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9-06-02 “천국은 마치” 마태복음 13장 24-43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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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19-06-02
2019′경향의 강단(24)(2019년 6월 2일 / 주일 대예배)
“천국은 마치” 마태복음 13장 24-43절 / 석기현 담임목사
1부 오전 7:00 / 2부 오전 9:00 / 3부 오전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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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마치”

마태복음 13장 24-43절 / 석기현 담임목사
제가 미국에 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교회의 어느 집사님께서 찬양대인지 청년회인지 모두를 초청해 주셔서 그 집에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길가에 주차를 하고 집을 찾아가 보니 현관이 좀 수수하고 허름하게까지 보였습니다.
  그 집사님은 꽤 괜찮은 개인회사를 운영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저는 속으로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집안에 들어가 보니까 밖에서 보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었습니다.
  2에이커 즉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2천 평 쯤 되는 넓은 뒤뜰과 함께 아주 아름답게 꾸며진 멋진 집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 좀 더 오래 살다보니 비단 그 집사님 집뿐 아니라 많은 집들이 그런 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미국의 ‘상위급 중산층’의 개인 주택 대부분이 그처럼 현관에서 보면 별 것 아니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아주 크고 고급스러웠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피로 값 주고 세우실 교회가 그런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천국 비유’ 시리즈의 일부분인데, 여기서의 ‘천국’은 ‘내세의 천당’이 아니라 ‘지상의 천국’ 곧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 비유 중에 특히 ‘가라지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가 바로 ‘겉보기에는 볼품없어도 속이 아름답고 알찬’ 하나님의 집 즉 교회의 참 모습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저는 그 두 비유의 말씀을 통해 오늘날의 지상교회의 외면적인 인상과 내면적인 실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지상교회가 외면적으로는 순수하지 못해 보여도 그 안에 ‘우주적 교회에 속한 구원인’이 있습니다.

  24절부터 28절 상반절에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a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라고 기록했습니다.

  나중에 36절로부터 39절 상반절에서 주님께서는 이 비유의 뜻을 풀어 설명해 주셨는데, “36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a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라고 기록된 대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왜 교회가 세상의 천국이라고 하면서도 순수하지 못한가?’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왜 천당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 안에도 못된 사람, 악한 사람들이 있는가?’라는 비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질문에 대하여 ‘이 세상은 아직도 사탄이 활동하고 있는 시대이며 그 영향력은 교회 안까지도 부분적으로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이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대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코 잘못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집 주인”“인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뿌린 씨는 결코 어떤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은 “좋은 씨”였다는 점입니다.
  즉 주님께서 “세상”이라는 “밭”에 뿌리신 ‘복음’ 그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순수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그 좋은 씨가 뿌려짐으로써 “곡식”“천국의 아들들”이 자라나게 된 지상교회 안에 “가라지”도 같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마치 알곡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라지’이고 마치 의로운 선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악한 자의 아들들”에 불과한 무리가 이 지상교회 속에 분명히 섞여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 원인은 오로지 “마귀”의 방해공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라고 한 대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결코 주인의 실수나 종들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좋은 씨를 뿌린 후 당연히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에 자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바로 그 시간에 가라지가 몰래 뿌려졌던 것입니다.
  ‘가라지’는 겉모습은 밀과 비슷하게 생긴 잡초로서 ‘독보리’라고도 불렸습니다.
  그 당시 미운 사람의 밭에 몰래 가라지를 뿌리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곤 했었기 때문에 로마법은 남의 밭에 가라지를 뿌리는 사람을 처벌하는 엄격한 법률을 제정해 놓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여튼 그처럼 자기 밭에 가라지가 뿌려진 것을 보고 주인은 한마디로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라고 단언했습니다.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는 것은 전적으로 사탄과 그의 졸개인 마귀들의 장난 때문인 것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즉 비록 교회 안에 불순물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도 그것이 예수님께서 뿌려 놓으신 복음 그 자체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선포되고 있는 복음 그 자체는 오로지 ‘절대적으로 순수’하며 ‘최고 양질’의 ‘좋은 씨’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복음을 통하여 천국운동이 시작된 바로 그 시점부터 마귀 또한 즉시 방해공작을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까닭에 이 지상교회 안에는 아직도 온전치 못한 것들이 섞여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비록 현실적으로는 100퍼센트 순수하지 못한 지상교회라 할지라도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 지상교회로부터 100퍼센트 순수한 ‘의인들의 회중’ 곧 ‘우주적 교회’를 깨끗하게 구별해 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8절 하반절부터 30절에 “28b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기록했습니다.

