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찬양예배 2018-04-01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전도서 9장 4-6절]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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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찬양예배(주일밤 예배)
설교: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전도서 9장 4-6절] 석기현 담임목사
찬양:시온·호산나·할렐루야 연합찬양대 (지휘 : 이현종 집사)
2018′경향의 강단(15-1) (2018년 4월 1일 / 부활주일밤 찬양예배)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전도서 9장 4-6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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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전도서 9장 4-6절 / 석기현 담임목사
요즘 희한한 신조어들이 연이어 생기는데, 그 중에 하나가 ‘YOLO’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영어 문장의 머리글자들만 모아서 만든 단어입니다.
  그처럼 단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니 어찌하든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 ‘욜로’라는 말 속에 내포된 의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욜로’와 직결되는 것이 소위 ‘버킷 리스트’라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의 목록’인데, 이 말의 어원은 그 ‘버킷’(bucket), 옛날 일본식 엉터리 영어로 ‘바께스’라고 했던 ‘양동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서양에서 자살을 할 때에 양동이를 엎어 놓고 올라가서 자기 목을 천장 들보나 나무에 매어 놓은 후에 그 양동이를 발로 차서 죽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자살을 하더라도 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것은 하고 죽자.’라는 의미로 이 ‘버킷 리스트’라는 말이 유래된 것입니다.

  이것은 ‘The Bucket List’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나왔는데, 의사에게서 사망선고를 받은 두 명의 말기암 환자들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소원 목록을 작성해서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내용입니다.
  카터와 에드워드라는 그 두 사람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온갖 경험들을 다 해 본 후에 돌아왔는데, 카터가 암이 뇌로 전이되면서 먼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직은 비교적 건강했던 에드워드가 카터에게 병문안을 갔을 때, 카터는 에드워드가 즐겨 마시는 ‘코피루왁’이라는 커피가 실은 정글 고양이들이 배설한 대변에 포함된 특별한 위액 때문에 재배된다는 재미있는 사실을 밝혔고, 두 사람은 그야말로 배꼽이 빠지도록 함께 웃게 됩니다.
  그 덕분에 그들은 그때까지 버킷리스트에 남아 있던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라는 항목을 드디어 지우게 되었고, 그 후에 카터는 에드워드에게 남은 버킷리스트를 혼자서 마저 끝내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습니다.

  카터가 죽은 후에 에드워드는 그때까지 불화관계에 있던 딸과 화해를 시도하게 되고, 그 딸은 자기 딸 즉 에드워드의 손녀딸을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소개시켜 줍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손녀딸을 만나게 된 에드워드는 그 손녀딸의 이마에 키스를 한 후에 자기 버킷 리스트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에게 키스하기’라는 항목을 지우게 됩니다.
  결국 에드워드도 죽게 되는데, 그 후에 그의 비서가 에드워드와 카터의 유해가 담겨 있는 커피캔 두 개를 가지고 히말라야 산맥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버킷 리스트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항목 ‘정말 장엄한 것을 목격하기’라는 항목을 지운 후에 그 두 개의 커피캔을 높은 산꼭대기에 나란히 놓고 그 두 캔 사이에 그 버킷리스트를 끼워 넣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런 ‘버킷 리스트’라는 것을 만들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생전에 자신의 소원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경험해 봄으로써 죽음에 대한 아쉬움이나 두려움을 어찌하든지 극복해 보려는 발버둥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버킷 리스트를 만들고 거기 적힌 것들을 다 해 본다 하더라도, 결국 죽음 그 자체를 이겨낼 길은 없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버킷 리스트에 집착하게 만드는 ‘YOLO’라는 말 그대로 인생은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이 꼭 한 번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버킷 리스트’, 모든 사람이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만 할 진짜 중요한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
  이 전도서의 본문 말씀은 그런 ‘버킷 리스트’에는 딱 하나의 항목만 있으면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죽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죽을 준비’야말로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며, 또한 죽은 후에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서의 전체적 내용을 보면, 인생이란 따지고 보면 오직 허무할 뿐이라는 사실을 갖가지 경우들을 들어서 증거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전도서 전체의 톤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느낌이 들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인생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것이 이 전도서의 궁극적 주제는 결코 아니며, 결국에 가서는 그런 허무함을 극복해 낼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런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인생은 아무리 열심히 살고 행복해지려 해도 다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 9장에서도 처음에는 그런 부정적인 톤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인이나 불의한 자나,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그 인생이 다 비슷비슷하며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똑같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롭게 사나 불의하게 사나 어차피 마찬가지이니까, 차라리 자기 마음대로 편하게 사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의 말씀이 결코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일반은혜’를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골고루 베푸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의인에게도 인생의 슬픔과 어려움이 닥쳐올 수 있으며 악인의 인생이라고 해서 기쁨과 행복이라는 것이 전혀 없게 되지는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의인이든지 악인이든지 공통적인 것도 분명히 있지만, 아무 공통점이 없고 모든 것이 극과 극으로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곧 오늘 읽은 본문에서 말씀하는 ‘산 자’와 ‘죽은 자’입니다.
