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8-06-10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 7장 1-28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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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18-06-10
2018′경향의 강단(25) (2018년 6월 10일 / 주일 대예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 7장 1-28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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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 7장 1-28절 / 석기현 담임목사
우리는 북한에서 걸핏하면 ‘대숙청’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경제파탄이나 천재지변 등으로 인해 인민들 사이에 불만의 기운이 퍼져나간다든지 혹은 자신의 절대적 권력에 대해 불손한 기미가 조금만 눈에 띄어도 3대 째 세습으로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독재자들은 여지없이 숙청으로써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 대숙청 가운데 언젠가는 ‘외국 물을 한 번이라도 먹은 자’들이 그 대상에 오른 적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쉬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북한처럼 닫힌 사회에서 평생토록 국내에서만 살고 있는 인민들은 독재자 우상화 선전으로 쉽게 세뇌시킬 수 있지만, 국외로 나가서 자기 눈으로 직접 바깥세상 구경을 하면서 북한 사회와 비교해 볼 기회를 가진 사람들은 북한의 체제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구소련이나 유럽 지역에 공부하러 와 있던 북한 유학생들이 마침 서울에서 열린 ‘88 올림픽’의 장면을 텔레비전 중계로 보면서 대한민국이 이렇게 잘 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일화를 어느 귀순자가 증언해 주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 때에는 그 안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못하겠지만, 발전된 문명사회나 부유한 국가를 알게 되면, 그 누구라도 지금까지 살던 그 가난하고 억눌린 나라에서 벗어나 그처럼 자유롭고 행복한 나라에서 살고 싶은 생각만 간절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바로 그처럼 두 개의 나라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7장부터 시작되는 다니엘서의 후반부는 전반부와는 달리 대부분이 다 다니엘이 개인적으로 받았던 특별계시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받은 계시들 중에 제일 처음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본문에 기록된 ‘큰 짐승 넷에 대한 환상’입니다.
  성령께서는 다니엘에게 계시되었던 이 환상을 오늘날의 성도에게도 보여 주시면서, 여기에 나타나는 두 나라를 비교해 보고 어느 쪽을 선택할지를 결정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주어진 본문을 통해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어떻게 다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세상 나라’들은 말세에 적그리스도의 앞잡이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게 됩니다.

  1절부터 6절에 기록하기를 “1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2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4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5또 보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 6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고 했습니다.

  “벨사살 왕 원년”이란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지 오십년이 되던 해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환상”의 계시를 “꿈”을 통해 “머리 속”으로 받을 때 쯤 다니엘은 이미 칠십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의 네 바람”이란 말에서 ‘넷’이란 ‘완전함’ 혹은 ‘전체’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런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었다”고 했는데, 성경에서 ‘바다’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가리킬 때 자주 쓰이는 비유입니다.
  그런 바다가 ‘사방에서 몰려 부는 바람’에 흔들린다는 표현은 곧 이 세상의 흥망성쇠를 뜻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바다에서 “그 모양이 각각 다른” “큰 짐승 넷”이 나왔다고 했는데, 나중에 17절에 이하에 기록된 해석을 보면 이것들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 혹은 그 왕들이 다스리게 될 “나라”들이라고 했습니다.
  즉 세상의 역사에 등장하는 나라들, 특히 대국이나 제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 주석가들이 이 네 나라를 역사상의 어느 특정 국가나 특정 제국을 가리키는 의미로 해석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세계사가 진행되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의미’를 중심으로 이 짐승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현실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세상 왕들이 다스리는 세상 나라들’이 근본적으로 어떤 본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 이어지는 구절에 나오는 ‘짐승’들의 환상이 실로 일목요연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4절에 나오는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이 생겼지만 “독수리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사자는 ‘힘’을, 독수리의 날개는 그 ‘영역’을 상징하는데, “그 날개가 뽑혔다”는 것은 세상의 강대국들이 그 전성기가 사라지고 몰락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짐승이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다”고 한 것은, 앞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보여 주었듯이, 비록 본질적으로는 짐승 같은 세상 군왕과 나라들이지만 때로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법적으로 통치되는 경우도 있음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세상 나라들은 ‘권력’을 가지고 그 통치 영역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본성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5절에 등장하는 ‘둘째 짐승’은 “곰”과 같다고 했는데, 곰은 물론 힘도 세지만 여기서는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탐욕성’을 상징합니다.
  “그것이 몸 한 쪽을 들었다”는 것은 곰이 먹이를 덮치려 할 때에 뒷발로 일어서는 자세를 가리키며,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다”고 한 것은 이미 입 속에 먹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먹으려 하는 욕심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다가 “그것(곰)에게 말하는 자들”“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고 부추기고 있으니, 실로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만족할 줄 모르는 짐승입니다.
