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8-12-09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태복음 24장 1-31절/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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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18-12-09
2018′경향의 강단(51) (2018년 12월 9일 / 주일 대예배)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태복음 24장 1-31절/ 석기현 담임목사
1부 오전 7:00 / 2부 오전 9:00 / 3부 오전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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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태복음 24장 1-31절/ 석기현 담임목사
얼마 전에 무슨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한 과학자가 ‘지구 온난화’에 대하여 강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강연의 끝부분에 가서 그 과학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불과 몇 십 년 후에 지구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대재앙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은 ‘이미 자연계는 오래 전부터 명백한 징조들을 수도 없이 보여 주었는데, 그때 과학자들이 인류는 지구의 멸망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그렇게 소리 높여 경고해 주었는데.’라고 후회할 것이다.” 그 과학자로서는 점점 더 빈도수와 강도가 높아지는 태풍과 쓰나미, 역사상 유래 없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는 빙하와 빙붕들만 보아도 지구의 온난화는 더 없이 명백한데도, 정작 강대국의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모든 징조와 경고를 무시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신자는 최소한 ‘지구 온난화’가 인류와 역사의 종말이 되지는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끝’은 오직 ‘주의 임하심’과 함께 올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데, 바로 본문 1절부터 3절에 기록된 대로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제자들”이 그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면서” 그것이 아름다운 대리석과 값비싼 장식들로 꾸며진 것을 칭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느닷없이 그 화려한 성전 건물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는” 멸망의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나중에 그들이 “감람산”에 도착했을 때 조용히 예수님께 다가와서 “어느 때”에 그런 일이 일어나겠으며 또한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이 오기 전에 “무슨 징조”가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무너질 정도의 날이란 적어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종말의 날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 질문들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어느 때’에 대하여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으시고 그 대신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대답해 주셨습니다.

  이 시간 저는 그 주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경고해 주는 명백한 ‘말세 징조’들이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미혹하는 이단의 등장’이 세상 끝이 가까워질 때 나타날 대표적 징조입니다.

  4절부터 8절에 기록하기를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신” 예수님의 제일성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에 대하여 속임을 당하거나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즉 말세가 가까움을 보여 줄 ‘징조’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보다 언제 말세가 되든지 간에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부터 강조하신 것입니다.

  신자의 신앙을 미혹하는 일들은 우선 ‘가짜 메시아’들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즉 자칭 예수라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면서 “나는 그리스도라”고, 즉 자신이 바로 ‘재림한 메시아’라고 주장하며 신자들을 미혹할 일이 반드시 생길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단들은 특히 “난리와 난리의 소문”들이 곳곳에서 연이어 터질 때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함으로써 더욱 활개를 치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참된 신자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온갖 ‘난리와 난리’가 점점 더 많이, 더 크게 벌어지는 현상은 그런 ‘가짜 메시아’들이 주장하듯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한 증거’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이런 일”은 원래부터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일 뿐이며 “아직 끝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전쟁들이 세계 도처에서 끊일 새 없고, 지구촌 곳곳에 “기근과 지진” 등의 재해가 연이어 벌어지겠지만, 그것들은 그저 말세가 가까워질 때 필연적으로 벌어질 “재난의 시작”일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예언은 바로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아니겠습니까?
  소위 ‘감람나무’ 혹은 ‘동방의 계명성’으로 자처하면서 자신이 바로 재림한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역시 그런 사이비 교주들은 곳곳에 등장하고 있으며 끝내 그 추종자들과 함께 집단 자살극을 벌이는 일까지 발생했던 것입니다.

  이런 이단들의 대표적인 특성은 항상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이용하여 그 추종자들을 위협하는 데에 있습니다.
