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8-02-25 “선지자의 제자들” 열왕기하 2장 1-14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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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18-02-25
2018′경향의 강단(9) (2018년 2월 25일 / 제네바신대원 주일예배)
“선지자의 제자들” 열왕기하 2장 1-14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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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제자들"

열왕기하 2장 1-14절 / 석기현 담임목사
지난해 연말에 새해 즉 2018년의 예산을 짜면서 우리 교회는 얼핏 보기에는 별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아주 의미심장한 일을 하나 했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 교단 산하의 교회들이 매년 신학교를 위해 후원하는 ‘경상비 예산의 3퍼센트’를 올해에는 ‘4퍼센트’로 올린 것인데, 형편이 허락하면 앞으로 ‘5퍼센트’까지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사실 ‘보리떡 헌금의 완결’을 위해 다른 모든 지출항목들은 최대한 절약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제네바신학대학원대학교를 위한 후원금만 오히려 더 인상시킨다는 것은, 만약 다른 교회에서라면 조용히 넘어가기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재정부와 당회에 이 안을 제의했을 때 모든 장로님들은 단 한마디의 이의나 질문조차 없이 전적으로 찬성해 주셨고, 예결산 공동의회에서 일반 성도님들 역시 만장일치로 간단히 통과시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신학교를 위해 교단 산하의 모든 지교회들이 의무적으로 후원헌금을 납부하는 일은 제네바신대원의 전신인 고려신학교를 졸업하고 현장 목회를 시작하신 선배 목사님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된 운동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 의무적인 ‘경상비 3퍼센트 후원헌금’뿐 아니라, 따로 ‘제네바신대원 후원회’까지 조직해서 후원회비 납부를 비롯한 여러 가지 후원활동을 지속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자랑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 교단의 교회들이 신학교 후원을 위하여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은 다른 교단에서 보기 힘든, 정말 멋진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처럼 제네바신학대학원대학교를 후원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일입니까?
  사실 이것은 여러분이 언뜻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뜻깊고 또한 실로 중차대한 사역입니다.
  오늘 이 ‘제네바신대원 주일’을 지키면서, 저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 선지학교를 이처럼 마음과 힘을 다해 후원하는 일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제네바신학대학원 후원은 ‘복음 진리’로써 조국의 기독교계를 종교혼합주의로부터 지켜내는 사역입니다.

  1절부터 6절에 기록하기를 “1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엘리야 선지자가 이제 곧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아 하늘로 올리움을 받으려 할 때의 일입니다.
  그때 엘리야 선지자가 자기 후계자가 될 엘리사와 함께 “길갈”에서 출발하여 “벧엘”을 거쳐 “여리고”로 가는 장면이 여기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거기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문자적으로 번역한다면 ‘선지자의 아들들’이라는 말입니다.