  즉 세상 나라들은 이처럼 부를 쌓고 쌓아도 또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탐욕’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6절에는 “표범”과 같은 ‘셋째 짐승’이 나오는데, 이것은 은밀하고도 재빠르게 먹잇감을 공격하는 짐승입니다.
  더구나 그런 표범의 “등”“새의 날개 넷”까지 달려 있었으니 그 민첩성과 기동력은 더욱 뛰어나게 향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다 “머리 넷”까지 달려 있었으니, 사방팔방을 동시에 정찰하면서 어떤 먹잇감이든지 놓치지 않고 포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나라들의 ‘정복욕’을 가리키는 비유인데, “권세를 받았더라”는 말도 바로 그런 정복의 결과 그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뜻합니다.
  교묘한 외교술이나 압도적인 무력을 사용하여 주변의 약소국가들을 하나 하나 자기네의 식민지로 삼으면서 제국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세계 역사상 강대국들이 나타낸 공통적인 성격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러한 세 짐승과 전혀 다른, 아주 괴상한 ‘넷째 짐승’의 환상을 이어서 보게 됩니다.
  그것을 7절과 8절에 기록하기를 “7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8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앞의 짐승들은 그래도 다니엘이 평소에 알고 있던 짐승들과 유사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는데, 이 “넷째 짐승”“전의 모든 짐승과 다른” 즉 세상의 일반적인 짐승과 전혀 비슷하지도 않는, 실로 기괴한 짐승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것이 어떻게 생겼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무섭고 놀라우며”라고만 묘사하고 있으며, 나중에 19절과 20절에서도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더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짐승은 “쇠로 된 큰 이”가 있어 닥치는 대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는” 등 그야말로 난폭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특히 그 짐승에는 “열 뿔”이 있다고 했는데, 24절의 해석을 보면 바로 “그 나라(네번째 짐승)에서 일어날 열 왕”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일어나서 그 “첫 번째 뿔” 즉 ‘열 뿔’들 가운데 “셋”“뿌리까지 뽑아버린” “다른 작은 뿔”은 나중에 왕이 되어서 먼저 있었던 세 왕을 복종시켜 버릴 새로운 통치자라고 역시 24절에서 밝혔습니다.
  이 마지막으로 나타난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 통치자가 나름대로 정치적 식견과 판단의 능력을 소유했다는 뜻이며,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는 것은 자기의 통치 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 한마디로 마음대로 조종하는 독재적 통치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이 ‘넷째 짐승’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본문 21절에 보면 그 넷째 짐승의 마지막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넷째 짐승’은 곧 교회와 성도를 박해하면서 일시적으로는 이기는 듯이 보이는 ‘적기독적인 국가’를 가리킵니다.
  25절은 이 사실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를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고 했습니다.
  즉 그런 적기독 국가의 특성은 ‘신성모독’과 ‘성도 박해’로부터 시작하여, “때” 즉 교회가 지키는 예배 시간과 절기를 멋대로 바꾸려 하고, “법” 즉 신앙과 도덕의 율례를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적기독적인 국가와 그 통치자가 나타나게 되면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일시적이나마 환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나라’의 모습입니다.
  땅에 자기 영역의 경계를 긋고 그 힘을 자랑하며, 부를 축적해 가면서 더 많이 얻으려고 끝없는 탐욕을 부리고, 거기서도 더 나아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여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 곧 역사상 등장하는 강대국들이 예외 없이 보여 주는 ‘짐승의 본성’입니다.
  성도들 역시 현실적으로는 이런 세상 나라에 속해 있는 까닭에 그 ‘짐승’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사이에서 ‘새우등이 터지기도’ 하며, 그 뺏고 빼앗기는 통에 손해를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도에게 가장 위협적인 ‘세상 나라’는 바로 적기독 국가입니다.
  초대교회 시절의 로마 제국, 히틀러의 나치 제국, 구소련을 위시한 공산국가들, 오늘날 최악의 독재국가인 북한 - 바로 이런 나라들이 그야말로 성도들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주무르는 ‘넷째 짐승’들입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기독신자들을 박해하고 주일성수를 방해하고 신앙의 진리는 물론 윤리도덕까지 뒤집어 놓는 이 극악무도한 만행들을 ‘작은 뿔의 입에서 나오는 큰 말’ 즉 단 한 사람의 독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로 제멋대로 저지르고 있는, 실로 ‘무섭고 놀랍고 강한’ 짐승인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세상 나라’를 결코 이런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통해 ‘권력’을 추구하고 ‘재화’를 벌면서 자신의 행복한 삶의 영역을 확장시키려고만 합니다.