  ‘세상이 곧 망한다.’는 말은 특히 종교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미혹하는 데에는 가장 효력이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런 ‘가짜 재림 예수’일수록 특히 ‘민족 간의 내전, 나라 간의 전쟁’이나 ‘지진, 기근, 온역 등의 천재지변’ 따위가 있을 때마다 그런 사건들을 자기네가 주장하는 ‘재림 일정 시간표’에 억지로 뜯어 맞추어 넣어 그럴싸하게 꾸미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단의 미혹에 빠져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재림하신 예수님께서 일일이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면서 ‘내가 바로 재림한 그리스도다.’라고 소개해야 될 정도라면, 그 사람은 결코 진짜 예수님일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위를 동반하시고 세상 어느 사람에게나 한눈에 재림주이심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우주적으로 재림하실 예수님께서, 그처럼 구차한 모습으로 오실 리가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아무 날 아무 시에 세상 끝이 온다.’라는 따위의 예언을 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36절)고 천명하신 사실을 자기는 안다고 하는 것이니, 재림주는커녕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이단임에 분명합니다.
  비록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무서운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우리는 그런 것들을 세상의 종말의 날짜와 직결시켜 계산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라’고 분명히 일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세의 징조를 말씀해 주시면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오직 ‘미혹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또한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는 세상 끝이란 공포스러운 멸망이 아니라 새 하늘 새 땅에서의 새 생명이 시작될 날이니 그런 가짜 메시아들의 미혹이나 온갖 천재지변을 당해도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단들이 활개를 치며 온갖 헛된 종말론을 유포할 때, 바로 그런 일이야말로 당신의 재림 이전에 반드시 나타날 징조라고 예언하신 예수님의 경고를 상기하면서, 할 수만 있으면 택자까지도 넘어뜨리려고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는 사탄의 속임수에 결코 미혹당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참된 신자에 대한 박해’도 세상 끝이 오기 전에 반드시 벌어질 징조입니다.

  9절부터 14절에 기록하기를 “9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말세에 대한 또 하나의 징조는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참된 신자들에 대한 박해를 가리킵니다.
  사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이것이 이단의 미혹보다 먼저 찾아왔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부터 그들은 ‘회당’ 앞에서 재판을 받기도 했고 ‘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채찍’을 맞기도 했고, 심지어 ‘돌에 맞아 죽는 사형’을 당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 박해는 그처럼 육체적 고통의 극한인 ‘죽음’에까지 이르는 것인 동시에 또한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는” 정신적 고통의 극한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박해를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로마의 관원 등 세속권력으로부터 받기도 했지만, 최악의 경우는 같은 기독교인으로부터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된 결과 기독신자들 중에도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는” ‘배교자’가 되어 박해자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배신자들의 “불법이 성하게” 되면서 자연히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는” 즉 기독신자들 내부에서 큰 갈등과 시험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세의 징조가 나타날 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박해는 ‘배교자’들이 드러나는 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참된 신앙인’이 누구인지 분명해지는 기회도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신실하고 충성된 신자는 스데반 집사가 그랬던 것처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만 마지막 순간까지 붙들고 삽니다.
  그런 ‘환난 시대의 순교자’들과 ‘평화 시대의 순교자’들에 의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는” 순간 ‘땅 끝까지 이르는 전도’가 완성되면서 “그제야 끝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얼마나 뜨거운 격려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까?