  이 ‘선지자의 제자들’은 나중에 7절에 보면 여리고의 경우 “오십 명”이나 모여 있었고, 더 나중에 4장 이하에 보면 공동체생활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때부터 ‘선지학교’, 오늘날로 치자면 ‘신학교’를 이미 형성하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것도 한 군데도 아니고 세 곳에나 세워져 있었으니 일종의 ‘신학교 분교’들까지 있는 상당한 규모의 선지학교였습니다.
  이 선지학교들은 엘리야 선지자가 세운 것이었고, 이제 곧 엘리사 선지자가 이어받아 운영하게 될 신학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 선지자는 어떤 동기로 이 선지학교를 세우게 된 것이었습니까?
  그것도 한 군데도 아니고, 그 별로 크지도 않은 땅에 세 군데에서나 말입니다.
  오늘 같으면 그야말로 ‘신학교 난립’이란 비난을 듣기 딱 좋을만한 일인데, 왜 엘리야는 그렇게 좁은 지역에 여러 개의 선지학교들을 세웠던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절의 상황을 비추어 볼 때 그 대답을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북조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최악의 길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아합 왕은 우상 숭배자인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하나님과 금송아지 우상을 함께 섬기는 혼합종교로 이미 타락해 있던 북조 이스라엘은, 그 이세벨이 들여온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설상가상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런 와중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저 유명한 ‘갈멜산의 제단’을 통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살아 계신 참 신이시라는 증거를 나타내 보이면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 선지자들을 진멸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모든 것이 순탄치는 못했습니다.
  이세벨은 더욱 악독하게 나왔고 엘리야는 목숨의 위협을 느껴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그런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에서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셔서 그를 격려하시고 끝까지 진리와 사명을 위해 싸울 것을 명하셨습니다.
  엘리야는 바로 그 직후에 엘리사를 만나 그를 제자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 등장하는 선지학교들은 바로 이때를 즈음해서 설립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갈멜산 사건이 있었던 당시 오바댜란 숨은 성도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나타나서 자기가 하나님의 선지자 ‘일백 인’을 몰래 숨겨 먹여 살려 왔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쩌면 그들이 이 선지학교의 제1기 생도들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엘리야 선지자는 이전에 갈멜산에서 했던 것처럼 자기 혼자의 힘만 가지고서 그 이방 우상종교 및 금송아지 숭배의 혼합종교를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 진리 사수를 위한 투쟁에 뜻과 힘을 같이 할 참된 선지자들을 많이 키워내기 위해서는 선지학교가 꼭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리고서, 과거에 사무엘 선지자가 자주 사역했던 ‘길갈’, 당시 금송아지 숭배의 중심지인 ‘벧엘’, 그리고 예루살렘에 가까운 요지인 ‘여리고’ 등을 골라서 선지학교들을 세웠던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 선지학교들에 있던 ‘선지자의 제자’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이제 곧 엘리야 선지자가 승천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영적 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오직 엘리야의 선지학교들을 통하여 당신의 참된 진리를 선포하고 계셨으며, 그것이 북조 이스라엘에 만연되어 있던 혼합종교와 맞서 싸우는 유일한 ‘진리운동’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제네바신학대학원 역시 그와 똑같은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선지학교입니다.
  조국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시작될 때부터 여러 가지 형태의 ‘금송아지’와 ‘바알’의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소위 토속신앙이라는 것들과 결탁된 기독교는 일찍부터 기복주의적 사이비 이단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일제 때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면서 시작된 자유주의 신학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 나라의 기독교계를 영적으로 더더욱 혼탁하게 만들면서 지금은 종북좌파의 어용종교인 노릇까지 발벗고 나서서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늘날에 와서는 소위 보수적이라고 하는 교단의 목사들까지도 자유주의적 교회들과 소위 ‘장로교 대통합운동’을 함께 전개하는가 하면, 천주교의 이단성에 대해서 교인들에게 경고해 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강단에서 ‘테레사 수녀’를 칭찬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꼴들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조국의 기독교계에 이처럼 날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는 우상숭배와 혼합종교를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바른 진리를 목숨처럼 지키는 신학교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물론 그처럼 성경 중심의 참된 신앙, 깨끗한 개혁주의 신학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신학교가 제네바신대원 하나뿐이라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참된 신학교들을 당신의 필요에 따라서 이 땅의 여러 곳에 세워 놓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제네바신대원은 그 중에서도 휴전선을 바로 지척에 둔 가장 북쪽에 세워짐으로써 조국 통일의 미래를 밝히는 ‘등대’가 되는 동시에, 또한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과 가까워 교통적으로 편리한 요지에 위치함으로써 세계 선교의 사령부가 되려고 하는 신학교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 조국의 기독교계 안에 섞여 있는 금송아지 추종자들과 이단들과 혼합종교 운동에 대하여 항상 그 입장이 분명하고 그 소리가 가장 뚜렷한 신학교가 바로 이 제네바신학대학원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수많은 신학교들이 있지만, ‘사이비 교단’이나 ‘자유주의 신학’이나 ‘천주교의 이단성’에 대하여 문제가 발생하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즉시 개혁주의 신앙의 성명서를 내면서 진리 투쟁의 선두에 섰던 것이 바로 이 제네바신대원의 전신인 고려신학교가 아니었습니까?
  실로 이 제네바신학대학원은 이 나라에 난립된 많은 신학교들 중에 하나가 결코 아니라 조국의 영계를 종교혼합주의로부터 지켜내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될 것을 굳게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제네바신학대학원 후원은 ‘순교자 선배’들의 대를 잇는 신실한 복음 전도자들을 파송하는 사역입니다.

