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8-05-27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 21장 1-8절/ 석기현 담임목사

More videos
186
Views
   

WMA음성받기MP3음성받기동영상다운받기동영상다운방법
주일낮예배 2018-05-27 경향의 강단(23)
2018′경향의 강단(23) (2018년 5월 27일 / 주일 대예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 21장 1-8절/ 석기현 담임목사
5월 20일(주) 1부 오전 7:00 / 2부 오전 9:00 / 3부 오전 11:00

(186)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 21장 1-8절/ 석기현 담임목사
두어 달 전 주일밤예배 중에 최창식 장로님의 은퇴식을 하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최 장로님께서 답사를 하시면서 ‘나는 반드시 천당에 간다.’는 믿음을 굳게 붙잡고 지금까지 살아오셨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바로 그 확신이 최 장로님으로 하여금 이 경향교회의 초대장로로서 문자 그대로 ‘생애 최고’를 바쳐서 충성하게 만든 영적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최 장로님께서 그처럼 ‘천당에 간다.’라는 표현을 쓰신 이유는 그 천당이 ‘갈 수 있고 살 수 있는 장소’임을 믿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천당이라는 단어는 물론 불신자들이나 우상종교인들도 사용하고 있지만, 그네들은 천당을 무슨 ‘착하게 살다가 죽은 사람의 혼만 모여 있는 내세’라는 막연한 의미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최 장로님을 비롯한 참된 기독신자에게 있어서 천당은 결코 어떤 ‘상상의 산물’이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존하고 있으며 사람이 실제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인 것입니다.

  우리가 천당을 이렇게 믿는 이유는 곧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시던 다락방에서 그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시던 중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절과 3절에 기록된 대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천당을 두고 ‘내 아버지 집’이라고, ‘거할 곳’이라고, ‘거처’라고, ‘나 있는 곳’이라고 몇 차례나 반복해서 ‘천당은 구체적인 장소’인 것을 명백히 알려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철석같은 약속까지 해 주셨으니 ‘천당의 장소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을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당은 과연 어떤 장소입니까?
  사실 천당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만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가정의 달’ 오월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게 된 오늘 저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든 기독신자가 영원한 ‘천국가족’으로 살게 될 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구체적으로 어떤 처소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천당은 현세의 시공계를 완전히 초월하는 곳입니다.

  1절과 2절에 기록하기를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의 눈에 제일 처음으로 보였던 ‘새 하늘과 새 땅’은 일반적으로 천당과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 자체가 천당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최후심판 후에 존재할 세계에는 천당뿐 아니라 지옥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 현재 우리가 지각할 수 있고 또한 모든 피조물을 수용하고 있는 시공간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계’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천당과 지옥, 이 두 가지 공간만으로 나누어져 있는 ‘내세의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1절 하반절의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라는 말씀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천지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없어졌다’고 했으니, ‘새 하늘과 새 땅’은 결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개량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한 대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대치된 것과는 달리 ‘바다’는 아예 ‘새 바다’가 없다고 했으니, 이 ‘신천지’는 결코 ‘에덴동산’을 다시 회복한 것도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완전히 새롭게 된 세계를 배경으로 하여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천당을 ‘거룩한 성’이라고 한 이유는 그곳이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로써 모든 죄를 씻음 받고 완전히 성화된 신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이라고 불린 것은 땅의 예루살렘성이 ‘이스라엘 선민 공동체’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천당은 ‘구원 받은 택자들의 공동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천당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 것은 현세의 3차원적인 의미를 따라 ‘하늘에서 만들어져서 땅에 내려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여기에서의 ‘하늘’은 이미 ‘처음 하늘’이 아니라 ‘새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표현은 천당이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주시는 장소’임을 가리킵니다.

  이 사실은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는 말씀에서도 다시 한 번 강조됩니다.
  이것은 천당을 준비한 예수님 쪽이 ‘신부’이고 성도나 교회가 ‘남편’이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절의 ‘천국 혼인잔치’에서도 명백히 나타나 있듯이 어디까지나 성도와 교회가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이 비유의 초점은 어느 쪽이 신랑이고 신부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부가 남편을 맞이하기 위해 단장하는 것’처럼 천당이 성도들을 위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당은 우리가 현존하는 우주의 시공간을 통해 보고 느낄 수 있는 것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완전히 새로운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천당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창조하셨던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특별히 새로 예비하신 곳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천당은 지금 현세에 존재하고 있는 물질 중에 가장 좋은 재료들만 모아서 만들어 놓은 장소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후에 우리를 ‘영접해서’ 데려가 주실 천당을 가리켜 ‘아버지 집’이요 ‘나 있는 곳’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런 천당이 세상에도 존재하는 무슨 고급 대저택 정도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천당은 사람들이 그저 ‘유토피아’라고 상상하는 것조차 훨씬 초월하는, 아직 가보지 못한 지금으로서는 그저 ‘최고의 완벽한 낙원’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장소입니다.

