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밤예배 2019-09-01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고린도전서 4장 14-17절]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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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밤예배 2019-09-02
교사헌신예배
설교 :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고린도전서 4장 14-17절] 석기현 담임목사
찬양 : 교사 연합찬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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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고린도전서 4장 14-17절 / 석기현 담임목사
2019′경향의 강단(37)(2019년 9월 1일 / 주일밤 교사헌신예배)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고린도전서 4장 14-17절 / 석기현 담임목사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어느 다른 학교의 교지에 실린 한 교사의 수필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습니다.
  당시에는 매일 수업이 끝나면 한 분단씩 돌아가면서 교실 청소를 했는데, 어느 날 자기 반의 학생 두 명이 청소를 빼먹고 그냥 집으로 도망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 고등학교에서 그런 일이 생겼더라면 일단 몽둥이로 몇 십 대 맞고 훈육을 들을 상황이었지만, 여자 고등학교의 담임선생인지라 그러지는 못하고 다음 날 그 두 학생을 불러서 야단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뒤돌아 나가면서“아, 골 때리네.”라고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로 타이르는 것을 듣고서도 조금도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그저 ‘골 때리는’ 해프닝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 교사는 그냥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교사로서 느끼고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애환을 토로한 후에 그 선생님은 ‘나는 스승이 아니라 지식의 상인으로 전락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서글픈 자문을 하게 됩니다.
  즉 자신이 제자를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워 주는 참된 사도의 길을 걷지 못하고 그저 먼저 배운 지식을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파는 장사꾼 같은 존재가 된 것이 아닐까 자조하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자각을 가지고 그런 고민을 하는 교사란 그야말로 결코 흔한 ‘지식의 상인’이 아니라 소수의 ‘참된 스승’이라는 사실은 저도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처럼 대조적인 교사들이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고린도전서 앞 부분에서 ‘교역자와 교인과의 관계’에 관한 교훈을 여러 차례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 문제를 이처럼 자주, 그리고 길게 다루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고린도교회가 가지고 있던 많은 문제점들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역시 ‘영적 스승으로서의 교역자’와 ‘영적 제자로서의 교인’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관계부터 바로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자연히 그 외의 다른 문제점들이 많이 파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바로 그 교역자와 교인의 관계에 대하여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결론적으로 가르치는 부분입니다.

  본문 앞절에 보면 비록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의 일부가 스스로 ‘왕노릇’을 하면서 사도 바울을 괴롭혔지만, 바울 자신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대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그는 13절까지 엄하고도 신랄한 어조로 그들을 책망한 사실을 두고 14절에서“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즉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책망이 혹시라도 자기가 고린도교회 교인들로부터 당한 수모에 대하여 앙갚음하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서, 그런 개인적 감정이 전혀 내포되어 있지 않다고 천명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대하는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대할 뿐이었습니다.
  비록 그의 어조는 엄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 동기는 어디까지나 아버지가 자녀를 대하는 것과 똑같은 순수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15절의“스승”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당시 사회에서 종들 가운데 주인의 자녀를 맡아 양육하던 일종의 ‘가정교사’와 비슷한 직업인데, 오늘날 사회에서는 그에 해당되는 직종이 없고 따라서 정확한 동의어로 번역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라는 말은, ‘교인들 가르치는 일을 그저 싫은 일 억지로 떠맡아 하는 종처럼 의무적으로 하는 교역자들이 많이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세상 사회에서도 그저 ‘지식의 상인’에 지나지 않는 선생들이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교역자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치 ‘삯꾼’처럼 일하는 자들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자들을 가리켜 ‘일만 스승’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오늘날에도 지상교회 안에는 그런 직업적 교역자가 오히려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일지 모릅니다.

  하지만“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가정교사나 대리보호자가 잘 해 준다 해도 아버지가 직접 자녀를 가르치고 키우는 정성에는 따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처럼 흔한 ‘가정교사’의 자세가 아니라 진짜 목회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아비’의 자세로 항상 교인들을 대했던 것입니다.
  우선 아버지는 남의 자식을 맡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녀를 ‘낳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교역자는 교인들로 하여금 일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 확실히 중생 받도록 만드는 것이 제일 급선무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르친 교인이 정말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확신이 들 때까지 그 생명을 잉태하고 해산하는 자세로 섬기는 것이 바로 자기 제자를 ‘영적 자식’처럼 가르치는 영적 스승의 자세인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는 자녀를 낳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가르치며 키우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스승처럼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자기 생활로 본을 보여 주면서 가르치는 것이 아버지의 교육 방법입니다.
  17절 하반절에서 사도 바울이“나의 행사”“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 동격으로 쓰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해“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할 때에는 이처럼 자신의 ‘말과 행실’이 함께 그 교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유아세례 서약을 할 때에도 그 부모는 지금 유아세례를 받게 될 자녀를 위하여“친히 경건한 본분을 이 아이에게 보이기를 진력하면서... 이 아이를 주의 양육과 교훈에서 자라게 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경향교회의 주일학교와 SFC 교사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흔한 일만 스승’이 아니라 바로 이처럼 ‘아버지의 마음과 자세’로써 자기가 맡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스승들입니다.
  이 분들은 우선 그저 ‘아이를 가르치고 돌보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그 ‘삯’을 받는 것이 아니라, 100퍼센트 자원하여 봉사하는 교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사들은 그야말로 ‘아버지’ 즉 부모와 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여러분의 자녀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냥 일반적인 지식만 가르치는 세상의 선생들과는 달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SFC 운동원들을 다시 낳기 위하여’ 즉 이 자녀들을 예수 믿음 안에서 중생 받는 신앙인으로 키우기 위하여 해산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저 바른생활이 어떻다고 가르치고 훈육하는 ‘일만 스승’들과는 달리 자신의 ‘신행일치의 경건생활’을 통해 직접 본을 보여 주는 영적 시청각교육으로써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주 특별한 ‘역할모델’들인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모르기는 하지만, 이 교사들이 어린이와 학생들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하여 그 부모보다 훨씬 더 많이 기도하고 훨씬 더 뜨겁게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런 사랑과 희생의 봉사를 통해 우리 경향교회 주일학교와 SFC에서는 그냥 ‘선생과 학생’이 아니라 ‘부모와 같은 스승과 자녀와 같은 제자’ 관계를 통한 영적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지상교회 안에는 비록 대가는 받지 않지만 여전히 그저 ‘지식의 상인’처럼 자기가 좀 아는 성경 지식만 가르치는 교사들이 꽤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비록 ‘주일학교 교사’라는 임명장은 받고 그런 명칭으로 불리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사도 바울 시대의 ‘몽학선생’처럼 그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교사 노릇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경향교회의 교사들은 그런 흔해 빠진 ‘일만 스승’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경향의 주교교사들과 SFC교사들은 그 맡겨진 학생들을 자신의 친자녀와 같은 사랑으로써 돌보아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스승’이 되고,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SFC 운동원들은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듯이 바로 그런 뜨겁고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가르침과 지도를 따름으로써, 이 경향교회를 통해 ‘예수 안에 있는 복음으로써 신앙인의 후손을 많이 낳는’ 복이 더욱 왕성하게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