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9-04-14 “여호와의 산, 하나님의 전” 이사야 2장 1-22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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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19-04-14
2019′경향의 강단(16)(2019년 4월 14일 / 주일 대예배)
“여호와의 산, 하나님의 전” 이사야 2장 1-22절 / 석기현 담임목사
1부 오전 7:00 / 2부 오전 9:00 / 3부 오전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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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산, 하나님의 전”

이사야 2장 1-22절 / 석기현 담임목사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회의 찬양대원들을 따라서 해인사 부근에 있는 가야산에 올라가 본 것을 제외하고는 등산이라고 할 만한 등산을 해 본 적이 없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고산등반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즐겨 시청합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기 위해 도전하는 모습은, 저처럼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절로 감동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끝내 등반에 성공한 후에 그 정상에서 보게 되는 사방팔방의 장면은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에는 해발 8천 미터 급의 산들이 즐비하지만 에베레스트 산꼭대기에 서게 되면 그 모든 고봉들이 다 눈 아래에 펼쳐지면서, 실로 ‘세계의 지붕’이라는 별명이 가슴에 딱 와 닿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등반가들이 10명 중 1명의 비율로 목숨을 잃는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려고 시도하는 것도 바로 그 한순간의 기분, ‘천하가 다 내 발밑에 있다.’는 그 짜릿한 쾌감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 기독신자들이 그와 같은 쾌감을 바로 교회를 통해 영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1절과 2절 상반절에 “1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말일에”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마지막 날들’이라는 뜻으로서, 성경에서는 세상 역사의 마지막인 종말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의 신약 시대 전체를 종말 시대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란 바로 성전이 서 있던 시온산을 가리키는데, 신약 시대에서 교회를 비유할 때 대표적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나중에 3절에서 “여호와의 산”“하나님의 전”이 동격이 되어 있는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그 교회가 ‘모든 산들보다 높은 꼭대기에 서게 되며 모든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 돋보이게 된다.’고 했는데, 여기서 “모든 산”이나 “작은 산”은 불신권력과 우상숭배 세력을 가리킵니다.
  즉 이 세상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참된 교회는 스스로 최고라고 교만해 하는 세속적인 권력이나 잡다한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 종교들의 머리 위에 서서, 그들을 발밑으로 내려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설립 46주년과 함께 ‘Y-4 희년’을 맞이하게 된 오늘 주일에 저는 우리 경향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진정 ‘세계를 받은 교회’로서 ‘세상 꼭대기에 서 있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될 수 있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구원의 복음’으로써 세상을 정복하는 교회가 말세가 될수록 우뚝 서게 됩니다.

  2절 하반절부터 4절의 말씀에 “2b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세상 종말이 가까워지는 가운데에도 ‘여호와의 전의 산’에는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해 놓으신 택자들이 원근사방의 각 나라와 민족으로부터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라고 하면서 교회 안으로 모여들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아무 교회에나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직 진짜 구원의 복음이 있는 교회를 통해서만 십사만사천 인의 ‘남은 자’들이 모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절 하반절에 그처럼 ‘하나님의 전’에 모일 백성들이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고 말하게 된다고 한 것이 바로 그 뜻입니다.
  “그의 길”이란 바로 ‘구원으로 이끄는 진리’ 즉 ‘복음’을 뜻하며, 이것은 “율법”“여호와의 말씀”과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시온”에서부터,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라고 한 것은 곧 하나님께서 오직 ‘교회’를 통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해 주고 계심을 가리킵니다.
  즉 오직 ‘성경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를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자를 불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천당의 영생을 주시는 놀라운 구령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의 길’이 있다고 당당하게 외쳐야 합니다.
  다른 종교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기복주의 종교이든지, 아니면 ‘사람이 어떻게 착하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윤리적 종교일 뿐입니다.
  그런 종교들은 돈과 명예를 가진 자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사기꾼 종교’로, 신을 믿지 않아도 양심대로 살고 있다고 자처하는 자들에게는 그저 ‘위선자의 종교’로 치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구원의 복음’이 없는 그런 교회는 결코 ‘세상의 산’들 위에 높이 설 길이 없을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참된 복음을 외치는 교회는 그야말로 빈부귀천 지위고하 지식유무를 막론하고 천하만민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그런 까닭에 바로 그런 구원의 복음을 소유하고 전파하는 교회만이 아무리 문명이 발전되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산 위에 세워진 등대’와 ‘홍수 위에 떠 있는 방주’와 같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교회를 통해 바른 복음이 세상에 전파될 때 그 결과 사람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게” 되며, 그리하여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세상 역사에서는 종말에 이를 때까지 싸움과 전쟁이 그칠 수가 없습니다.