  7절 이하 14절에 “7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대로 엘리사는 자기를 그만 따라오라고 뿌리치는 엘리야 선지자를 끝까지 붙들고 따라갔습니다.
  왜 엘리사가 그처럼 고집을 부렸습니까?
  그의 심정에는 정말 간절한, 정말 절실한 한 가지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엘리야 선지자의 사역에서 나타났던 ‘성령의 역사’보다 ‘두 배 더 많은’ 성령의 역사를 엘리사가 구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 말하는 “갑절”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장자에게 주어지는 유산의 몫’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의 이 말은 바로 자기가 곧 엘리야 선지자의 영적 장자가 되어서 그 엘리야와 똑같은 성령의 능력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런 엘리사의 실제 심정을 감정이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승 엘리야 선지자는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엘리사의 곁을 곧 떠날 형편에 있었습니다.
  엘리사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기도 하고 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 또한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엘리야 선지자는 그야말로 “내 아버지” 즉 자기의 영적 스승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 즉 이스라엘의 존망을 좌우할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위대한 선배 선지자가 이제 세상을 떠나려는 때에, 엘리사는 바로 그 엘리야의 영력을 이어받을 후배 선지자가 꼭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즉 엘리사의 그와 같은 요청은 결코 개인적인 욕심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조국의 장래를 생각할 때 그런 위대한 선배 선지자의 영력이 여기서 끊기어서는 결코 안 되겠다는 실로 간절한 영적 자각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엘리사의 소원을 두고 엘리야 선지자가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라고 한 것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니고 그것은 엘리야가 스스로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만약 하나님께서 자기를 하늘로 취하여 가시는 것을 엘리사가 볼 수 있게 되면,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실 징표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실제로 엘리야의 승천 장면을 목도하게 됨으로써 그 소원은 성취되었으며, 그것은 그가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을 쳐서 건너가게 되는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입증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주셨던 신앙과 사명감과 함께 ‘성령이 하시는 역사’까지도 빠짐없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던 것입니다.

  제네바신대원 역시 바로 우리의 위대한 선배들의 신앙과 생활, 그 정신과 사역이 당대로 끝나버리지 않고 이 조국에 오고 올 후배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속 이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세워진 선지학교입니다.
  우리는 정말 훌륭한 선배들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까?
  100년밖에 안 되는 이 짧은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서도 이처럼 조국 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은, 초기의 신앙 선배들이 정말이지 너무나도 훌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파송된 초대 선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들의 순교의 피와 함께 이 땅에 뿌렸습니다.
  조국에 기독교가 조금 자리를 잡게 되자마자 일제의 탄압과 함께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와 한바탕 큰 전투를 치렀고, 해방의 기쁨도 잠깐 곧 공산주의라는 이 엄청난 무신론 세력을 대항하여 연이어서 피투성이의 영전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배 목사님들은 그런 힘든 전쟁들을 둘 다 완벽하게 이겨내었습니다.
  온갖 환난과 박해와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저 엘리야의 ‘갈멜산의 승전’에 조금도 못지않은, 너무나도 멋있는 승리를 거두셨던 것입니다.

