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장 특강] 기독교와 이슬람(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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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슬람(Ⅲ)

1. 이슬람교의 주요 용어
2. 이슬람이 믿는 ‘6信’ – 알라, 천사, 경전,선지, 마지막 날, 운명
3. 이슬람이 행하는 ‘5行’(다섯 기둥)

4. 기독교와 이슬람에서의 예수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도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슬람에서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 유사점

(1) 동정녀 탄생 : 이슬람도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합니다. 무함마드도 사람의 몸에서 태어났음을 인정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허나 안타깝게도 성경에서와 같이 동정녀 탄생에 대한 언약의 의미를 설명하지는 못하고 단지 알라의 기적을 나타내는 용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2) 메시아 :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말이 11번 등장합니다. 즉 예수가 기름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임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왜 예수가 메시아로 세상에 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는 그들이 메시아라는 호칭을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으로만 여기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3) 무죄하심 : 저들이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 또한 신기한 일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고 심지어 무함마드도 자기 죄를 회개하기 위해 50번씩 기도했다고 하는데, 예수님만이 죄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기적 : 또한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을 인정합니다. 꾸란에는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의 양이 신약성경의 기적의 양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선지자 중에서 무함마드도 일으키지 못한 기적을 예수님만이 일으켰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 재림 :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재림까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재림 후 예수님이 세상의 모든 십자가를 부수고 무슬림 여자와 결혼해서 40년 동안 자녀를 낳고 살다가 40년 후에 죽어서 메디나의 무함마드 묘지 옆에 묻힌다고 말합니다. 즉 구원의 완성, 세속 역사의 끝으로서의 재림이 아니라 이슬람을 강하게 만들고 모든 사람을 무슬림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2) 차이점

그렇지만 이슬람은 당연히 구원주 예수님을 부정합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님 : 저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부정합니다. 그렇게 믿고 죽는 자들에게 저주가 있다고 말합니다.
(2) 예수님이 삼위일체이심을 부정 : 그들은 오직 알라 하나만이 신이며 대등한 자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저들은 어느 누구도 구원을 두고 중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 이스라엘만을 위한 신 : 저들은 선지자 예수님은 제한된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 근거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않았다’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제대로 성경을 들여다보면 그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신 대상은 이방인인 수리아 여인이었으며, 장소는 이스라엘의 땅이 아닌 두로와 시돈의 땅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시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5. 이슬람은 이단인가?

역사 속에서도 이슬람 교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견해 등 많은 요소들에 대해 연구해보고 이슬람이 기독교적 이단이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1) 다메섹의 요한

다메섹의 요한은 꾸란을 연구했던 자로서 이슬람을 이단이라고 말했던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당시 무함마드가 태어난 때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는 비잔틴제국 그러니까 중세시대 로마제국이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이후 이단 판정을 받았던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주장을 하며 천국에 갈 것이니 세상을 함부로 살아도 된다는 영지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고, 무함마드 부인 중 한 명이 섬겼던 콥틱교 그리고 무함마드의 첫째 부인이 신봉하고 있던 에비온파 등이 판은 치던 그야말로 종교의 시장이었다고 합니다. 자연히 무함마드는 그런 이단종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또한 당시 비잔틴제국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쪽으로 참된 복음을 전파했던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은 등의 일들로 인해 무함마드가 자신의 판단과 생각으로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만들게 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 종교개혁 시대의 존 칼빈

이슬람에 대한 연구는 종교개혁의 시대에도 이루어졌는데 이는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슐레이만 대제가 유럽을 점령하러 올라오려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존 칼빈 역시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을 주해하면서 이슬람이 유럽을 정복했을 때, 어떻게 기독교의 신앙을 파수할까 연구한 결과 무함마드는 배교자, 이슬람은 기독교의 이단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6. 이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대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서양이나 한국 기독교인들이 무슬림과 이슬람교에 끌리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는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으로 인한 호기심과 즐거움, 무슬림 특유의 여성을 향한 좋은 대우와 관대함, 기독교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에 대한실망, 이중적인 태도에 대한 반감, 외로움과 결혼에 대한 압박, 불안과 부정적 자아, 복음을 전파하려는 목적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슬람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 대답은 물론 “절대로,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볼 때, 우리는 결코 이슬람과 무슬림을 쉽게 생각하고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무슬림으로 인해 이미 전 유럽은 이슬람 테러리즘으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 두려움과 공포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슬람으로 인한 문제가 곧 터지게 된다고 생각하고 바로 지금부터 대비하여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테러의 위협은 물론이고, 무슬림으로 인한 폭력적인 범죄와 성폭력에도 대비하고 저들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는 기존 문화와의 이질감, 그리고 이슬람의 교리들로 인해 불거지는 문제입니다.
꾸란 4장 34절을 보면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때리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여성이 매를 맞을 수 있는 누수주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는 남편 허락없이 외출을 하거나 남편이 입으라는 옷을 입지 않았을 때, 기도하기 전에 씻으라는 것을 거절할 때, 남자가 침대에서 초청했는데 거절했을 때 등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이슬람교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기독교인들의 대처는 어떠해야 할까요?

1)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인 간에 사랑이 넘치고 목회자를 존경하는 교회, 살아 있는 하나님이 증언되는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현재 한국은 자살률, 이혼율, 살인율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절망과 불안, 방황으로 가득한 상황입니다.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복음을 들고 나가 도움이 필요한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저들을 옳은 길, 진리의 길로 인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2)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믿음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가정에서 부모의 신앙을 이어가는 자녀들은 전체의 약 6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다른 종교들에 비하면 적은 수치라고 합니다. 특히 무슬림들은 자녀들에게 꾸란을 과외시켜 타락한 유럽문화에 물들지 말라고 돈을 주면서 까지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꾸란을 암기하지 않는다고 자녀를 때려죽이는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무슬림들과 같이 이렇게 도가 지나치게 극성일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녀의 신앙을 위해 늘 기도하며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출석하여 놀게 하고 자신이 신앙고백을 하기까지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의 신앙이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전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3) 선교에 더욱 매진해야 합니다.

다메섹의 요한이 언급했듯이 비잔틴제국 시절에 기독교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선교사를 단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날 이슬람권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증언하는 기독교인들을 만나지 못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초기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었던 시기를 되돌아보면 우리야말로 문자 그대로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선교사님들의 수많은 헌신과 희생을 통해 이 땅이 복음화 되고 이토록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안에도 역시 복음을 통해 변화될 하나님의 백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이 선한 일에 우리는 기꺼이 동참해야 합니다.

결론

아직도 우리 주변에 ‘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둔 라술룰라’라고 하며 알라를 신앙하는 자들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무슬림과 이슬람교는 우리들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참된 신앙고백을 하는, 창조주시요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심판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주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이슬람에 대항하여 전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싸울 것은 무슬림들이 하는 것과 같은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닙니다. 전투하는 지상교회가 싸워야 할 것은 영의 전쟁입니다. 주님께서도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이 선한 싸움의 뿌리가 되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싸움이 계속하여 이어질 수 있도록 영적 동역자들을 찾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참된 목적을 두고 나 자신을 새하얗게 불태우고자 하는 각오를 다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귀한 전리품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허락하신 2018년 한 해도 각자 처한 삶의 처소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당당히 전하시길 기도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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