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9-09-15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디모데후서 3장 13-17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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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19-09-15
2019′경향의 강단(39) (2019년 9월 15일 / S.F.C.주일 대예배)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디모데후서 3장 13-17절 / 석기현 담임목사
1부 오전 7:00 / 2부 오전 9:00 / 3부 오전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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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디모데후서 3장 13-17절 / 석기현 담임목사
요즘 우리나라 교육계는 ‘학생 인권 존중’이 최대의 화두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제 세대의 모든 사람들이 학생 시절에 겪었던 ‘모독적인 언사’나 ‘폭행 처벌’ 따위는 당연히 근절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학생 인권 존중’이라는 것이 이제는 ‘학생 방임 상태’로까지 치닫고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학생이 학교생활 하는 것까지도 ‘지도’가 아니라 ‘자율’에 맡기고 ‘규칙’으로 제한하는 대신 그저 ‘인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육’이라는 개념의 본질부터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모르는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인데 본인이 공부하는 것이 싫다고 해서 그 의사를 존중해 주거나, ‘잘못된 행실’을 ‘바로잡아 주는 훈육’ 또한 본인이 간섭하지 말라고 거부하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면 도대체 학생을 학교에 보낼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인권’이란 먼저 그것을 주장할 만한 인격이 성숙되었을 때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자유’ 또한 본인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알게 되었을 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도덕과 윤리와 덕과 법은 아직 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청소년들에게 그저 ‘학생 인권 존중’이라는 미명으로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권리’만 남발해 주고 있으니, 요즘 청소년의 범행이 점점 더 악해지고 그 연령 또한 아예 초등학교 나이까지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본문은 바른 교육, 특히 신앙교육은 철저히 ‘일방적이며 주입식’이 되어야 함을 선포해 주고 있습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단도직입적인 명령이 그 뜻입니다.
  일단 ‘바로 배우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그 배운 것을 따라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면서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SFC 주일을 맞이하여 저는 우리 경향교회의 중고대학생들이 이 학생신앙운동을 통해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하고자 합니다.

  1. S.F.C. 운동원은 ‘선조의 정통 신앙’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14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배우고”라는 말은 디모데가 과거에 배웠던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확신한 일”이란 바로 그 배움을 통하여 자신의 심령 속에 분명히 믿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사도 바울로부터 받고 있던 디모데는 이 당시에 벌써 어엿한 목회자가 되어 있었지만, 그 역시 한때는 배우는 시절이 있었는데 그는 실로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할 때, “누구에게서”라는 말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듯이, 그 어린 디모데에게 신앙교육을 시작한 사람들은 바로 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였습니다.
  또한 그 배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로 하여금 혹시라도 이단 사설에 빠지지 않도록 늘 그에게 당부하면서 가르쳐 주었던 특별교육을 통해서도 이루어졌었습니다(딤후 2:18). 이처럼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전통 있고 유서 깊은 신앙의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또한 선배 목사를 통하여 그야말로 정통 교리와 실천신학까지 전수받는 등 아주 특별한 교육의 기회를 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바로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간직하기를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디모데처럼 복음전파의 사명을 수행하는 목회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단 사설에 흔들리지 않고 교회를 진리로 지켜내어야 했고, 온갖 미혹에 흔들리기 쉬운 성도들을 바로 가르치고 키워내는 중차대한 사명을 완수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전도자가 되려면 어릴 때부터 좋은 신앙의 가정과 좋은 교회를 통하여 잘 배움으로써 기초가 잘 잡혀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어드밴티지가 있는 것이며, 이것은 디모데전서 3장 6절에서 목사의 자격을 말할 때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라고 경고하고 있는 말씀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가정교육을 통해서 부모의 신앙이 자녀에게 그대로 전수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또한 아버지 목사를 이어서 그 아들도 목사가 되는 것은 더 큰 복입니다.
