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장 특강] 불교란 무엇인가(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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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장 특강 | 강민수 목사

불교란 무엇인가(Ⅰ)

2015년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최대 종교는 전체 인구의 22%를 차지하고 있는 ‘불교’입니다(기독교는 21%로 2위). 기독교와 근소한 차이지만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를 ‘불교’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종교가 불교라고 대답은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불교의 교리를 이해하고, 그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저 석탄일에 절에 한번 다녀오거나, 자신의 가문 대대로 불교를 믿어왔으면 별 생각 없이 자신의 종교를 불교라 답하는 정도가 거의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불교는 우리가 지혜롭게 다가가면 얼마든지 개종시켜 낼 수 있는 허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왜 우리가 불교를 알아야 하는가?

1) 전도의 대상자들을 알아가기 위해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훨씬 더 지혜로운 방법을 가질 수 있습니다. 특히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라면, 전도의 대상자로서 우리는 그 종교의 내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2) 그들의 비(非)진리를 지적하기 위해

불교신자들이 갖고 있는 무지(無知)를 지적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모순과 비(非)진리를 우리가 지적할 수 있다면 그들이 갖고 있던 신앙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신학(神學) 과목 중에 ‘엘렝틱스’(Elenctics)라는 과목이 있는데, 이런 맥락입니다.

3) 우리의 신앙을 변증(defense)하기 위해

불교신자들 또한 기독교를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 기독교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교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면 이들의 공격 또한 지혜롭게 변증(defense)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해 필요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굳게 세울 뿐 아니라, 전도에 효과적입니다.

2. 불교의 역사

1) 석가모니 : 고타마 싯타르타 (약 B.C 563년경 ~B.C 483년경)

‘석가’는 샤키야(Sa-kya)라는 현재 네팔과 인도의 국경 사이에 있는 종족의 명칭을 한자로 발음한 것이고 ‘모니(muni)’는 산스크리트어로 ‘성인(聖人)’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석가모니’는 ‘샤키아족의 성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본명은 ‘고타마 싯타르타’(Gautama Siddha-rtha)로서 히말라야 산기슭의 카필라성에서 태어난 왕족입니다. 그가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은 세상을 떠나고 싯타르타는 유모에 손에서 키워졌습니다. 29세가 되던 때, 그는 깨달음을 얻고자 가족과 모든 것을 버리고 갠지스강을 건너 인도 남부로 내려가 수행을 하였습니다. 6년의 수행 끝에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설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많은 제자들이 생겼고 그의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곳곳에 전하면서 불교가 형성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45년 동안 자신의 깨달음을 가르치다 8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 불교의 발전

석가모니 생전에 불교 교단이 형성되고, 세상을 떠난 후에 인도와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번성하다 1세기 전후에 동아시아로 건너와 중국과 한국, 일본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불교가 발전하면서 유파(流派)가 크게 두 개로 나뉘는데 대승(大乘)불교와 소승(小乘)불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쉽게 말해 대승(큰 수레라는 뜻)은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교리를 쉽게 만들고, 지역마다 토착화시켜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도록 하는 유파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소승은 승려들을 중심으로 깨달음과 수행을 엄격하게 함으로 불교의 원칙과 교리를 지켜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소승은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번성하였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는 대승불교가 번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신라의 ‘원효’는 사람들에게 ‘나미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주문처럼 외우면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던 것입니다.

3. 불교의 주요 가르침

1)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반야경(般若經)에 나오는 이 유명한 글귀는 ‘색’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체가 있는 것을 뜻하고, ‘공’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실체가 없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눈으로 보여 실체가 있는 것은 사실 실체가 없는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 곧 실체가 있는 것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석가는 제자들에게 “제자들이여, 저 갠지스강의 물결을 보라. 저기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그러나 잘 보라. 소용돌이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강물의 순간적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불교의 대표적인 가르침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불교의 가르침이 기독교의 자기부인(自己否認)과 열 번째 계명인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소유욕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상급을 약속(마 16:27, 롬 2:6)하시며 우리의 소유욕을 선하게 사용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취하라’, ‘가지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십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물질을 사랑하거나, 필요이상의 소유에 대한 경계는 하고 있지만 소유욕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유명한 승려 ‘법정’은 『무소유』라는 책에서 모든 것을 버리는 시늉을 하지만 결국 그는 인기와 존경을 얻었습니다.

2) 사성제(四聖諦)

이 세상의 것들에 집착을 버리기 위해 석가는 ‘무아(無我)’ 즉, 자기 자신을 비우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그런 훈련을 압축하여 ‘사성제’라 합니다.

① 고제(苦諦):‘고제’는 이 세상이 불완전하며 그래서 문제와 고통뿐인 곳임을 직시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상의 것들에 집착을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도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 것(요일 2:15)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세상 자체를 부정하거나 죄악시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는 곳이요,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는 무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죄’를 미워할 뿐입니다.

② 집제(集諦):‘집제’는 이 세상의 고통의 원인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인생의 고통의 원인을 원인 모를 자신의 어떠함에 두지 않습니다. 고통의 원인은 ‘죄’ 때문이며, 그 죄는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주체가 되려 한 것입니다(창 3:5).

③ 멸제(滅諦):‘멸제’는 이 고통의 원인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열반(涅槃)’, 혹은 ‘해탈(解脫)’이라고 부릅니다.

④ 도제(道諦):‘도제’는 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바로 ‘도(道)’를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팔정도(八正道)’입니다. 수행을 통해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결국 열반과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불당에서 수백 번 혹은 수천 번의 절을 하고, 고기를 먹지 않으며, 새벽에 기도정진을 하며, 각종 수행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불교의 수행은 로마카톨릭의 수도생활과 거의 흡사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수행과 수도생활을 통해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성경은 로마서 3장20절에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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