  39절 하반절부터 4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뜻을 정확하게 풀어 주시기를 “39b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3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씨를 뿌린 밭에 가라지가 섞여 자라게 된 것을 본 종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것들을 당장 “뽑아”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종들의 말이야말로 일견 지극히 타당하게 여겨지는 것이었지만 주인의 반응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그 주인은 그처럼 흥분해서 나서려 하는 종들을 “가만 두라”고 제지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 크게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가라지와 알곡을 정확히 구별해 내기가 어렵기도 했고, 또 하나는, 둘이 서로 섞여 자랄 때는 그 뿌리도 서로 엉켜 있으므로 가라지만 뽑으려 해도 곡식의 뿌리까지 같이 뽑히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주인은 가라지가 함께 자랄 때 입게 될 손해보다는 이미 심겨진 곡식 한 포기라도 결코 뽑히지 말아야 할 것을 더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 대신에 가라지와 알곡을 가려내는 일은 “추수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인은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추수 때가 되면 그 열린 알곡의 모양을 보아서 분명히 구별하기 쉽게 되며, 그때는 비록 뿌리가 서로 엉켜 있다하더라도 어차피 밑동을 자를 터이니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때 가서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묶어놓고 그 후에 곡식을 추수해서 “곳간”에 넣으면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1절에서 그 가라지의 정체를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즉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혹하며 또한 자신이 스스로 죄를 짓고 살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주님 심판사역을 수종들 “천사들”이 그 가라지 인생들을 “그 나라에서” 즉 천국으로부터 “거두어 낼” 때에 그들에게는 오직 “울며 이를 갈게” 될 일 즉 영원한 슬픔과 영원한 후회가 있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반면에 오직 알곡 성도들만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입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한 교회 안에서 섞여 살고 별 차이 없어 보이던 교인들이었지만, 일단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그 같은 밭에서 자라던 ‘알곡과 가라지’들이 단 한 톨도 어김없이 철저하게 분리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지상교회 내에서 모든 ‘가라지’를 깨끗이 뽑아내고 정말 100퍼센트 순수한 교회를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이상은 특히 목사도 그렇지만 일반 신자 역시 한 번쯤은 다들 꿈꾸게 됩니다.
  하지만 완전무결한 교회를 이 지상에서 건설하겠다는 욕망은 실제로 ‘가라지’보다는 ‘곡식’을 많이 뽑아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었습니다.
  중세의 천주교가 걸핏하면 파문, 화형 등으로 자기들 딴에는 가라지를 가려낸다고 했지만, 그 결과로 뽑히고 죽임을 당한 것은 오히려 경건한 개혁주의 신앙의 성도들이었습니다.
  중세 천주교는 약 30만 명에 이르는 소위 ‘마녀’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처형했는데 그 대부분이 실제로는 정신이 멀쩡하고 결백한 여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교회가 만일 이 땅에서 완전무결한 순수를 이룩하려고 한다면 가라지보다는 곡식을 더 많이 뽑을 위험이 다분합니다.
  조금만 이상하게 보여도 ‘이 교인은 가라지다.’라고 정죄하고 제명한다면 대부분의 교회들이 다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교회 안에 약간의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인정을 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명하셨는데, 어떤 목사가 이 세상에서 100퍼센트 순수한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말이겠습니까?
  그 대신, 비록 이 지상교회 안에서는 다 비슷비슷한 교인처럼 행세하며 살고 있고 아무도 가라지를 뽑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 주님께서 직접 가려 뽑으실 결정적인 한 날이 반드시 다가오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흰 것과 검은 것을 최종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심판의 영역이며, 그 최후심판의 권한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만 전적으로 주어졌으며, 그런 까닭에 심판은 예수님께서 반드시 친히 행하실 마지막 사역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땅에 교회를 통한 천국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그 교회에 대한 불만과 비판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왜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이처럼 범죄와 악이 들끓고 있는가?’ 하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복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결코 아님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로지 이 세상이 아직도 원수 마귀가 활동하며 그 ‘악한 자의 아들들’이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 있기 때문일 따름입니다.
  ‘왜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조차 완전하게 거룩하고 선하게 살지 못하는가?’라는 비난도 흔히 쏟아집니다.
  그 대답은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 즉시 다 ‘성화의 완성에 도달한 구원인’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직 교회 안에도 알곡과 약간의 가라지가 섞여 있는 공존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결코 모순은 아니며, 결코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100퍼센트 순수한 교회는 이 땅에 없지만 100퍼센트 순수한 신자는 분명히 지금도 교회 안에서 자라나고 있고, 그 순수한 교인과 불순한 교인이 깨끗이 구별될 날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등록된 교인 전부를 구원받게 할 완전한 교회는 이 세상에 없지만, ‘좋은 씨’의 복음을 그대로 믿고 ‘알곡’이 된 진짜 신자들만 모인 ‘우주적 교회’는 이미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 안에서 성립되어 있으며 마지막 심판날에는 그 ‘우주적 교회’가 곧 ‘천국 교회’로 그대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무결하게 순수한 교회’란 참 멋있게 들리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서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교회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좋은 씨’ 곧 ‘진리의 복음’을 영접하여 잘 자라나는 ‘순수한 알곡’이 되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완벽하게 모으실 그 ‘천당 의인의 회중’에 꼭 들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지상교회가 겉으로는 미약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 ‘세상을 정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31절과 32절에 “31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보면서 흔히 가지게 되는 또 하나의 질문은 ‘지상천국이라는 교회가 세상과 비교해 볼 때 왜 이토록 약하고 볼품없는가?’라는 것입니다.
  이 ‘겨자씨 비유’와 다음에 나오는 ‘누룩 비유’가 바로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겨자씨”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는 아니지만 하여튼 매우 작은 씨 중의 하나입니다.
  비록 겨자씨는 작은 것이지만 일단 그것이 자라면 최고 3미터 높이까지도 이르는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만큼 됩니다.
  원래 겨자씨였을 때에는 새들에게 먹힐 것 같은 미약한 존재였지만 일단 자라나면 오히려 그 새들을 품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막 시작되었을 때에도 그것은 다른 막강한 이방종교의 세력에 의하여 간단히 압도될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그리스의 종교는 화려한 신전들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거창한 의식들로 찬란했고 또 절대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종교이기도 했습니다.
  유대교 역시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등 박식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사람들로 짜인 막강한 전통과 제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종교들과는 대조적으로, 이제 막 탄생된 기독교는 국가로부터 박해받는 종교요 대부분의 교인들이 다 가난하고 무식한 평민이나 종 혹은 노예로 구성된 종교였습니다.
  참으로 새에게 곧 잡아먹힐 것 같은 겨자씨처럼 실로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겨자씨’는 자라서 오히려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천국 운동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면서 이전에 ‘표적을 구하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구원의 기적’을 보게 되었고 ‘지혜만 찾던 헬라인’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그 꼿꼿한 유대인들과 그 세련된 이방인들이 오히려 ‘교회의 나뭇가지’로 찾아오게 되고 ‘복음의 그늘’ 밑에 앉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견 볼품없어만 보이는 천국운동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놀라운 면모를 보여주십니다.
  바로 본문 33절에 “33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고 기록된 사실입니다.