  저 역시 살아보지도 못했고 한 번 들어가 본 적도 없지만, 고급 고층아파트에서도 제일 꼭대기 층에 있는 아파트를 ‘펜트하우스’라고 부릅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은 우선 거실과 침실과 주방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서재나 피트니스룸 같은 특별 공간도 여유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일출과 일몰의 장관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도시의 야경도 매일 내려다 볼 수 있을 것이며, 개인 엘리베이터까지 있다고 들었으니 초고층에 살면서도 출입의 프라이버시도 완벽하게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좁아터진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그런 펜트하우스로 이사해 들어가는 일이 만약에라도 생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하늘에 둥둥 떠서 사는’ 느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행복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일은 ‘만에 하나라도’ 일어날 확률조차 거의 희박하지만, 우리 기독신자는 그런 펜트하우스에 살게 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기막힌 거주이전을 반드시 하게 됩니다.
  바로 천당, 문자 그대로 ‘하늘에 있는 펜트하우스’에 입주하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저 좋은 낙원 이르니 내 기쁨 한이 없도다... 주 예비하신 곳일세 그 화려하게 지은 것 영원한 내 집이로다”(찬 245장) - 바로 우리의 이 찬송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날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의 거주지는 불만족스러운 것이 많고 귀찮은 이사까지 자주 해야 하지만,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 저와 여러분은 바로 이 ‘새 예루살렘’,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고 계시는 ‘하늘나라의 새 집’에 꼭 들어가게 될 것을 확실히 믿고 끝까지 소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천당은 인생의 고통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곳입니다.

  3절과 4절에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라는 말씀은 그 ‘새 예루살렘의 집주인’이 곧 하나님이심을 가리킵니다.
  신자가 세상에서 살 때는 어쩔 수 없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 수밖에 없지만, 부활한 이후에는 ‘하나님의 장막’ 즉 하나님의 거처인 천당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이사 중에서 최고의 이사가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잘 지었다 해도 결국 무너지고 말 이 ‘땅의 장막’에 거주하다가, 세상에, ‘하나님께서 사시는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니 이사도 이런 이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신자가 그런 이사를 하게 되면 또 한 가지 엄청나게 좋은 일이 따라옵니다.
  사람이 주거가 바뀌면 그 사는 방식도 바뀌게 되는데, 천당에서도 그런 일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당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는” 곳,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는” 곳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천당은 그 주거생활에 대한 모든 관리를 집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완전히 도맡아 해 주시는 곳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좋은 아파트에 살아도 항상 관리를 해야 하고 때때로 수리까지 해야 하지만, 우리가 천당에 가게 되면 그런 식으로 신경을 쓸 일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천당을 완전무결하게 예비해 놓으시고 완벽하게 관리하시는 원칙 중에 하나가 이어지는 4절 말씀에 있습니다.
  바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는, 실로 기가 막히도록 놀라운 운영 원칙입니다.
  여기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는 말은 ‘만사에 있어서 옛날 법칙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장막’에서 적용되던 삶의 방식들이 이 새 거주지, 이 ‘하나님의 집’에서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곧 ‘눈물이나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아니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슬픔, 병, 죽음 따위는 바로 저주 받은 옛 주거지, 이 금세에서나 적용되는 법칙이지, 그 ‘하나님의 장막’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 동안에는 그런 애통, 아픔, 사망 따위를 당할 때 그것을 스스로 직접 해결해야 하니까 참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면 그 집주인께서 그런 따위의 고장이나 사고는 아예 절대로 생기지 않도록 완벽하게 관리하고 계시는 까닭에, 그런 천당의 입주민들은 그야말로 완벽한 평안과 행복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좋은 집에 산다 하더라도 온갖 인생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로 인하여 저주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초고층의 펜트하우스나 수백 평의 대저택에 사는 재벌이라 할지라도 온갖 걱정, 스트레스 등의 정신적 고통과 피곤, 지병 등의 육체적 연약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은 실상 서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참으로 ‘이 땅의 장막’이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세의 거주지’란 이런 슬픔과 아픔이, 결코 바라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할 길 없이 따라붙는 ‘기본사양 인테리어’처럼 항상 벌어지는 장소인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장막’에 입주하게 되면 이런 온갖 ‘인생의 고장과 사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그 집 안에서는 돈 걱정 때문에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이 절로 나올 일이 절대로 없습니다.
  거기에 살게 되면 가족 중에 한 명이 불치병에 걸려 가슴 아파할 일은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가 ‘하늘의 장막’에 거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환경공해나 핵공포 따위로 두려워할 필요도 전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천당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집은 그 어떤 좋은 부모보다, 그 어떤 효자효녀보다 우리를 훨씬 더 잘 보살펴 주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상주해 주시는 곳입니다.
  그 결과 그 집에서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즉 이 세상에서 적용되던 인생의 철칙들이 더 이상 따라올 수 없고 그 대신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이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애통하는 일’은 두말할 것도 없고 ‘사망’조차 ‘다시는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100퍼센트 스트레스 프리’의 나날이 영원히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가 ‘땅의 장막’에 거할 동안에는 여전히 온갖 인생의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수는 없지만, 그럴 때일수록 찬송가 235장의 고백대로 그런 “우리의 일생이 끝나면” 이제 “영원히 즐거운 곳에서 거룩한 아버지 모시고 기쁘고 즐겁게 살” 날을 반드시 맞이하게 될 것을 더욱 간절히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천당은 악한 자들로부터 영원히 성별되는 곳입니다.