  그런 순교자의 정신이 이 조국 교회의 미래에 끊기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충성스러운 신행일치가 ‘출옥성도라는 영광을 등에 없고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이라는 냉소 한마디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당해도 좋다는 말입니까?
  그런 신실한 신앙이 ‘분리주의자’라는 어처구니없는 판결, 일제의 우상숭배에 가담했던 진짜 배교자들의 주객전도격의 비난에 의해 교회사의 뒤안길로 파묻혀버려도 괜찮은 것이겠습니까?
  정말 우리의 ‘영적 아버지’로 모시기에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만큼 훌륭하신 선배 목사님들, 문자 그대로 자신의 피로써 이 민족을 우상숭배와 무신론으로부터 지켜낸 이 ‘조국의 병거와 마병’ 되었던 순교자들을 두고서, 그 자손들이 그분들이 보여 주셨던 ‘성령의 역사’를 이어 받기는커녕 이렇게 함부로 매도해도 정말 되는 것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말 몰상식한, 실로 염치없는 짓일 뿐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약하고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가 짧아서 그렇지,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그야말로 전 세계 교회사에 길이 남기에도 조금도 부족할 것이 없는 위대한 ‘신앙의 아버지’들이요 ‘대선지자’들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런 순교자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실로 특권적인 ‘갑절의 유업’인 것입니다.

  제네바신대원의 전신인 고려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이 바로 그런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조국의 방방곡곡부터 ‘땅끝까지 이르도록’ 전도자의 길을 힘차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용하신 선배 목사님들의 가슴에 타오르고 있던 구령과 구국의 열정은 바로 이 제네바신대원을 통하여 다음 세대의 ‘엘리사’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귀한 ‘순교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제네바신학대학원을 더욱 힘써 후원함으로써, ‘엘리야’의 영감과 능력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차세대의 복음 사역에 ‘병거와 마병’으로 쓰일 큰 일꾼들을 조국전도와 세계선교의 현장에 계속 파송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제네바신학대학원 주일’이라는 이름으로 이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다른 교단 교회에서 웬만큼 신앙생활을 오래 해 보신 교인이라 해도, 무슨 신학교를 위해서 특별주일까지 지킨다는 것은 아마 상당히 생소하게 보일 것입니다.
  교단 산하의 모든 교회들이 의무적인 후원금을 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특별 후원회도 조직해 놓고, 게다가 주일까지 하나 따로 구별해서 지키고 있으니, 어쩌면 ‘참 별난 교단도 다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선교 사업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는 많지만, 신학교 후원 역시 선교 후원 못지않게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처럼 강조하고 실천하는 것은 사실 좀 ‘별나게’ 보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것은 참된 신자라면 반드시 참여해야 할 중차대한 의무, 아니 교회의 존망이 걸려 있는 핵심적 사역이라 해도 조금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각 지교회의 강단을 통해 바른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일단 성경의 참 진리를 수호하고 가르치는 신학교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제네바신대원을 후원하는 것은 이처럼 이단과 자유주의를 대항해서 싸우는 ‘진리의 사령부’를 사수하는 과업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지상(至上)명령인 선교 사업을 제대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 전도의 최전선으로 나아갈 복음전파의 장교들을 계속 배출해 내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네바신대원을 후원하는 것은 곧 앞서 가신 순교자들, 이미 빛나는 승리의 전적을 남기신 신앙의 선배들의 뒤를 이어갈 미래의 엘리트 용사들을 양성하는 ‘영적 사관학교’를 운영하는 사명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제네바신학대학원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하는 사역은 이처럼 조국 기독교계 안에서 진리를 비진리로부터 구별하여 지키는 ‘공간적 성별 운동’인 동시에 과거의 정통신앙을 미래로 연결하는 ‘시간적 신앙 계승’이 됩니다.
  바로 이 ‘선지학교’를 통해서 ‘선지자의 제자들’을 더 많이 배출해 냄으로써 우리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약속된 상급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우리 교단을 위해 정말 큰 선물로 주신 이 제네바신학대학원을 진정 소중히 여기고 위하여 힘써 기도하며 더욱 마음과 정성을 다해 후원함으로써, 주님께서 명하신 ‘진리 수호’와 ‘선교 사명’에 끝까지 함께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