  “누룩”은 당시 일단 나쁜 인상을 먼저 주는 물질이었습니다.
  일종의 발효소이니까 뭔가 지저분하게 보이고 냄새도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사회에서는 이 누룩이 유월절 때 반드시 치워버려야 할 부정한 것들 중에 하나가 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천대받는 누룩에 한 가지 큰 힘이 있는데 바로 곡식 가루에 미치는 놀라운 영향력이었습니다.
  어떤 곡식 가루든지 이 누룩만 넣으면 그 발효력 때문에 크게 부풀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대로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고 부풀려서 떡을 만들면 무려 100명 이상의 식사 분량이 되었던 것입니다.

  천국운동이 시작될 때 그 첫 인상도 별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는 누룩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며 천국운동을 예비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광야에서 반쯤 미쳐 사는 사람으로만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부분 어부나 세리, 혹은 열심당원 등으로 천하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문제 있는 배경 출신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 천국운동이 세상사회에 들어가게 되자 신기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루에 비해서 누룩은 상대적으로 소량이었고 또 깨끗한 인상을 주는 가루에 비해 누룩은 지저분해 보이는 것이었지만, 가루는 누룩을 변화시킬 수 없는 반면 오직 누룩이 가루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꼭 마찬가지로, 그 ‘별 볼일 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오히려 ‘있어 보이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신기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식하게 여겨졌던 자들이 오히려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을 변화시켰고, 어부 출신들이 오히려 세련된 이방 문화인들을 전도해 나갔던 것입니다.

