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8-04-08 “십이조(十二租)와 심삼조(十三租)” 신명기 14장 22-29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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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18-04-08
2018′경향의 강단(16) (2018년 4월 8일 / 주일 대예배)
“십이조(十二租)와 심삼조(十三租)” 신명기 14장 22-29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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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조(十二租)와 심삼조(十三租)"

신명기 14장 22-29절 / 석기현 담임목사
사람이 신실한 신자로 성장해 가는 데에 있어서 여러 가지 걸림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시험이 곧 ‘십일조 생활’입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이 나쁠 것은 없고 예수님을 믿는 것까지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이 십일조 때문에 덜컥 걸려서 넘어지는 초신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생활을 평생토록 하면서도 끝내 이 십일조만은 시행하지 못하는 기성교인들도 적잖이 있는데, 그 수는 현대교회에서 오히려 점점 더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교인들에게 십일조란 마치 헌금생활에서 가장 고차원의 단계,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최고수준인 것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십일조 생활을 성실히 하고 있는 신자는 사실상 십일조뿐 아니라 그 외에도 각종 감사헌금, 주일헌금, 월정회비, 특별헌금 등을 바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모든 헌금 액수를 다 합친다면 사실상 ‘십이조’ 혹은 ‘십삼조’ 이상을 헌금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물론 아직 십일조 생활도 못하는 교인은 이런 ‘십이조’니 ‘십삼조’니 하는 말을 들으면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희한한 신조어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목사는 마치 돈만 아는 저질 목사 내지는 교인들에게서 헌금이나 쥐어짜내려 하는 ‘삯꾼’처럼 여겨지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 ‘십이조’나 ‘십삼조’는 결코 목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성경에 엄연히 기록되어 있는 ‘공식 헌금’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신실한 신자라면 ‘십일조’만 드린다고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그 이상의 헌금도 기꺼이 바쳐야 할 것을 명백히 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일부터 ‘교회소식’을 통해 알려 드리고 있는 대로 우리는 다음 주일에 ‘Y-5 희년’이 되는 교회설립 45주년 기념주일을 맞이하면서 ‘희년맞이 비전헌금’을 온 교우가 함께 작정하려고 합니다.
  이 시간 저는 우리 모든 경향의 성도들이 어떤 마음자세로 이 헌금에 동참해야 할지를 주신 말씀을 통해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신자는 ‘교회 공동체’를 위해 ‘십이조’까지 기쁨으로 바쳐야 합니다.

  22절과 23절에 “22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라고 한 것은 바로 가장 기본적인 ‘십일조’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토지소산’ 즉 자기 수입 중에서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레위기 27장 등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가나안 땅에서 아무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한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생활비로 사용하게 된 헌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23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즉 성소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분명히 바로 앞의 22절에서는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바치라고 했고 그것은 오직 제사장과 레위인들만 먹을 수 있는 것인데,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그 십일조를 바치러 성소에 간 사람이 그 가져간 것들을 그 자리에서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언뜻 듣기에는 앞뒤가 안 맞는 말 같지만, 사실은 22절에 나오는 십일조와 23절에 나오는 십일조는 각기 다른 것입니다.
  전자는 우리가 잘 아는 일반적인 십일조를 가리키는 것이고, 후자는 앞서 22절의 십일조를 드린 후에 다시 한 번 더 십일조를 구별하는 것인데, 이를 가리켜 ‘제2의 십일조’ 혹은 ‘축제의 십일조’라고 부릅니다.
  ‘제2의 십일조’라고 부르는 이유는 지금 설명한 대로 기본의 십일조에다 추가로 내는 십일조이기 때문이며, ‘축제의 십일조’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두 번째 십일조는 그 십일조를 가져온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시하여 자기 가족들과 함께 잔치를 하면서 절기를 축하하는 데에 사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조금 뒤에 나오는 26절 하반절의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라는 말씀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권속’은 자기 가족뿐 아니라 종들까지 다 포함된 것입니다.
  즉 자기가 온전한 십일조를 바칠 수 있도록 자신의 토지와 가축을 통하여 그런 풍성한 소산을 거두게 해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그 기쁨을 나누는 것이 이 두 번째 십일조의 용도였습니다.