  마찬가지로 SFC를 통하여 개혁주의 신앙으로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서 나중에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된 사람 역시,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에 아무래도 기본바탕이 잘 되어 있는 까닭에 모든 면에서 훌륭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이 학생신앙운동을 통해 우리 선조의 신앙을 배우고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을 실로 감사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 특별한 영적 교육은 정말 고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경향교회의 SFC를 통해 가르치고 있는 개혁주의 신앙은 선지자와 사도의 정통신앙에서 출발하여 종교개혁자 선배들이 다시 회복시켜 놓은 실로 귀중한 유산입니다.
  또한 그 신앙이 초기 선교사들을 통하여 이 조국 땅에 뿌려졌으며 순교의 피라는 이 값진 제물을 통하여 순전하게 지켜짐으로써 오늘날에 와서는 ‘세계선교’라는 큰 열매로 맺히게 되고, 주변의 강대국 일본이나 중국이 아니라 이 작은 대한민국이 바로 그 개혁주의 신앙의 최대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특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학생신앙운동은 바로 조국의 순교자들을 통하여 그런 개혁주의 신앙을 직접 배웠던 선배들이 시작한 운동으로서, 학생들이 스스로 모여서 기도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이 얼마나 좋은지를 배우고 깨달아서 이 신앙을 조국과 세계에 전하는 사명을 꼭 완수해야겠다고 각오하면서 세워진 단체입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라는 너무나도 멋진 생활강령에 착안하고 이를 중심으로 뭉쳐진 순수한 신앙의 운동인 것입니다.

  우리 SFC 운동원들은 이처럼 실로 전통 있는 정통신앙의 뿌리와 줄기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마워하며 자랑스럽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은 21세기에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바로 이 SFC를 통하여 먼저 가신 순교자 선조들, 참된 진리와 신행일치의 삶을 회복시켰던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지자와 사도들이 전파했던 참된 ‘정통 신앙’을 그대로 배우고 익히는 SFC운동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S.F.C.운동원은 ‘구원의 복음인 성경’을 배우고 믿어야 합니다.

  본문 15절에 “15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모든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구약 성경을 철저히 배웠습니다.
  대표적으로 신명기 6장 6절과 7절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명하고 있는 대로, 자녀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외우게 하는 것은 유대인 부모의 일상사였습니다.
  특히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그처럼 경건하고 신실했던 어머니와 외조모 밑에서 자랐으니 그 누구보다도 성경 말씀을 많이 배웠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성경 말씀이 이 디모데에게 어떤 작용을 낳았습니까?
  그것이 곧 사도 바울이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상기시켜 준 사실이었습니다.
  비록 그 어머니와 외조모가 훌륭한 신앙인이었기는 했지만 그들이 직접 디모데를 신자로 바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들이 가르쳐 주었던 성경 말씀이 디모데의 심령 속에서 독자적으로 역사하고 그의 인격을 감화 감동시킴으로써 그를 경건한 신앙의 아들로, 또한 거기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훌륭한 목회자로 자라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오랜 세월과 많은 시대에 걸쳐서 기록된 구약 성경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일관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곧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실 메시아’였습니다.
  구약조차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주제였다면, 더욱이 신약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성경이 기록된 목적은 오직 ‘죄인 구원’이며, 그런 목적으로 기록된 책은 이 세상에서 오직 성경책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참된 구원의 확신에 이르는 것, 이것이 곧 우리 학생들이 경향교회 SFC를 통해 반드시 배워야 할 필수과목인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성장 시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 말씀으로 철저히 교육시키고 무장시켜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 자녀들을 이 세상의 불신 문화와 불신 과학과 불신 친구들 속에서도 능히 신앙의 독립 인격으로 성장시키고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이것 외에는 아무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내 집 지붕 밑에서 키우고 있지만 우리의 자녀들이 스스로 홀로 서야 할 때는 바로 코앞에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까지는 부모가 야단치면 묵묵히 들어야 하고 아직까지는 교회 데리고 나오면 따라올 수밖에 없는 통제 하에 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입니다.
  이제 곧 대학교에 들어가면 저녁에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조금만 더 지나면 결혼해서 아주 딴 살림을 차리게 될 날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 날을 위하여 지금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미리 준비시켜 주느냐 하는 데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식이 혼자 서게 될 그 한 날을 위해 무엇을 미리 챙겨주려고 애를 쓰고 계십니까?