  그 어떤 통치자도, 그 어떤 세계적 협력기구도 결코 인간사회에 완전한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바른 교회는 그 선포하는 참된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성도로 하여금 바로 그 구원의 확신으로 인하여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된 평화’를 누리게 해 줍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지만, 실로 ‘복음은 원자폭탄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실로 얼마나 놀라운 예언입니까?
  ‘세상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참된 교회는 더욱 성경 말씀대로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교회는 칼과 창의 힘을 자랑하는 대국들 위에 우뚝 서게 되고 세계 각국의 민족들이 그 교회로 모이게 되는 일이 끊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저 옛날 구약 이사야 시대 때에 장차 도래할 신약교회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이처럼 멋있게 선포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처럼 ‘세상을 향해 왕노릇’하기는커녕 그저 ‘세상에 빌붙은 종노릇’만 하는 교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목사라고 하면서도 ‘사회정의 구현’ 운운하면서 정치운동이나 하며 돌아다니는가 하면, 심지어 ‘화해의 복음’이라는 미명으로 북한의 공산독재자까지 두둔합니다.
  하지만 그처럼 계층 간의 갈등을 불붙이고 세속권력의 시녀 노릇이나 하는 목사와 교회들 때문에 오히려 인간사회에는 ‘서로 치는 싸움’과 ‘칼과 창의 전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교회 본연의 사명 곧 ‘복음 선포를 통한 구령운동’에 온 힘을 다 쏟는 교회만이 세상의 그 어떤 단체나 세력의 ‘산’들보다 훨씬 더 높이, 굳게 서 있는 ‘최고봉’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율법’은 오직 ‘시온’에서, ‘여호와의 말씀’은 ‘오직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왔던 그대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길’을 오직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며 그 ‘구원의 길로 행하는 삶’도 오직 ‘교회중심’으로만 누릴 수 있게 해 놓으셨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 ‘세계사의 중심은 구속사다.’, ‘구속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운동은 그의 몸 된 교회운동을 통해 나타난다.’, ‘교회운동은 케루그마 즉 복음운동을 통해 전개된다.’라는 경향인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치신 것도 바로 이 원리입니다.
  이 ‘역사의 벽보’를 정확하게 깨닫고 그 귀중한 복음전파의 사명을 완수해 낼 때, 그런 교회는 절로 많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 내는 ‘산 위에 높이 선 등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른 복음을 소유하고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참된 교회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세상 역사가 흘러가고 인류의 종말이 다가와도 결코 중단되지 않고 최후의 최후까지 즉 예수님 재림하시는 바로 그 순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인류사회가 온갖 재난으로 흔들리고, 아무리 민족들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이 이어지고, 아무리 여러 강대국들이 득세와 몰락을 반복하더라도, 참된 교회는 그 와중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산들 위에 굳게 서서’ 온 세상을 향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외쳐야만 합니다.
  그러면 ‘만방’에서 ‘많은 백성’들이 그처럼 ‘구원의 길’이 있는 ‘여호와의 산’, ‘하나님의 전’을 향해 절로 모여들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사를 통하여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강해지고 더 높아지고 더욱 뚜렷이 돋보이게 된 종교가 무엇입니까?
  바로 기독교입니다.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때로는 환난과 박해로 인하여 교회가 잠시 흔들린 적은 있었지만, 그 어느 때에도 완전히 쓰러진 적은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수천 년 동안 이 세상 역사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의 위치를 지켜 왔으며, 결국 인류와 우주가 종말을 당하게 될 때에도 끝까지 굳게 서 있는 최후 승자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만 ‘온 세상을 구원할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말이 올 때까지 이 인류 역사를 통해 ‘큰 산’과 ‘작은 산’들 같은 온갖 세속권력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오직 ‘성경이 선포하는 복음’만을 조국과 세계에 소리 높여 전파함으로써 이 경향교회를 더욱 굳건한 ‘구원의 산성’으로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심판하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우상종교를 이기는 교회가 종말의 날에 높이 서게 됩니다.

