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밤예배 2018-02-11 의인들의 모임 [시편 1편 1-6절]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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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밤예배 2018-02-11
2017학년도 졸업감사예배(주일밤 예배)
설교:의인들의 모임 [시편 1편 1-6절] 석기현 담임목사
찬양:중·고·대S.F.C. 연합찬양대

(101)

"의인들의 모임"

시편 1편 1-6절 / 석기현 담임목사
옛날 어느 고을에 자기 아내한테 꼼짝 못하는 공처가 원님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사사건건 아내의 간섭을 받고 바가지를 긁히면서 살던 그 원님은 자기만 그렇게 엄처시하(嚴妻侍下)에 살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남편들도 다 그런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자기 밑의 모든 부하들을 관청 앞뜰에 불러 모은 후에 ‘아내가 무서운 사람은 왼쪽에 모이고, 아내가 무섭지 않은 사람은 오른쪽에 모이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사람들이 다 왼쪽에 모였는데, 딱 한 명의 아전만 오른쪽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원님은 그 아전이 참 놀랍기도 하고 또 부럽기도 해서 “너야말로 정말 사내대장부다운 사람이구나! 너는 도대체 어떻게 살기에 아내가 조금도 무섭지 않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전은 “사또, 사실은 오늘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아내가 저한테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저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즉 그 아전도 실은 똑같은 공처가였던 것입니다.

  제가 이런 ‘아재 개그’보다 훨씬 더 오래 된 구닥다리 농담을 꺼낸 이유는, 저도 그 이야기 자체는 그리 우습지 않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도대체 그 아전의 아내가 왜 자기 남편한테 ‘사람이 많은 곳에는 가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그 농담의 포인트가 아닌 줄은 잘 알지만, 저로서는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이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이 왜 싫은지 그 어떤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었더라면 그 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여튼 그 아전의 아내가 남편더러 ‘사람이 많은 곳에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한 이유는 지금까지도 제가 알 길이 없지만, 오늘 본문에서 성경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엄금하면서 그 이유까지 명백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회적인 동물’로 지으신 까닭에 사람은 자연히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어 있으며 그 결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과 어떤 ‘특정 집단’을 이루게 됩니다.
  문제는 그 가운데 우리 기독신자들이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될 무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제 한 교육과정을 끝내고 새로운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혹은 졸업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우리 SFC 운동원들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이 시간 저는 주신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이 평생토록 단 한 걸음이라도 들어가서는 안 될 모임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도 아예 기웃거리기조차 하지 말아야 할 요주의 집단들이 과연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 SFC 운동원들은 ‘악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 결코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절 상반절에 “1a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악인”이란 ‘도덕적 의미에서 나쁜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그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사상이나 윤리 자체가 악한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
이 되기 위해서는 악인들의 “꾀”를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도 바로 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악한 꾀’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두말할 것 없이 그 기준은 오직 성경 말씀입니다.
  2절에서 그처럼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곧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자’라고 일깨워 주는 그대로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교훈과 다른 사상,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반대되는 윤리를 주장하는 자는 여지없이 ‘악인’인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악인’이 어떤 무리인지를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 악인은 바로 ‘종북좌파’입니다.
  그 사상이 ‘공산주의’에 빠져 있고 그 행동이 ‘북한의 독재자’를 비호하고 있는 집단입니다.
  이들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악한 꾀’로써 여러분을 선동하며 세뇌시키려 하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악인’이며 최악의 ‘악인’들인 것입니다.

  먼저 이 종북좌파들이 가지고 있는 ‘공산주의 사상’은 결코 ‘공산주의’라는 명칭으로 대놓고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사회주의’라는 완곡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데모현장에서 “사회주의가 답이다.”라고 버젓이 플래카드까지 내걸고 있는 것을 이미 여러분도 보았습니다.
  그 ‘사회주의’를 조금 더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 바로 ‘분배 우선’의 원칙입니다.