  그저 대학만 졸업시키면 저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니 어찌하든지 들들 볶아서라도 수능고사 성적만 잘 나오게 하면 내 자식의 앞날은 만사 오케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얘는 별 재주 없는 아이이니 내가 돈 좀 많이 모아서 어떻게 장사 밑천이나 하나 제대로 남겨 주면 그것 가지고 저 혼자라도 살아 갈 수 있겠지.’라고만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결코 그 졸업장 한 장, 그 돈다발 한 뭉치만 갖고서는 이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식이 머리가 좋고 돈을 잘 벌기만 하면 나중에 부모의 걱정거리가 될 일은 조금도 없을 것이라고 꿈에라도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그처럼 분명하게 선언하셨듯이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 자식을 언젠가 잃게 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그러니 다른 것은 남보다 좀 모자라서 안타깝다 할지라도, 다른 것은 남들만큼 못해주어서 미안하다 할지라도, 자녀에게 이 ‘구원의 지혜’만큼은 제대로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SFC 운동원들은 성경만 잘 배워 놓으면 그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훌륭한 독립인이 될 수 있으며, 여러분의 아들딸들은 그 말씀 하나만 소유해도 혼자서 아주 잘 살 수 있습니다.
  오직 성경교육만이 우리 학생들을 바른 신앙인으로 키우고 오직 그것만이 우리 자녀의 생명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을 꼭 기억하면서, 경향 SFC를 통하여 부지런히 성경을 알고 믿음을 얻고 구원의 확신을 지키는 SFC 운동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S.F.C. 운동원은 ‘신행일치의 경건생활’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16절과 17절에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의 “모든 성경”이란 물론 오늘날의 ‘66권 성경’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 구약 성경은 이미 집대성되어 있었고, 또한 이미 기록된 복음서들과 사도들의 서신이 교회들 사이에 회람되고 있었으므로, 오늘날 이 말씀을 신구약 66권에 적용시키는 것에는 아무 무리가 없습니다.
  그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함은, 성경책은 비록 선지자와 사도들이 쓰기는 했지만 결코 ‘하나님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일점일획까지도 모두 다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교훈”은 ‘가르침’을 뜻하는데 특히 바른 신앙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망”은 ‘죄에 대한 꾸짖음’을 뜻하고, “바르게 함”이란 ‘잘못된 것을 고치는 교도’를 가리키며, “교육”은 ‘훈련’ 특히 ‘행동지도’를 의미합니다.
  17절에서 “이는”이라고 시작되는 말은, 그처럼 가르치고 교육시킨 것이 그 이하에 나오는 결과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하는 것인데, 그것이 곧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구약 시대에는 보통 선지자에게만 붙여진 명칭이었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모든 성도’로 범위가 확대된 것으로서,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칭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성도가 그런 명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까?
  바로 말씀으로 교육을 잘 받아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즉 ‘교훈’을 받아 바른 신앙을 고백하고, ‘책망’을 통하여 진정한 회개가 따라오며, 그 다음에는 ‘바르게 함’ 즉 회개에 합당한 변화된 삶이 나타나고, ‘교육’ 즉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훈련 받음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선한 일’이라는 행위의 열매를 구체적으로 맺는 성도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스스로 드러내어 보여 주시는 ‘자기 계시’의 말씀인 동시에 또한 그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을 교육시키는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주의 신자는 성경을 가리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이라고 성경의 절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바른 신앙을 고백하게 되면 반드시 바른 행위가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교육에도 바로 그와 같은 균형이 필요합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녀들이 세상의 문화와 철저히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고상한 문화생활을 누리고 건전한 오락을 즐기면서 사는 것 역시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진 삶의 복 가운데 하나라고 전도서 3장 13절에서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가운데서도 이 세상의 불신적인 생활양식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성별 생활이란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몸소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사회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텔레비전을 통하여,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하여 세상의 감각적 가치관과 정욕적 쾌락을 급속도로 배우며 자라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자각하기 훨씬 이전에 ‘내가 무엇을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부터 고민하게 됩니다.