  5절부터 11절에 기록하기를 “5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6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7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8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9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10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11그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라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을 향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빛’이란 누가 보아도 어두움과 명백하게 구별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구원의 길은 이하에 나오는 우상종교의 미혹과는 뚜렷하게 구별되어 밝히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져 있던 우상숭배 행위는 6절 이하에서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 첫째는 “동방 풍속” 즉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민족들이 몰록신에게 자기 자녀를 제물로 바치던 가증한 행위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블레셋 사람들같이 점을 쳤다”는 것은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 만연하던 미신적 행위를 좇았다는 뜻이며, 끝으로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한” 것은 하나님보다 불신자들과 훨씬 더 가깝게 교제하며 지낸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악한 배교 행위를 계속한다면, 아무리 혈통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 때에 벌어지게 될 첫 번째 현상은 바로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마는 것으로서, 나중에 12절과 17절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됩니다.
  즉 세상에 살 때에 강퍅한 마음으로 목을 꼿꼿이 세우고 다니던 교만한 악인들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녹다운시켜서 땅바닥에 엎어지게 하실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뜻입니다.
  심판날이 닥치면 제아무리 이 땅에서 잘난 듯이 살던 불신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며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게 될 뿐인 것입니다.

  그 뒤에 따라오는 현상은 그처럼 두려운 마지막 날을 당하게 된 우상숭배자들이 그야말로 쥐구멍을 찾아 숨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는 말씀 역시 나중에 19절과 21절에서 재차 반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암혈”이나 “토굴”이나 “험악한 바위틈”으로 도망친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지금 당장 자기네 머리 위로 떨어지는 하나님의 그 무서운 진노가 너무나 두려운 까닭에 그런 아무 소용없는 몸부림을 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그 마지막 날에는 오로지 심판주 하나님만 지극히 높은 곳에 홀로 서시게 됩니다.
  바로 11절 하반절에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고, 그리고 나중에 17절 하반절에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라고 반복 강조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문자 그대로 최후에 가장 높은 곳에 서 계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12절 이하 22절에 보면, 그 심판주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낮아질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들이 세 부류로 나타납니다.
  그 첫째는 오로지 재물만을 최고로 높이 받드는 사람들인데, 16절의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이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스’는 고대사회에서 국제무역을 하던 상선들이 많이 드나들던 항구로 유명했으며, ‘아름다운 조각물’이란 그런 상선들을 통해 거래되었던 고가의 상품들을 가리킵니다.
  앞서 7절에 나왔던 대로, 불신자들은 그처럼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한” 경제대국을 무조건 우러러 보기 마련입니다.
  9절의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한다는 말씀대로 사람들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재물을 지극히 숭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9절 하반절에서 천명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께서 심판주로 오시는 그날에는 그런 자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시고 철저히 낮추어 버리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또한 권력 역시 인생을 ‘거만하고 자고하게’ 만듭니다.
  7절에서 언급된 대로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여기 15절에 기록된 “높은 망대”“견고한 성벽”을 자랑하는 군사적 강대국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 나라의 권력자들은 13절 말씀대로, 높고 곧게 자라기로 유명했던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처럼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4절의 “모든 높은 산”“모든 솟아오른 작은 언덕” 역시 그런 세속적 권력자들의 교만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높은 산’에 해당되는 왕들은 물론이고 ‘작은 산’에 해당되는 관료들까지도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 앞에서 ‘솟아올라’ 있는 교만을 똑같이 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마지막 날이 임할 때에는, 17절에서 엄중히 경고하는 그대로, 저 하늘의 주권자의 권위 앞에 여지없이 “굴복되며” “낮아지고” 말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끝날에 가장 낮추어질 대표적인 대상은 바로 20절에 기록된 “은 우상과 금 우상”들입니다.
  불신자들이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높이 받들어 섬겼던 온갖 우상들이야말로 최후 심판 때에 제일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래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우상들을 “두더쥐와 박쥐에게 던져” 버린다고 했는데, 이것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천시되던 부정한 동물들이었습니다.
  즉 불신자들이 세상에서 그토록 귀중히 여기고 의지했던 우상들이 실제로는 아무 가치 없는 무익하고도 천한 존재임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22절에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라고 결론적으로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인생, 하나님 아닌 다른 우상을 더 높이 받드는 인생이란 그야말로 ‘셀 가치도 없는’ 저질적인 인생이며, 마지막 심판날에는 가장 큰 수치와 가장 무서운 징벌을 받게 될 뿐인 것입니다.

  법정에서 판사는 당연히 피고인보다 높은 자리에 앉게 됩니다.