  24절부터 27절의 말씀은 이런 십일조 헌금을 드리는 방법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으로 “24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원래 십일조는 ‘실로’에 세워진 ‘성소’에 나아와서 바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자신의 거주지가 실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처럼 성소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의 십일조를 “가지고 갈 수 없을” 때를 위해서 이 예외적 규례가 주어졌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성소로 가서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십일조’ 역시 똑같이 “그 돈으로”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해서” 온 가족과 권속이 레위인과 함께 성소에서 먹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 “독주”라고 번역된 말은 포도 이외의 곡식이나 과일 혹은 꿀 등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이 바로 이 규례를 악용하여 폭리를 취하던 상인들과 환전꾼들이었는데 여기에 제사장들까지 합세하여 그들과 내통함으로써 부패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이것은 십일조 이행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편리를 위해 주어진 규례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기본 십일조는 원래의 그 목적대로만 사용하게 하고, 그 외에도 이스라엘 공동체가 당신 앞에서 감사와 기쁨을 나누기 위하여 십일조 이상의 예물을 바치도록 아주 구체적으로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22절의 기본 십일조를 온전히 드린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이 23절의 ‘두 번째 십일조’ 역시 대부분 다 자동적으로 따라서 바쳤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음 주일에 우리가 작정하고자 하는 ‘희년맞이 비전헌금’ 중에 ‘열두바구니 십이조헌금’이 있습니다.
  ‘열두바구니 헌금’은 이미 경향의 모든 성도들이 헌관을 위한 ‘보리떡 헌금’을 정성껏 바쳤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 ‘남은 부스러기’까지 힘을 다해 모아서 바치자는 의미이며, ‘십이조헌금’은 이 ‘열두바구니 헌금’의 월정액수를 ‘두 번째 십일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몇 년 전 ‘비전기도회’를 시작할 즈음에 제가 기도회를 인도하시는 최창식 장로님께 “희년 때까지 ‘보리떡헌금’을 완결하고 ‘헌관’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최 장로님께서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그래도 언젠가는 ‘보리떡 추가헌금’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최 장로님께서 그 시기만 말씀해 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후 작년 언젠가 최 장로님께서 제게 ‘보리떡헌금’ 실행 상황에 대해 보고를 하시던 중에 “2019년 가을부터는 은행에 매월 원금상환이 시작되는데 현재로서는 그 액수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원로목사님에게서 배운 그대로 성도들 앞에서 ‘교회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지만, 최 장로님 역시 교회의 재정 문제를 두고 ‘어렵다’는 말씀을 지난 14년 동안 제게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담임목사로 하여금 오직 ‘말씀과 기도에만 전무’할 수 있도록 교회의 재정 문제는 장로들이 다 책임을 지고 떠맡아야 한다는 배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 장로님으로부터 ‘어렵습니다.’라는 말씀을 처음으로 듣는 순간 그것이 제가 그전에 ‘최 장로님께서 그 시기만 말씀해 주시면 보리떡 추가헌금을 추진하겠습니다.’라고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할 때인 줄로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생애 최고의 헌당헌금’을 비롯하여 ‘헌당추가헌금’에다가 ‘보리떡헌금’까지 바친 경향교회 성도들에게 또다시 헌금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저로서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이 문제를 두고 그저 하나님께 기도만 드릴 수밖에 없었는데, 작년 연말 즈음 어느 날 새벽기도 중에 문득 이 ‘십이조 헌금’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현재 십일조를 시행하고 있는 경향교회 교인들 중에 반 이상만 여기에 동참하면 희년 이전까지 원금상환을 다 마치고 ‘희년맞이 5대 목표’ 중에서 특히 ‘수도권 지교회 개척’과 ‘강서지역 복지사업’을 구체적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에 최 장로님과 만나게 된 자리에서 이 ‘열두바구니 십이조헌금’을 말씀드렸는데, 최 장로님께서는 역시 단 일초의 숙고조차 없이 “담임목사님께서 하시면 저는 하겠습니다.
 ”
라고 즉시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 장로님께서 이처럼 기꺼이 찬성하시면 다른 장로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재정부장 장로님을 비롯한 몇 선임장로님들의 협의를 통해 이 헌금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세우도록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말의 당회에서 이 ‘희년맞이 비전헌금’을 시행하기로 만장일치로써 통과하고 3월 말 당회에서는 저와 함께 장로님들께서 제일 먼저 이 헌금을 작정했습니다.
  경향교회의 장로님들께서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대로 이번에도 ‘오직 기쁨으로, 힘을 다해’ 작정한 것처럼, 모든 경향의 성도들 역시 이 ‘비전헌금’에 똑같은 자세로 동참해 주실 것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마땅히 바쳐야 할 ‘토지소산의 십일조’ 외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성소’에서 ‘레위인과 온 권속’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잔치를 위해 ‘두 번째 십일조’까지 드렸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 경향공동체가 함께 맞이하게 될 즐겁고도 영광스러운 희년을 위하여 이 ‘열두바구니 헌금’을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쁨으로 작정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신자는 ‘선한 봉사’를 위해 ‘십삼조’까지도 기꺼이 바쳐야 합니다.