  즉 이 세상이 곧 ‘유토피아’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떠받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세상 나라’를 가리켜 본질적으로 ‘짐승’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니 참된 성도라면 결코 이 세상을 사랑하거나 섬길 수가 없습니다.
  ‘짐승’ 같은 나라들을 자신의 진짜 모국이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더욱이 신앙생활을 이런 ‘짐승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일 뿐인 것입니다.
  ‘사자’와 ‘곰’과 ‘표범’처럼 힘을 자랑하고 탐욕을 부리며 정복욕을 과시하는 가운데 끝내 ‘무섭고 놀라운 넷째 짐승’의 얼굴을 드러내면서 교회와 성도를 박해하는 적그리스도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 곧 ‘세상 나라’들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꼭 명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나라’는 끝내 모든 적그리스도 세력을 이기고 영원히 서게 됩니다.

  9절 이하 12절에 기록하기를 “9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11그 때에 내가 작은 뿔이 말하는 큰 목소리로 말미암아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체가 상한 바 되어 타오르는 불에 던져졌으며 12그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다니엘이 보고 있던 그 무섭고 두려운 환상이 갑자기 사라지고 이제는 완전히 대조적인, 아니 전혀 딴판의 세계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단 하나의 “왕좌”“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고” 계시는 나라였습니다.
  즉 그것은 세상의 ‘짐승 나라’에서 보았던 것처럼 왕좌를 뺏고 빼앗기는 무질서나 싸움이란 있을 수 없는, 실로 안정된 통치가 영원히 진행되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 왕좌에 좌정하고 계신 자의 모습은 ‘깨끗한 흰색’과 ‘붉은 불꽃’으로만 묘사되었습니다.
  흰색이 하나님의 순결과 거룩하심을 상징하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고, 또한 하나님의 보좌나 임재하심이 불로 묘사되는 것도 구약 곳곳에서 나타나는 비유입니다.
  그러니 그처럼 거룩하고도 엄위로운 왕좌를 빼앗으려는 시도란 있을 수 없으며, 오직 “그를 섬기며”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들만 “천천”이요 “만만”을 이루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앞에서 ‘뿔이 다른 뿔을 뽑아내던’ 짐승의 나라와는 너무나도 달리 질서정연하고 굳건하기 짝이 없는 왕국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나라는 완전하고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는 권위를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 ‘보좌에 앉으신 이’께서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고 했습니다.
  재판장이 좌정하고 계시고 그 앞에는 증거 서류들이 펼쳐져 있으니, 당연히 이제는 선고받는 대상이 나올 차례입니다.

  그런데 그 피고가 곧 “큰 목소리”로 말하던 “작은 뿔”이 달린 “짐승”이었습니다.
  바로 조금 전에 그처럼 두렵고 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넷째 짐승’,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이기고 자기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던 그 짐승이 이 심판의 보좌 앞에서는 다니엘이 잠시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당장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체가 상한 바 되어 타오르는 불에 던져졌던” 것입니다.
  반면에 “그 남은 짐승”들 즉 그 앞에 등장했던 ‘세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세상 강대국들이 그 힘을 잃고 약소국가로 전락되기도 하지만 마지막 심판 때까지 명맥은 유지되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넷째 짐승’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처럼 성도를 압도적으로 박해하던 적기독 국가는 일단 하나님의 작정하신 심판이 임하자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장이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25절 하반절에서도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표현이 바로 그 ‘넷째 짐승’에 대한 심판이 순식간에 임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 때, 두 때’ 이렇게 세어 나가면 원래 그 다음에 예상되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세 때’입니다.
  하지만 그 ‘세 때’가 당연히 올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그 시간의 흐름이 갑작스럽게 ‘반 때’로 뚝 떨어져 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적기독 세력이 성도와 교회를 박해할 때는 마치 ‘한 때, 두 때, 세 때’ 하면서 끝없이 나갈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하나님의 정하신 심판의 때가 이르면 더 이상 셀 것도 없이 순식간에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짐승의 나라’들이 심판을 받는 가운데 새로운 나라가 등장합니다.