  이 ‘분배 우선’이란 자본주의의 ‘성장 우선’이라는 원칙과 정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아마 지금 세대의 학생들에게는 아예 ‘정답’으로 기정사실화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여러분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경기 침체 현상을 회복하기 위한 해결책이 과연 ‘성장’에 있느냐 아니면 ‘분배’에 있느냐 하고 양자를 저울질해 볼 여유조차 없이 ‘무조건 분배가 우선이다.’라는 하나의 답만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 그 어떤 ‘저명하다는 경제학자’의 말을 인용하든지 간에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그 대신 아주 간단하게 질문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와 현재 존재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분배’를 잘해서 부자가 된 경우가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만약 ‘분배가 경기회복의 해결책이다.’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전 세계에서 가장 ‘분배’를 잘하고 있다는 북한이 왜 저 모양 저 꼴일까요? 만약 ‘사회주의가 답이다.’라는 주장이 정말이라면, 왜 사회주의 선구자였으며 북한의 모델이었던 구소련이나 중국이 그 좋은 ‘정답’을 포기하고 자본주의로 돌아섰을까요? ‘재벌에게서 세금을 더 많이 걷어내어서 서민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해 주어야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여러분을 선동하는 극좌파 교사들의 말에 제발 순진하게 넘어가지 말고, 여러분이 직접 한 번 저의 이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 다음으로 이 종북좌파들이 ‘북한의 독재자’를 비호하는 행동은 더더욱 기가 막힙니다.
  이것 역시 그네들의 데모 플래카드에 “북이 우리의 미래다.”라고 버젓이 등장했던 말입니다.
  지금 사상 최악의 독재자가 2천만 명의 인민들을 저토록 압제하면서 굶겨 죽이고 얼려 죽이고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어 죽이고 있는 저 북한이 도대체 어떻게 우리 자유대한민국이 지향해 나가야 할 미래가 된다는 소리입니까?
  김정은의 미사일과 핵폭탄 도발을 두고 온 세계가 규탄하면서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고 심지어 북한과 가장 가까운 중국마저 마지못해 경제봉쇄에 일부 협조하고 있는 판인데, 그 미사일과 핵폭탄의 실질적인 위협에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 안에서는 오히려 ‘북한의 핵은 우리 민족의 공동자산이다.’라는 따위의 망언이 어떻게 이처럼 정론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면서도 이런 자들은 자기네를 가리켜 ‘종북좌파’라고 부르면 자기는 절대로 ‘종북’이 아니라고 주장할 뿐 아니라 한술 더 떠서 ‘명예훼손죄’로 고소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처럼 자기가 ‘종북좌파’가 아니라고 말하는 정치인들 가운데 ‘나는 반공좌파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미국의 좌파는 절대다수가 다 ‘반공의식’만은 투철한 좌파이며, 일본의 좌파 역시 ‘종북’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의 좌파 정치인들은 자기가 절대로 ‘종북’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선거철 때나 국회 안에서는 여지없이 ‘종북’과 한패가 되고 있으니, 정말 저로서는 그 속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SFC 운동원 여러분, 지금 제가 말씀 드린 이 ‘사상’ 문제에 있어서 여러분과 같은 또래 세대의 다수는 이미 ‘저쪽’에 다 모여 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여러분이 지금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내용을 그대로 급우들에게 말하면 아마 ‘수구꼴통’이라고 욕을 먹든지 어쩌면 ‘왕따’까지 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아무리 ‘소수’로 몰리더라도 그 ‘종북좌파의 꾀에 넘어간 다수’ 쪽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공산주의’를 추종하고 ‘북한의 독재자’를 비호하는 무리는 특히 여러분 같은 청소년들이 가장 미혹당하기 쉽고 이 소중한 조국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뒤엎어 놓으려는 실로 ‘악한 자들의 모임’인 것을 꼭 명심하고 극히 경계하는 SFC 운동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 SFC 운동원들은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모임’에 절대로 함께 서지 말아야 합니다.