  세상 끝날 최후의 심판대에서도 당연히 하나님께서 가장 높은 ‘백보좌’에 앉으셔서 악인들을 내려다보며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살 동안 자기 잘난 줄 여기며 교만에 빠졌던 자들, 재물과 권력을 받들어 모시며 살았던 불신자들은 그 두려운 심판주의 권위 앞에 ‘굴복되고’ 그 엄중한 판결 앞에서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무엇이든지 간에 하여튼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기는 우상을 경배하며 살았던 자들은 결국 마귀와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불못에 떨어지게 될 때에 똑같은 꼴을 당하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일인지하만인지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 재상이 위로는 임금님 한 분만 있고 아래에는 모든 백성이 있다는 의미로 썼던 말입니다.
  그 말은 바꾸어 생각하면, 재상은 일단 ‘일인지하’의 위치를 자각하고 잘 지켜야만 ‘만인지상’의 자리도 유지할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만약 재상이 스스로 임금 행세를 하려 하면 ‘만인지상’은 고사하고 역적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당할 뿐인 것입니다.

  교만한 우상 종교인들이 바로 그와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지 않습니까?
  사제가 중보자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고, 교주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절대적 교권을 행사합니다.
  장차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처럼 ‘자고한 자’들이 어떤 형벌을 받아 마땅한지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가장 높으신 ‘심판주 하나님’을 지극히 두려워하며 받들어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높은 산’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앉아 있는 불신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을 향해 그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옥에까지 낮추실 마지막 심판의 한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그처럼 ‘일인지하’의 위치와 사명을 정확하게 지키기만 하면 절로 ‘만인지상’, 실로 모든 ‘높고 높은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들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서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세상에 살 동안 부와 권세를 자랑하며 자기가 최고라고 교만했던 자들이 결국 가장 낮은 곳에 엎어지게 될 날은 반드시 닥쳐옵니다.
  평소에 기독신자들을 깔보고 전도자들을 멸시하고 교회를 비난하며 기독교를 핍박했던 우상종교인들이 그 자업자득의 징벌을 받게 될 한 날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심판의 날 온 세상과 인류 위에 홀로 높이 서게 되실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하며 지극히 받들어 모심으로써, 이 경향교회를 통해 모든 ‘높은 산’과 ‘솟아 오른 언덕’들 위에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계 2:26)를 함께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 2절에서 “말일”이라고 했던 날을 12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일’은 바로 하나님께서 심판주가 되셔서 당신의 모든 공의를 이루시며 최고의 영광을 홀로 받으시는 유일한 주인공이 되실 날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날이 오면 그야말로 하나님 한 분만 높이 서 계시고 다른 모든 피조물들은 그 절대주권자의 권위 앞에서 납작 낮아질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바로 그 두려운 날이 오히려 기다려지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지극히 높으신 심판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될 자들이 아니라, 그 영광에 동참할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날을 생각할 때 떨리기는커녕 오히려 가슴이 설레며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상교회는, 원수 마귀가 만만하게 여기고 제법 흔들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기독신자들은, 불신자들이 얕잡아 보고 모욕하고 핍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오시는 날에는 완전히 전세역전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각자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똑같은 형체로 영화에 이르게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게 될 그 날, 세상에서 교회와 신자를 짓누르고 올라타려고 했던 그 원수들은 이제 문자 그대로 땅바닥을 길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산아, 바위야, 날 덮어다오.’라고 절규하며 쥐구멍을 찾아 헤매면서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가장 낮은 곳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말일’은 우리에게 그 얼마나 통쾌한 날이 되겠습니까?
  그 ‘만군의 여호와의 날’은 참된 교회와 성도에게는 진정 영광스러운 최후승리의 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저 장망성 속에 파묻혀 있거나 세속권력의 꽁무니를 뒤쫓아 가거나 우상숭배자들과 어울려 있는 교회는 오로지 ‘도토리 키재기’하는 ‘언덕’일 뿐입니다.
  오직 ‘구원의 진리’라는 검을 손에 쥐고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곧 세속권력을 이겨내며, ‘반드시 속히 오실 심판주’를 널리 선포하여 ‘땅에서 올라온 짐승’ 곧 거짓 선지자들을 끝내 물리치는 교회만이 그야말로 ‘천하를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는’ 높은 ‘여호와의 산’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46년 동안 내내 달려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구원의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세상을 정복’하고 ‘온 세상을 심판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으로써 ‘세상을 판단’하는 가운데, 주님의 재림이 더욱 가까워진 이 종말 시대에 우리 경향교회를 온갖 ‘산들과 작은 산들 위에’ 더 굳게, 더 높이 함께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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