  사탄은 세상 끝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자기의 날이 다 되어 가는 줄 잘 아는 까닭에 더욱 발악을 하면서 참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해 올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이 참된 개혁주의 기독신앙은 천주교로부터는 계속 이단으로 정죄당하고 자유주의자들로부터는 무식하다는 비판을 더욱 맹렬히 당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신자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혈육들로부터 온갖 욕을 다 들을 것이고, 회사의 술자리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왕따를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현실은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신자들이 불신가족과 사회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교회가 과학자들로부터 조소를 당하고, 기독교가 국교가 되는 대신에 세속 권력자들로부터 탄압을 받는 일만 늘어가게 될 때에 결코 실망하거나 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이 전 세계적인 지지를 받는 일은 예수님 재림 이전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로 ‘거짓 선지자’들이 강력한 혼합종교 세력을 형성하면서 참된 신앙을 사수하고자 하는 소수의 교회를 사방팔방으로 에워싸고 핍박해 올 것이며, 그 와중에 ‘많은 사람이 일어나 서로 잡아 주는’ 배교가 오히려 판을 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참된 신자에게는 반드시 ‘한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신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참된 신자와 교회가 안팎으로 박해를 당하고 불신사회의 절대다수로부터 미움을 받는 일이 당신의 재림 이전에 반드시 벌어질 징조라고 미리 일러주시면서, 그런 와중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자가 당하는 박해를 오히려 참된 신앙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순교적인 신앙자세를 지키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천국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증언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그처럼 자신의 믿음을 인내로 지키는 성도에게 약속된 구원의 완성을 반드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세어질 사탄의 박해는 참된 복음을 지키는 교회와 성도라면 필연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서, ‘땅에서 올라온 짐승’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연합공세 앞에도 결코 굴하거나 변심하지 말고 ‘끝까지 견디면서 자신의 신앙을 온 세상 앞에서 증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각 시대에 일어나는 재앙’도 세상 끝날을 예비하라고 경고해 주는 징조입니다.

  15절 이하 22절에 “15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9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주후 70년경에 “거룩한 곳” 즉 예루살렘이 “멸망의 가증한 것” 즉 로마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하게 될 날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주후 66년에 유대인들 중 일부가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일으켰는데, 처절한 항쟁을 벌였지만 결국 로마 군대의 강력한 진압에 의하여 전멸하게 됩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사망자가 백십만 명, 포로로 잡혀 간 자가 구만칠천 명이었다고 합니다.
  요세푸스가 남긴 숫자는 좀 과장되었을 가망성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실로 비극적인 종말이었음은 틀림없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라고 하셨습니다(눅 21:22). 즉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날이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멸망 때에 일부 유대인들은 그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적군이 닥칠 때 본능적인 반응은 보다 안전해 보이는 예루살렘성 안으로 도망치는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성 안에 있다가는 다 멸망당할 것이니 성 밖으로 피신하라고 일러 주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시작했을 때, 예루살렘에 있던 대부분의 신자들은 성을 탈출하여 요단강 건너편에 있던 ‘펠라’라는 곳으로 피신하여 화를 면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 그런 예루살렘의 멸망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일, 마치 세상 종말과 직결되는 “(대)환난” 정도로 보일만 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성전이 파괴당하고 선민이라 자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으니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종말이 닥친 것처럼 여겨질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시안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부분적인 심판의 날이었지 결코 온 세상 전체의 끝날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대재앙의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최후의 대심판이 오기도 전에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하고” 끝나 버리겠지만,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즉 ‘택자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인류역사를 통해 그런 날의 숫자를 조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도 사람들은 바로 자기 시대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세상 종말과 직결시키려는 시도를 아주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그야말로 세상 종말이 임박한 명백한 증거라고 믿었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처럼 착각했던 로마제국이 야만스러운 이민족의 침략에 어이없이 무너졌을 때, 서기 1000년이 다가오고 있었을 때,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며 인구 삼분의 일이나 되는 생명을 빼앗아 갔을 때, 제1차 및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인류가 온 세상을 스스로 한꺼번에 자멸시킬 수도 있는 위기로 몰아갔을 때,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 세기 말에 지나갔던 ‘1999년 7월’ 중에 태양계 행성들의 특이한 직렬현상으로 인하여 세계 종말이 올 것이라고 했던 소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지난 수백 년에 걸쳐 그 달이 오기 직전까지 숱한 신봉자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도 예수님 재림이 가까워졌음을 일깨워 주는 ‘징조’이지, 결코 예수님께서 재림하셨다는 ‘현상’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독신자는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부분적인 심판으로 온갖 재앙이나 천재지변이 생기게 하시는 것을 두고서 자기 시대에 반드시 종말이 온다는 증거라고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지금 당장 종말이 닥쳐 온 것처럼 보이는 일들은 각 시대마다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오직 ‘최후 심판의 날’을 예비하며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런 부분적인 심판과 재앙 중에도 ‘피할 길’을 반드시 열어 주실 것입니다.