  이어지는 13절과 14절에 기록하기를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자 같은 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서 ‘사람처럼 되신’ 즉 ‘화육하신 인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 곧 성부 하나님께서 그 예수님께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었다”는 것은 곧 예수님께서 이 왕국을 다스리실 왕권을 부여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된다고, 즉 민족과 국가와 언어를 초월하는 백성들이 그 나라의 신민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나라’는 두말할 것 없이 곧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고 다스리는 “권세”“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 주님께서 왕이 되신 “그의 나라” 즉 교회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는 ‘천년왕국’이 도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의 끝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태양이 다 타버리는 것, 원폭으로 자멸하는 것, 환경 파괴로 인하여 모든 자원이 고갈되는 것이 결코 인류 역사의 종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보좌 앞에서 기록된 책에 따른 심판’이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에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자’입네, ‘독수리’입네, ‘곰’입네, ‘표범’입네 하면서 힘자랑 하던 강대국과 제국들, 아니 ‘쇠 이빨’을 가지고 설쳐대던 ‘무섭고 놀랍고 강한 짐승 나라’라 할지라도, 이 ‘하나님의 나라’의 보좌에 앉으신 이의 절대주권 앞에서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런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세워 놓으신 이 교회를 정말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 교회를 통해 이런 멋진 ‘왕 중의 왕’을 모시고 섬기는 ‘선민’이 된 것을 진정 감사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은 ‘짐승 나라’의 왕들과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해 백성을 희생시키는 세상의 군왕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면서도 당신을 스스로 비하시키셔서 ‘인자’가 되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죄인들을 위해 대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신, 정말 신기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런 왕을 모시고 살게 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그 왕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충성하는 마음과 자세가 ‘세상 나라’의 국민들과 어디 비교나 될 수 있겠습니까?

  실로 교회는 ‘세상 나라’처럼 통치자가 조석으로 바뀌는 나라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그리스도 한 분께서 왕으로 좌정하고 계시는 영원불변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그 백성을 박해하던 ‘짐승 나라’들과 그 ‘뿔’들을 철저하게 심판해 주는, 실로 공의로운 권위가 충만한 초강대국입니다.
  이 ‘천년왕국’은 그 나라의 왕을 경외하고 그 왕께 충성을 다하는 백성에게 금세뿐 아니라 내세에까지 완벽한 행복을 확실히 보장해 주는 진짜 ‘유토피아’인 것입니다.
  비록 아직까지는 이 땅의 ‘세상 나라’와 그 ‘왕’들로 인하여 핍박을 당할지라도 그럴수록 ‘하나님의 나라’야말로 그 모든 대적들을 끝내 물리치고 승승장구할 왕국임을 확신하면서 이 교회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 ‘권세’와 ‘영광’을 영원히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다니엘 2장에서 세상의 강대국들은 ‘큰 신상’에 비유되었습니다.
  ‘세상 나라’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숭배하고 흠모하는 우상이 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그것이 ‘짐승’에 비유되었습니다.
  ‘세상 나라’란 화려하고 강력한 겉모습과는 달리 본질적으로는 지극히 악하고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임을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바벨론 제국과 메대와 바사 같은 신흥강국들이 맹위를 떨치던 가운데 다니엘은 이런 환상을 통해 그 ‘짐승 나라’들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처럼 그가 현실로 느끼고 있던 ‘세상 나라’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나라가 다니엘의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를 통하여 요지부동의 주권이 영원히 이어지며 ‘그 분께서 세우신 왕’을 통하여 완벽한 공의가 그 백성에게 시행되는 너무나 멋진 새 왕국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된 다니엘이 더 이상 세상의 ‘짐승 제국’들을 두려워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현실적으로는 다니엘처럼 ‘짐승 나라’들에 둘러싸여서 살고 있습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판을 치는 ‘세 짐승들의 나라’와 절대다수의 불신세력이 교회와 성도를 간섭하고 핍박하는 ‘넷째 짐승의 나라’가 이미 전성기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런 ‘세상 나라’들만 보고 살아야 한다면 그 얼마나 암담하기 짝이 없는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까닭에 저와 여러분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교회’가 곧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신 천년왕국’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이 공의롭고도 은혜로운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굳게 확신하고 있으면, 혹 때로는 이 세상 나라들로 인하여 다치기도 하고 마음 상하기도 하고 핍박까지 당한다 해도 결코 겁내거나 떨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일단 이 완벽하고도 믿음직한 나라에 속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 나라’를 나의 영원한 거주지로 여기면서 거기에 절하며 타협하거나 꿇어 엎드려서 굴복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더 이상 우리는 정부의 정책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헛된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고, 강대국의 대통령이 우리 민족의 앞날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더 좋은 나라를 이미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하나님의 나라’에 이미 살고 있는 ‘천국시민권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를 실망시키고 핍박까지 해 올 때일수록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상)고 선언하셨던 이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교회를 중심으로 영원히 함께 ‘왕노릇’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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