  5절 이하 8절에 “5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께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선포하시면서 또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라고 확언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신 새로운 세계를 반드시 도래하게 해 주시겠다는 보증입니다.
  그래서 그 ‘천당에 대한 약속’을 “기록하라”고 명하셨고, 그래서 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오늘날의 저와 여러분에게도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말씀도 바로 그런 맥락으로서,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던 것과 똑같이 천당도 지금 약속해 주시는 말씀 그대로 실현되고야 말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천당이 도래하는 날은 하나님께서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는” 날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완성’이 드디어 성취될 것을 가리킵니다.
  ‘생명수 샘물’은 곧 구원의 내용인 ‘영생’을, ‘목마른 자’는 곧 구원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신자’를, 그리고 ‘값없이 주어짐’은 곧 그 구원이 주어지는 근거인 ‘무조건적 은혜’를 일목요연하게 비유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처럼 천당은 구원 받은 신자들이 영생을 누리는 장소인데, 오직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천당은 말세가 될수록 더욱 거세어질 온갖 마귀의 시험과 박해 중에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킨 성도만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는 말씀은 그 천당이 그저 ‘하나님과 같이 사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부자(父子)처럼 가장 친밀한 관계를 나누면서 사는’ 집이 될 것을 가리킵니다.
  원래 사람은 창조 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가 타락으로 인해 그 관계가 단절되었는데, 천당은 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뿐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지극히 행복한 집, 그야말로 ‘스위트 홈’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천당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두려워하는 자”들이란 앞서 “이기는 자”와 대조되는 자들로서 일단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가 도중에 돌아서 버린 배교자들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 ‘일시적인 신앙생활’은 최후의 심판대에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오직 “믿지 아니하는 자”들 즉 불신자들과 똑같이 취급될 뿐입니다.
  그 외의 “흉악한 자”, “살인자”, “음행하는 자”, “점술가”, “우상 숭배자”,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이란 곧 ‘믿지 아니하는 자’와 동격으로서 불신자들의 삶에 절로 따라오게 되는 온갖 악행들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신앙의 악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천당과 극적으로 대조되는 지옥을 가리킵니다.
  세상에서 육신이 죽는 것이 ‘첫째 사망’이며 이처럼 지옥에서 영벌을 받게 되는 것이 곧 “둘째 사망”인 것입니다.

  천당은 이처럼 지옥에 떨어질 악한 자들과 완전히 분리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 16:26)고 명백히 선언하셨듯이 천당과 지옥 사이에서는 그 어떤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나 교통도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과거 로마천주교에서 자식이 면죄부를 사면 죽은 부모가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따위로 주장한 것은 순전히 사기행각일 뿐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천당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만 모여 사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쁜 사람’, ‘악한 인간’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그 얼마나 환상적인, 완벽한 공동체이겠습니까?