  1절 중간에 “(복 있는 사람은) 1b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의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죄 있는 자로 정죄당한 자’를 뜻하는데, 아까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인 ‘악인’보다 더 악화된 상태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에서는 ‘악인의 꾀’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죄인의 길’이라고 한 것 역시 내용상 더 심화된 점층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악한 꾀’를 이제 ‘행동으로 옮기고 습관으로 발전된’ 상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죄인의 행동’입니까?
  이것 역시 ‘성경 말씀’이 그 기준이 되는데, ‘소요리 문답’ 제14문에 “죄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서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 어기는 것이다.”라고 답하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세상의 법을 어기는 범법자에게도 그에 따른 처벌이 당연히 따른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내리신 법을 어기는 사람이 그 얼마나 엄중한 벌을 받게 될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런 ‘죄인들이 걸어가는 길’ 즉 그처럼 ‘성경 말씀의 법을 어기는 사람들의 행동’을 결코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죄인의 길’에 대해서도 아까 첫 번째 대지에서 했던 것처럼 딱 한 가지,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또한 지금의 여러분에게 가장 현실적인 것 하나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음란한 성문화’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서 제대한 후에 결혼을 하고 그 이후로 약 20년 동안 미국에서 살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벌어진 엄청난 변화들 때문에 깜짝 놀라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온갖 종류의 ‘음란한 성인문화’와 그로 인한 ‘청소년들의 성도덕 타락’입니다.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남자 대학생의 70퍼센트, 여자 대학생의 60퍼센트가 성경험이 있다는 통계가 나오는가 하면, 고등학생이나 중학생들 사이에서도 ‘모텔에 간다.’는 뜻으로 ‘MT 간다.’는 은어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그런 청소년들이 첫 성경험을 하는 평균 연령이 남녀 모두 13세 대에 있다는 기사도 어디선가 보았는데, 아마 조만간 초등학교에까지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제가 경향교회에 온지 몇 년 후에 우리 교회의 청년회 안에서 무슨 설문조사가 있었는데, 거기에서조차 이미 혼전 성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회원들이 꽤 많은 것을 보고 저는 정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미국이 성적으로 가장 문란한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니 웬걸 완전역전입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주거지 부근이나 학교 앞에까지 범람해 있는 ‘성인문화’ 때문이겠지만,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야말로 성적으로 훨씬 더 일찍부터 타락하고 있는 형편이며, 그에 비해 미국의 청소년들은 오히려 순진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제가 몇 년 전인가 설교시간에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사회가 혼전관계를 자연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이게 되면 앞으로는 혼외관계조차 죄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설마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우가 지금은 점점 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프랑스의 유명한 잡지의 편집장인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에 걸려 한쪽 눈만 겨우 뜰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신경기관과 근육이 마비된 이후에 자신에게 일어난 실화를 회고록으로 만든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였습니다.
  그 스토리 자체는 아주 감동적인 ‘인간승리’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내용 가운데 제가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보비는 발병하기 훨씬 전부터 자기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었는데,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보비의 아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심적으로는 큰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그냥 현실로 받아들이며 묵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평소에 프랑스는 워낙 온갖 혼전관계는 두말할 필요 없고 혼외관계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여서 ‘스캔들이 생겨도 스캔들이 되지 않는 나라’, ‘스캔들 자체가 아예 없는 나라’라는 말을 듣고 있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혼전관계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이 대한민국 역시 곧 혼외관계조차 ‘사랑하는 게 무슨 죄냐?’라고 하면서 아예 범죄행위로 인정하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간통죄’는 이미 형사적으로 처벌대상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런 추세로 계속 나가면 남편이나 아내가 외도를 해도 민사소송조차 하지 못할 날이 머지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SFC 운동원들만이라도 이런 압도적인 ‘범죄의 조류’에 결코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음행’은 다른 온갖 종류의 죄로 걷잡을 수 없이 끌려가게 되는 제일 첫 단계의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에도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창세기 6장 2절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고 기록된 대로 ‘불신결혼’과 ‘중혼’이 곧 온 세상을 ‘죄악으로 관영하게(가득 차게) 만든’ 첫 번째 죄악이었던 것입니다.