  그리고 이 두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를 생각해 본다면 죽은 사람보다는 살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단연 더 낫습니다.
  바로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는 4절 말씀 그대로입니다.
  비록 그 인생이 지금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지, 행복하든지 불행하든지 간에, 그래도 어쨌든 살아 있는 것이 이미 죽어버려서 그 어떤 행복도 누리지 못하게 된 사람보다야 백번 더 낫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5절 하반절과 6절은 사람이 일단 죽고 나면 정말 아무 소망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라는 말대로, 죽은 사람은 우선 자기라는 존재를 스스로 의식조차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고 했듯이, 일단 사람이 죽고 나면 그에게는 그 어떤 좋은 것이 주어진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죽은 후에 보상금이 지급되어도 본인은 쓸 길이 없고 훈장이 수여되어도 본인은 그 명예를 누릴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6절에서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라는 말은 다른 사람과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여러 가지 감정으로써 교제하는 것 역시 완전히 끊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고 좀 애매하게 번역된 말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에 대해서 직접 관여할 길이 없어졌다’ 즉 ‘이미 죽은 사람은 이 세상사에 아무 영향을 끼칠 수 없으며 그 결과를 누릴 수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죽은 자’에 비하여 ‘산 자’가 가지는 이점은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 중에서 딱 한 가지, 제일 중요한 것만을 말씀해 주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5절 상반절의 말씀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라는 사실입니다.
  참 신기한 말씀 아닙니까?
  산 자가 누리고 있는 온갖 유익한 것과 행복한 것들을 다 제쳐놓고 오직 이것 한 가지, 곧 ‘죽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죽어 있는 것도 모르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가 죽을 것을 안다.’는 이것이 산 자의 최고 어드밴티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이것이야말로 산 자에게만 있는 최고의, 그리고 가장 유익한 점입니다.
  그리고 산 자는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 어드밴티지를 잘 활용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곧 자기 죽을 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니까 죽음에 대하여 준비할 길도, 시간도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자는 자기가 언젠가는 분명히 죽을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 죽을 때 지옥 가지 않고 영생구원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이점이며, 바로 여기에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 즉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다’고 말씀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죽을 준비’는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예수님을 영생의 구세주로 믿는 것’ 이것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죽은 후에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고 천당에 들어가기 위해 살아 있을 동안에 꼭 예수님을 믿는 것’이야말로 단 한 번밖에 없는 ‘욜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버킷 리스트’에 꼭 올려야 할 유일한 항목이며 반드시 실행해야 할 절대적 항목인 것입니다.
  ‘산 자’의 유익한 것은 오직 자기가 죽을 줄을 안다는 데에 있음을 깨닫고, 그런 까닭에 아직까지는 그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이 ‘살아 있는 동안’에 원래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을 위해 친히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죽은 후에도 반드시 다시 부활하여 천국의 영생복락에 꼭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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