 교회와 성도에게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개인과 민족의 죄를 놓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기도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이 나라의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오직 이 절대자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철저히 믿고 의지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조국의 거리와 골목마다, 이 땅의 산하 구석구석에 십자가들이 세워져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교회들을 위하여서라도 우리 대한민국을 안위하시고 더욱 풍성하게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 어떤 죄를 지어도 회개하는 자에게는 당장 돌아와 주시는 자비의 아버지, 그 어떤 환난 중에도 당신의 택자를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시는 전지전능자, 세상의 그 어떤 풍파 중에서도 그 몸 된 교회를 아껴 주시는 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더욱 간절히 붙잡고 의지함으로써, 조국과 민족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끝까지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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