  혼전관계를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거기에 빠져들게 되면 여러분의 인생 전체가 곧바로 ‘죄인의 길’로 직통하게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성경이 정죄하는 이 명백한 ‘범죄자들의 모임’에 절대로 함께 서지 않는 SFC운동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SFC 운동원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사람들의 모임’에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앉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절 하반절에 “(복 있는 사람은) 1c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오만한 자”의 원문은 ‘비난자’라는 단어입니다.
  바로 자신이 악인이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과 의인들을 욕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부정하고 하나님보다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더 높이는, 실로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교만한 불신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묘사할 때 곳곳에서 ‘목이 곧은 사람’ 즉 ‘고집불통’이라든지 혹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자’ 즉 ‘감히 하나님을 자기 코 밑으로 내려다보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마땅히 높이 떠받들어 모셔야 할 자신의 창조주를 오히려 그처럼 만만하게, 아니 눈을 내리깔고 본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될 일입니까?
  하지만 사람이 처음에는 악인의 생각에 동조하다가 그 다음으로 죄인의 삶에 점점 익숙해지면 결국 마지막으로 도달하게 되는 최악의 상태가 곧 그런 교만의 극치인 ‘불신앙’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 앞에서 오만한 자는 오늘날 크게 두 부류의 사람에게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자연과학자들인데, 대표적인 인물이 현대의 최고 이론물리학자 중 한 명인 스티븐 호킹 박사입니다.
  제가 최근에 그 스티븐 호킹이 내레이션을 하는 어떤 과학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호킹 박사는 정말 ‘무시무시한’ 발언을 했습니다.
  바로 ‘자연계는 신이 없어도 스스로를 창조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창조를 논할 때 그 제일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어떻게 ‘무에서 유가 창조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이것은 오늘날 소위 ‘빅뱅’이 우주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가설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즉 ‘특이점에서의 대폭발이 모든 물질과 시공간의 시작이고 그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라는 가설이 사실이라면, 그 ‘특이점이라는 것은 과연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절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킹 박사는 그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그 호킹 박사의 설명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제가 알아들을 수 있고 여러분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정도는 이렇습니다.
  호킹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물질’이 있으면 ‘반물질’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는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빈 공간 즉 ‘무’의 세계가 사실은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반물질’로 가득 차 있어서, 그것이 결국 물질 즉 ‘유’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연은 스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있으니 신의 존재는 필요 없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는 것이 호킹 박사의 기가 막히는 논리였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학설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따라서 그 학설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 결론을 내릴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그 원리를 바로 발견하면 맞는 학설이 될 것이고 잘못 이해하면 틀린 학설이 될 것입니다.
  우주가 창조된 과정에 대해 내세우는 학설들 중에도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어떤 학설로 설명을 하든지 간에 바로 그 ‘창조 과정’을 일어나게 한 근본적인 원인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는 아무 변함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호킹 박사가 주장한 대로 ‘반물질’로 가득 찬 ‘무’의 세계에서 ‘물질’로 채워진 ‘유’의 세계가 창조될 수 있다는 것이 만약에 사실이라면, 그 과정은 결코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주장하신 창조역사’인 것입니다.

  비록 현대의 과학적 언어와 개념으로 포장되기는 했지만, 호킹 박사의 ‘자연 자체가 바로 창조주다.’라고 하는 논리와 신념은 조금만 따져보아도 옛날 사람들의 ‘일월성신을 섬기던 미신’이나 오늘날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는 ‘유물론 사상’과 근본적으로 똑같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코스모스’, 이 ‘전 우주’를 만든 것이 자연 자체라면, 사람은 그 ‘자연이 만든 피조물’이 되는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사람을 인식할 수 없는 반면에 사람 쪽에서만 자연을 인식할 수 있지 않습니까?