  사람이 ‘작고 불편한 거주지’에 사는 것은 물론 고생스러운 일입니다.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이 가난이나 병 따위의 ‘인생의 고통’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에게 있어서 정말 가장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은 바로 ‘악인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거짓말하는 자’들에게 배신당하는 것, ‘음행하는 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것, ‘점술가’들에게 사기당하는 것, ‘우상숭배자’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것, ‘흉악한 자’들한테 폭행을 당하는 것, ‘살인자’들로 인하여 공포에 떠는 것 – 이런 것들이 때로는 우리 인생을 마치 ‘지옥’처럼 여겨지게 만들고 있는 최악의 원인입니다.
  그런 악인들로 인한 두려움과 괴로움은 판사가 나를 위협하는 사람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내려주어도, 경찰이 내 집 앞의 골목에 ‘수시 순찰’을 다녀도 결코 완전히 해결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악인이 단 한 명도 없는 정말 ‘좋은 동네’가 실제로 있습니다.
  바로 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곳은 그 어느 ‘보안이 잘 되어 있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안전한 공동체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는”(시 1:5), 철저하게 ‘거룩한 백성만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242장에서 “거기 죄인 전혀 없으니 거룩한 자뿐이라”고 노래하는 그대로 악한 자들의 위협으로 인한 “검은 구름”이라고는 한 점도 없이 항상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길을 오직 “평안함과 즐거움으로” 다닐 수 있는 곳이 바로 천당인 것입니다.
  이런 ‘꿈같은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런 ‘새로운 세상’에 꼭 살게 해 주시겠다고 ‘신실하고 참된 언약’으로 이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흉악한 자’들이 바로 이 나라 안에서 기세를 떨치고 ‘살인자’들이 바로 내 이웃 주변에서 버젓이 배회하고 있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피할 길 없는 현실이지만, 저와 여러분은 ‘끝까지 이기는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가운데 이런 악인들은 단 한 명도 보거나 만날 일이 전혀 없는 저 ‘완벽한 의인의 공동체’에서 영원히 함께 사는 천국권속들이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좋아하는 주일학교 찬송 중에 ‘즐거운 모임’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작은 광주리의 모세를 알죠 / 어둔 구덩이의 예레미야도 / 큰 물고기 속의 요나도 알죠 / 방주 속에 있던 노아 가족도 / 모두 만나 보겠네 천국에 가면 보겠네”라는 가사입니다.
  “크고 장사였던 삼손을 알죠 / 기도할 줄 알던 엘리야 선지 / 사자굴에 갇혀 있던 다니엘 / 물맷돌로 거인 죽였던 다윗”도 모두 “천국에 가면 보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나 다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직 “내 죄가 용서받아 자유케 된” 구원 받은 성도만 그 천국에서 “모두 만나 보게” 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고급맨션이나 펜트하우스는 비교도 안 될 ‘하늘나라의 새 집’, 인생의 온갖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 우리를 괴롭히던 모든 악인들과는 영원히 결별하게 되는 저 ‘천국의 거룩한 성’ - 정말이지 “이 얼마나 즐거운 모임”이 되겠습니까?

  모든 참된 신자들은 바로 그 ‘즐거운 모임’에서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됩니다.
  ‘나는 반드시 천당 간다.’는 믿음 가운데 평생을 충성해 오셨던 최창식 장로님도 틀림없이 거기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물론 최 장로님만 아니라 저와 경향교회 성도 여러분 모두도 그 멋있는 ‘homecoming day’에 그 천당에서 꼭 다시 만나게 됩니다.
  물론 우리뿐 아니라 먼저 세상을 떠나신 신앙의 선조들과 내 가족들, 아니 지금 오대양육대주에 흩어져 있지만 그 천당을 믿고 기다리고 있는 모든 ‘우주적 교회의 성도’ 전부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그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천당은 ‘영혼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우주의 한 구석’이 아니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깨끗이 사라지고 완전히 새롭게 준비된 ‘새 집’입니다.
  천당은 ‘아무리 좋은 집에 살아도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온갖 고통’이 다시는 없이 오직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만 매일의 일과로 이어지는 곳입니다.
  천당은 ‘신자를 괴롭히던 악한 불신자’들은 결코 들어올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이 영화된 성도’만 모여 사는 ‘지극히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약속해 주시고 성부 하나님께서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같이’ 준비해 주고 계시는 이 ‘하늘나라의 새 예루살렘’에서 꼭 함께 만나는 영원한 천국권속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