  덕이라든지 윤리라는 개념이 이들의 사고 체계에 자리 잡기 훨씬 이전에 육체의 관능적 쾌락이 무엇인지를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 오늘날 십대 소년소녀들의 비참한 현실인 것입니다.
  자연히 ‘의’, ‘거룩’, ‘경건’ - 이런 말들은 그들에게 점점 못 알아들을 ‘외래어’가 되어 가고, 이런 식으로 몇 세대가 지나면 그런 단어들은 아예 ‘고어’가 되어 버리고 좀 더 먼 후손에게는 사전을 찾아보아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죽은 용어’가 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비극이며 이 사회의 미래에 대한 저주나 다름 없지 않겠습니까?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는 말씀대로, 우리의 자녀에게 ‘경건생활을 통한 금생과 내생의 복’을 꼭 남겨주어야 합니다.
  주일마다 예배드리는 생활이 매일 학교에 가는 것 이상으로 귀중함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몸매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할 줄 알게 만드는 부모가 되어야 하며,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는 선한 일을 행함으로 얻는 기쁨이 얼마나 더 큰 것인지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남보다 더 잘 벌고 더 잘 놀기 위해서 속이고 속으며 살아가는 이 악한 세대를 거슬러 바른 신전인격자로서 자신의 생활도 구별하여, 선한 일을 행하며 사는 경건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며 그 복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우리 학생신앙운동을 통하여 꼭 배우는 SFC 운동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 첫 절인 13절에 보면, 당시 디모데가 처해 있던 주변의 영적 상황을 가리켜서 “13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하면서, 곧 이어지는 14절 이하의 말씀 첫마디에서 “그러나 너는”이라고 사도 바울은 강조했습니다.
  이 “너는”이란 말은 ‘너는 아니다, 너는 그렇게 되면 안 된다, 너는 반드시 달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불의와 거짓이 판을 치며 그런 것들로 인해 악화일로에만 있는 영적 혼란의 사회이지만, 우리는 최소한 우리의 자녀만큼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야만 할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자녀들의 주변이 그래도 ‘너는 그런 세상사조에, 너는 그런 불신 친구들에게, 너는 그 악한 사회 풍조에 절대로 같이 휩쓸려 가면 안 된다.’라고 가르치고 그렇게 키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인 까닭에 그냥 ‘주입식’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이 성경이 옳은지 그른지는 너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라.’하는 식의 ‘의사 존중’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사람은 본성적으로 다 죄인일 뿐인 까닭에 그냥 ‘일방적’으로 교훈하고 훈계하고 책망해야 합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지 않고 ‘인권’부터 존중해 준다고 하면 그 자녀는 오로지 ‘죄의 본성’을 따라 100퍼센트 악인으로 평생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른 신앙교육은 정말 훌륭한 학교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SFC’(Student For Christ), ‘학생신앙운동’이 곧 이 바른 신앙과 생활을 ‘배우게 하고 확신하게 하며 그대로 살게’ 만들어 주는 명문 신앙학교입니다.
  실로 SFC야말로 ‘선조의 정통 신앙’을 이어 받고 ‘구원의 복음인 성경’을 가르치며 ‘신행일치의 경건생활’을 훈련시켜 주는, 참으로 멋진 학교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좋은 학교에 넣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많이 씁니까?
  중고등학교 학군 좋은 곳으로 이사하게 되면 부모들은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유수한 대학교에 자녀가 합격하면 부모들이 오히려 더 기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이 ‘학생신앙운동’이라는 이 좋은 학군 속에, 이 유수한 전통이 있는 교회학교에서, 이 순수한 신앙과 정확한 말씀으로 최고의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이 ‘학생신앙운동’을 통하여 평생토록 ‘참된 신앙, 바른 말씀, 옳은 생활’에 대하여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경향의 SFC 운동원들과 또한 그와 같이 자녀를 양육시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