  즉 호킹 박사의 논리는 창조주는 피조물을 인식할 수 없고 피조물만 창조주를 인식할 수 있다는, 정말 해괴망측한 모순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들 중에 그런 ‘과학자’보다 훨씬 더 오만한 자가 사실은 소위 ‘신학자’라고 하는 자들 중에 있습니다.
  바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계시해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에 관해서 생각하고 경험한 것을 모아 놓은 책’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 성경관은 하나님을 ‘스스로 살아 계시는 신’이 아니라 ‘사람의 산물’에 불과한 존재로 격하시키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신이란 ‘실존하는 절대주권자’가 결코 아니라 오로지 사람이 명상을 하고 득도를 하고 체험을 하는 가운데 생겨난 어떤 ‘형이상학적 존재’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라는 신학자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정통신학을 주장하는 사람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신정통주의자’라고 불리지만, 우리 개혁주의 신학에서 볼 때에는 그저 ‘오십보백보’의 차이에 불과한 자유주의자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칼 바르트가 아무리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우리와 비슷한 말을 하는 것처럼 들려도 그는 하나님을 ‘실존하시는 절대주권자’로 믿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에 신앙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신’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그런 ‘추상적인 신’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도움이나 힘을 얻을 수도 있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더 차원 높은 인생을 영위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니, 극단적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똑같이 근본적으로는 어디까지나 ‘불신자’인 것입니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신앙이라는 것에도 엄청난 모순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자기 마음속에서 만들어 낸 신이라면 어디까지나 사람의 피조물에 불과한데, 그처럼 사람에게 종속된, 즉 사람보다 열등한 신이라는 존재를 사람이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겠습니까?
  또 아무리 마음으로 믿고 의지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실존하지 않는 신’인데, 그런 신이 사람에게 도대체 어떤 구체적인 힘이나 도움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곧 자유주의 기독교뿐 아니라 다른 모든 우상종교에 똑같이 내포되어 있는 자가당착적인 모순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우상을 가리켜 오직 ‘헛 것’이라고 간단히 일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킹 박사의 강연을 들으면 저도 부분적으로 그의 깊은 학문에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칼 바르트 목사 역시 실제로 만나면 정말 한없이 겸손하고 자애로운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바로 그런 ‘지성인’들과 ‘인격자’들의 얼굴 뒤에 감추어져 있는 ‘영적 오만함’을 꼭 간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자신의 ‘지식’이나 ‘양심’을 더 높이는 사람, 아니 그 지식과 양심으로써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부정하는 사람은 최악의 교만에 사로잡혀 있는 불신앙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시편 14편 1절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엄중히 책망하고 있는 대로, 아무리 학식이 높아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가장 ‘어리석은 자’이며 아무리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실존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실상 가장 ‘부패한 마음의 소유자’일 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와 같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을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신성모독자’임을 깨닫고, 그런 ‘불신자의 모임’으로부터 자신을 철저하게 성별하는 SFC 운동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경향의 SFC 운동원 여러분, ‘편 가르기’는 일반적으로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사실상 ‘같은 핏줄을 나눈 가족’이나 ‘청소년 시절의 소중한 추억과 우정을 나누는 급우들’끼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이 된 교회’ 안에서나 혹은 ‘같은 조국을 두고 똑같은 애국심을 발휘해야 할 상황’ 등에서는 그런 ‘편 가르기’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정신적, 사상적, 윤리적, 종교적 영역에서는 ‘편이 갈라지는 것’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선과 악’으로 명백히 나누어지는 영역이며, 그 둘이 합쳐서 하나가 되는 ‘중간’ 자체가 아예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런 영역에서는 모두가 다 ‘한편’이 될 수 없고 오직 ‘양쪽의 다른 편’만 있을 뿐이며, 문제는 과언 ‘어느 편에 들어가느냐?’