  오늘날 역시 개척교회가 세워질 때마다 그것을 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빌딩 틈에 작은 교회, 볼품없는 교회들이 세워짐으로써 그 상가나 그 동네 분위기를 망치게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교인들 중에서도 교회가 작으면 너무 초라하게 보인다고 해서 작은 교회들을 둘로 합쳐서 큰 교회로 만드는 것이 아주 잘하는 일인 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교회 둘을 하나로 합친다고 해서 천국운동 그 자체가 커진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은 간단한 산수계산으로도 뻔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실제로 커진 것이 아니라 겉모양만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진짜 교회의 부흥은 그 교회 안에 ‘겨자씨의 성장력’과 ‘누룩의 영향력’이 있을 때 나올 수 있습니다.
  개인의 영혼과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은혜, 먼저 변화된 성도가 이웃과 세계를 향해 펼치는 구령의 열정, 바로 이것이 참된 교회가 소유하는 누룩입니다.
  우리 경향교회만 하더라도 첫 주일 80명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교단과 선교지를 합쳐 2만 교세를 이루었고 앞으로 30만을 향해 줄기차게 나아가고 있는 것 역시 바로 이 ‘누룩’이 끊임없이 발효되어 ‘가루’를 부풀리는 가운데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 ‘큰 나무’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의 위대한 것, 이 인간사회의 화려한 것과 비교해 볼 때 기독교는 일견 초라하게 보입니다.
  청와대를 볼 때 교회는 세상 권력 앞에 언제라도 잡아먹힐 ‘겨자씨’처럼 작게만 보이고, 방대한 인터넷 문화를 볼 때 그저 ‘오래 전 옛날 말씀’인 성경책이나 읽고 있는 기독신자란 참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그 미약한 겨자씨 속에는 ‘양적 성장력’이 있고 그 보잘것없어 보이는 누룩에는 엄청난 ‘질적 영향력’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교회 안에는 세상에서 더 유력해 보이는 것들을 오히려 정복해 나갈 큰 성장력이 숨어 있으며, 중생 받은 각 신자 속에도 세상에서 더 부요하고 더 높고 더 똑똑한 사람을 오히려 변화시키고도 남음이 있는 신비한 영향력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부단히 확장되고 있는 천국운동은 비록 겉으로는 미약하고 초라해 보인다 할지라도 이 세상의 더 위대하게 보이는 것들을 오히려 포용하고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실로 ‘온 땅을 정복할 능력’이 그 속에 있음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34절과 35절에 “34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어차피 천국의 신비를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완전히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감추인” 비밀의 일부분을 “드러내어” 가르쳐 주고 계시며, 그것만 깨달아도 우리에게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교회의 색깔이 완전히 깨끗하지 못한가?’, ‘왜 교회의 모양이 아름답지 못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이 ‘유형교회’ 안에서 혹 불순한 면모를 보고 실망할 때가 있습니까?
  그것들을 비판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가 먼저 순수한 신자가 되도록 각성해야 합니다.
  다른 ‘가라지’를 신경 쓰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좋은 씨’ 즉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무형교회’ 곧 ‘우주적 교회’에 확실히 속한 ‘알곡 신자’인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지상교회가 ‘겨자씨’처럼 너무 작고 약해서 낙심될 때가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나 자신부터가 전도와 봉사를 통해 ‘가루’를 부풀게 만드는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그처럼 교회의 한 지체인 내가 먼저 변화를 받고 성장해야, 그런 성도들이 모인 신앙공동체도 절로 큰 ‘나무’로 자라서 더 많은 사람의 영혼을 품을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 부흥사경회 때부터 ‘경향교회 노래’의 3절 가사 중에 ‘삼십만을 이룩하여’라는 구절이 ‘교회충만 이룩하여’로 변경되었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 뜨겁게 강조하신 그 ‘교회충만’의 의미가 오늘 주신 말씀 속에도 들어 있습니다.
  교회가 비록 외면적으로는 순수하지 못한 것 같아도 그 안에는 ‘100퍼센트 순수한 구원인’들이 충만합니다.
  교회가 겉으로는 미약하고 볼품없게만 보여도 그 속에는 ‘온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이 충만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교회가 겉보기에 좀 불순하고 불완전하다 해서 실망할 필요는 결코 없습니다.
  어차피 이 지상교회가 완전한 천국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우리 예수님께서 ‘순수한 의인’들을 모으시고 그 ‘영광스러운 우주적 교회’가 이 세상의 모든 ‘산들과 작은 산들’ 위에 높이 서게 될 날, 곧 진짜 영원한 천국이 도래할 한날은 분명히 오고야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내세의 천국’에 들어가게 될 그날까지 이 ‘지상의 천국’인 교회를 중심으로 나 자신부터 구원의 확신이 분명한 ‘알곡 신자’로 착실히 성장하는 가운데 가든지 보내든지 부지런히 복음을 전파하는 ‘누룩 전도자’로 섬김으로써 이 교회를 더 많은 영혼들이 깃들 수 있는 ‘가지가 무성한 나무’처럼 부흥시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