  28절과 29절에 기록하기를 “28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번째 십일조’를 명령하신 것만 해도 의외의 사실인데, 정말 기상천외하게 ‘세 번째 십일조’까지 있었습니다.
  바로 본문에서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라고 명하신 십일조입니다.
  이것은 ‘매 삼 년’마다 한 번씩 추가로 드린 십일조였기 때문에 ‘3년 차 십일조’라고 불립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기본 십일조’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생활’을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 십일조’는 ‘공동체로서의 감사와 기쁨’을 위한 것이었던 것에 비해, 이 ‘세 번째 십일조’는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을 구제하기 위한 헌금이었습니다.

  성소의 직무를 전담하고 있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후원하는 것이나 공동체 안에서 감사와 기쁨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당연한 의무였던 것처럼, 자기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것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필수적 의무였습니다.
  왜냐하면 ‘객과 고아와 과부’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아예 생존 자체가 지극히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람, 꼭 도와주어야만 할 대상이었고, 그래서 이 ‘세 번째 십일조’ 역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헌금이었습니다.

  그런 사회적 약자들을 이 ‘세 번째 십일조’를 통해 “먹고 배부르게 하는” 잔치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도 함께 청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아까 ‘두 번째 십일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27절).
  물론 레위인들은 ‘첫 번째 십일조’를 통해 생활을 지원하게 되어 있었지만, ‘공동체 잔치’나 ‘이웃 구제’를 할 때에도 추가적으로 포함시키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교역자에게 일정한 생활비를 지급한 후에도 성도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역자도 함께 대접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번째 십일조’는 신명기 26장 12절 이하 15절에서 더 자세히 언급되는데, 거기에 기록하기를 “12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13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14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15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12절은 앞에서 보았던 14장 28절과 29절의 내용과 거의 동일합니다.
  반면에 13절 이하의 내용은 “그리 할 때에” 즉 그 “셋째 해” “십일조”를 바쳐서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한” 다음에 따라오게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세 번째 십일조’를 이행한 후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랑’을 해도 된다는 뜻은 물론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이 오직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그대로 순종했음을 하나님께 ‘보고’ 드리는 의미입니다.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는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세 번째 십일조’ 또한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본인의 선행’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준수한 ‘의무 이행’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하의 구절도 ‘십일조 이행’에 관한 하나님의 세부적 명령들까지 단 하나도 어김없이 지켜야 함을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상(喪) 중에 있을 때에는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성물을 먹지 못하게 되어 있는 규례를 가리킵니다(레 21:1-3).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라는 말 역시 그처럼 몸이 부정한 기간에는 성물을 따로 구별해 두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어 있던 규례를 따른 것입니다(레 22:3).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라는 것은 ‘세 번째 십일조’를 장례비용으로 쓰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사무엘하 3장 35절이나 예레미야 16장 7절에 나오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7일 동안 초상을 치르면서 조문객들을 대접해야 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발생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대접할 때 쓰라고 명하신 헌금을 거기에 오용해서는 결코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상의 모든 사실을 두고 이스라엘 백성은 오로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라고 하나님께 보고해야 할 뿐이었습니다.
  즉 ‘세 번째 십일조’ 역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한 것’ 즉 ‘필수적인 의무’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성도 역시 십일조는 당연하기 이를 데 없는 기본의무에 불과하며, 십이조와 심삼조까지 드리더라도 본인으로서는 조금도 생색을 내거나 자랑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일 뿐이며, ‘교회 공동체에 속한 성도’로서 꼭 완수해야 할 의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향의 성도들은 ‘열두바구니 십이조헌금’을 드리면서 바로 이런 자세로 ‘십삼조헌금’까지 기꺼이 바쳐야 합니다.
  그것은 곧 ‘선교회비’와 ‘제네바신대원 후원회비’와 ‘별들의 학교 후원회비’입니다.
  선교사님들과 신학생들과 개척교회 목사님들이야말로 우리 경향교회 성도들의 후원이 없으면 당장 ‘밥을 굶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즉 ‘경향교회 성도’라면 의무적으로 꼭 후원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5년 동안 ‘비전헌금’을 한다고 해서 ‘3대 후원회비’를 내지 않거나 줄여야겠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이조 헌금’은 ‘십이조 헌금’이고 ‘십삼조 헌금’은 ‘십삼조 헌금’이었듯이, ‘열두바구니 헌금’은 ‘열두바구니 헌금’이고 ‘3대 후원회비’는 ‘3대 후원회비’이기 때문입니다.
  둘 다 ‘주께서 내게 명령하시는 헌금’이므로 우리는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그 명령대로 다 행해야’ 할 뿐이며, 그 어느 것도 ‘다른 목적을 위해 우리 마음대로 오용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 ‘경향선교회’와 ‘제네바신대원 후원회’와 ‘별들의 학교 후원회’를 통해 지출되는 액수만 모아도 우리 교회의 남아 있는 빚은 다 갚고도 남습니다.
  아니 ‘경향선교회’의 예산만 가지고서도 거의 다 충당이 됩니다.
  혹시 이 말을 듣고 시험이 드는 교인은 없습니까?
  ‘우리 교회가 순전히 밖으로 나누어 주는 것만 잠시 중단하면 아주 간단하게 헌관을 완수할 수 있다는데, 왜 굳이 열두바구니 십이조헌금까지 또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 있습니까?