  당장 그 어떤 환난이나 재앙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더라도 결코 속단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되는 그 진짜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영원한 구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만 굳게 붙잡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 23절부터 31절까지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진짜 재림 때에 벌어질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재림이 가까워진 징조’가 아니라 실제로 ‘재림이 시작되는 장면’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온갖 소문들을 퍼뜨림으로써 차츰차츰 널리 알려질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나타나게 될 일입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는 말씀은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인데, 본문의 문맥에서는 죄악 세상을 심판하기 위한 천사들이 동원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그와 함께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등 창조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진짜 천재지변이 일어나면서 ‘옛 하늘과 옛 땅’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재림을 알리는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면서” 예수님께서는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을 대동하시고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시면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런 후에 그 재림주의 위엄 앞에 “통곡”할 수밖에 없는 불신자들을 심판하시면서 동시에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는”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우리 눈으로 직접 목도하게 될 때까지 ‘세상 끝’은 여전히 ‘가까울’ 뿐이지 아직 ‘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 그 말세지말의 진짜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저와 여러분은 절대로 ‘이단에게 미혹을 당하지 말고’ ‘박해 중에도 믿음을 지키며’ ‘온갖 재앙 중에도 그 날들을 감하면서 택자를 보전해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이처럼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신 종말의 징조들은 ‘재림 직전’에만 일어날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보다도 바로 이 예언을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들었던 제자들과 초대 교회 성도들부터가 이런 징조들을 그들 생전에 하나도 빠짐없이 직접 겪었기 때문입니다.
  미혹하는 이단, 신자를 박해하는 대적, 그리고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당하는 재난들 - 이 모든 것들은 어느 시대, 어느 신자나 다 똑같이 당하고 있는 일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진짜 중요한 점은 세상 끝날 이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문제보다도, 그 어떤 일이 벌어지든지 간에 신자가 자기 믿음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꼭 지켜야 한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일 년 전, 혹은 한 달 전에 반드시 일어나게 될 한 가지 특별한 징조를 말씀해 주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그 징조 한 가지만 예의주시하면서 그 징조가 보이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해이해지고 방심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신자라면 모두가 겪게 될 일반적인 징조들을 특별히 더 강조해서 예언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시기가 어느 때가 된다 하더라도 사람이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단 한 번, 오직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 뿐입니다.
  설사 예수님 재림이 앞으로 천 년 후로 확정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하는 데에는 그 천 년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생전에 재림주를 맞이할 준비를 확실히 못 해 놓으면 죽고 나서 무덤에 묻힌 상태에서는 그 날이 천 년 아니라 만 년이 남아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 재림이 서기 몇 천 년에 되든지 그것과는 조금도 상관없이, 각 시대의 모든 성도들은 다 ‘내일 내가 죽게 될지도 모르니’ 오늘 재림하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하고, ‘오늘 예수님 재림할지도 모르니’ 지금 이 순간에도 깨어서 예비하고 있어야 할 뿐인 것입니다.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할 수많은 천재지변의 종말 징조들 앞에서도 ‘두려워 말라’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신자와 교회가 미움과 박해를 당하는 종말 징조들을 당하게 될 때에도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또 주님께서는 우리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종말을 정말 제대로 준비하는 성도는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항상 변함없는 신앙으로 그 재림주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만 더욱 철저히 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믿는 것을 오도하고 미혹하는 이단들, 우리의 지키고 있는 것을 욕하고 미워하는 박해자들, 우리의 잡은 것을 흔드는 온갖 환난과 재난 중에서도 ‘세상 끝’이 오기 이전에 꼭 ‘이런 일들이 먼저 있어야 할 줄’로 알고, 오직 자신의 믿음만 끝까지 굳게 지킴으로써 그 ‘주의 임하심’을 기쁨으로 함께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