  아마 웬만한 다른 교회의 장로라면 그런 생각이 충분히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경향교회의 당회원들 중에는 그런 장로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니 사실 우리 장로님들은 그런 식의 계산법이 있다는 것을 아마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경향교회 성도들 역시 오늘 제가 이런 설교를 하기 전까지는 ‘3대 후원회비만 모아도 보리떡헌금을 완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제가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알려 주지 않아도 될 일을 괜히 알려 주어서 담임목사가 성도들에게 시험거리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입니다.
  하지만 물론 저는 그런 걱정이 어디까지나 쓸데없는 기우인 것을 잘 압니다.
  이미 원로목사님 때부터 ‘밖으로 퍼서 나누어 주는 선한 일’에 아예 숙달된 성도들이니 앞으로 5년 동안 ‘비전헌금’을 드리는 중에도 ‘3대 후원회’를 위한 특별헌금과 회비 또한 이전과 똑같이 기쁨으로 바칠 것을 저는 철석같이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십일조’에다 ‘십이조’까지 바친 후에도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또 한 번 바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구제사업을 기꺼이 준행했던 것처럼, 이번 ‘비전헌금’의 ‘열두바구니 헌금’을 기꺼이 작정하여 바치는 가운데서도 이 ‘세계를 받은 교회’의 자랑스러운 선한 사업인 ‘경향선교회’와 ‘제네바신대원’과 ‘별들의 학교’를 위해서도 계속하여 정성과 힘을 다해 후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런 세 가지 십일조를 명하시면서 23절 하반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십일조’는 적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신자’라면 당연히, 그리고 기꺼이 바쳐야 할 헌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또한 29절 하반절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는 약속 또한 덧붙여 주셨습니다.
  말라기 등에서도 재차 반복되고 있듯이 ‘십일조에 대한 명령’에는 ‘십일조를 이행하는 성도에 대한 축복’이 항상 동반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이조’나 ‘십삼조’까지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바치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복 역시 갑절로 증폭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번 ‘희년맞이 비전헌금’은 우리 경향교회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실로 중대한 사업입니다.
  만약에라도 이 마지막 고개를 넘지 못한다면 지난 45년 동안의 공력이 다 무너질 수도 있겠지만, 이것만 돌파하고 나면 그야말로 ‘기쁨과 희락이 넘치는 50주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예루살렘이 형통’해야 ‘그 성중에 있는 내 형제와 친구에게 평안’이 있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집을 사랑’해야 ‘그 교회를 통한 은혜와 복’이 따라오게 되는 것(시 122편)을 꼭 명심하면서 이 헌금에 우리 모두의 최우선과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미 ‘생애 최고의 헌금’과 ‘생애 전부의 헌금’까지 바쳤지만 이제 ‘생애 마지막 큰 헌금’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이 ‘비전헌금’을 위해 ‘열두바구니 십이조헌금’과 ‘열두바구니 월정헌금’ 그리고 ‘보리떡헌금잔액 월정헌금’에 각자 힘을 다해 참여함으로써 실로 더욱 큰 소망과 함께 영광스러운 ‘경향 희년’을 예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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