에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 가르기’를 무조건 나쁜 일이라고만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명백한 매국노요 반역세력인 종북좌파를 비판하며 경고하는 것을 두고 ‘색깔론’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 성경이 엄연히 죄인이라고 책망하는 동성애자들을 두둔하면서 ‘학생인권조례’인지 뭔지 하는 것을 가지고 그들도 포용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유일신앙을 지키면서 다른 온갖 우상종교들을 철저히 배격하는 우리 개혁주의 기독신자들을 가리켜 ‘같은 종교인들끼리 서로 화목할 줄도 모르는 독선주의자’라고 욕을 퍼붓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무리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편 가르기’를 나쁘다고 비난하는 자들이야말로 실상은 진짜 ‘악인’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챌 수 있어야 하며, 지금 같은 혼란의 시대야말로 정말 더욱 ‘색깔’을 정확하게 구별하고 ‘올바른 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때인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그처럼 ‘편을 쫙 가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 4절과 5절이 그런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라고, 하나님은 ‘악인들의 모임’과 ‘의인들의 모임’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갈라놓으실 심판주시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람에 나는 겨”라는 말은, 옛날에 곡식을 타작할 때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 있는 것을 분리하기 위해서 키질을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추수하는 농부가 키를 들고 아래위로 흔들면 무거운 알곡은 떨어져서 키에 도로 담기게 되는 반면 가벼운 쭉정이 즉 ‘겨’는 바람에 날려가 버리게 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묘사하면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고 예언한 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즉 나중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에 ‘겨’ 즉 악인은 ‘알곡’ 즉 구원받을 신자와는 완전하게 분리수거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서 그 마지막 날이 오면 ‘악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견뎌낼 사람은 아무도 없고, 죄인들 중 단 한 명도 의인들의 모임에 절대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회의 단체들 안에는 항상 나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학교에 가면 반마다 불량서클 따위에 가담해 있고 걸핏하면 급우들을 괴롭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군대에 가면 어디에 배치를 받아도 지독하게도 악질적인, 거의 병적이라 할 만큼 악랄한 고참이 꼭 내무반마다 한 명씩은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개그맨 박명수의 명언 ‘원수는 직장에서 만난다.’라는 말 그대로,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정말 성질 고약한 부하직원, 정말 꼴 보기도 싫은 상사가 없는 직장을 찾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이런 나쁜 사람, 이런 악한 인간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사회, 오직 진실하고 착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은 어디 없을까?’ 하고 꿈을 꾸게 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꿈은 이 세상에서는 어디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 한 곳, 그런 꿈같은 일이 정말로 일어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오늘 본문에서 약속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 재림하실 때 들어가게 될 ‘의인들의 모임’, 악인과 죄인은 단 한 명도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순수한 의인들만의 공동체, 바로 천국입니다.
  악인은 단 한 명도 없는 그런 완벽한 ‘의인들의 모임’에서 살게 될 그 날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반면에 그날이 올 때 악인들은 우리 의인들의 그 모임이 얼마나 부럽겠습니까?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어떻게 저쪽 의인들의 모임에 낄 수가 없을까?’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섞이고 싶어도 결코 들어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이미 “악인들은 단 한 명도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죄인들은 의인들의 모임에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심판주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들 그야말로 쫙 ‘편 가르기’ 하시는 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그 멋진 ‘의인들의 모임’에 꼭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오늘 주신 말씀대로 여러분이 절대로 들어가지 말아야 할 무리가 무엇인지를 똑바로 알고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의 교훈과 정반대되는 악한 윤리나 사상, 특히 ‘종북좌파의 선동’에 결코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의 법도가 엄금하는 행동,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혼전관계의 음행’에 절대로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계시가 명백히 증거해 주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무시하는 교만, 오늘날 불신 과학자들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지성’과 ‘양심’을 내세우며 오도하는 이 ‘불신앙의 무리’에 그 어떤 경우에도 동조하거나 합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 상급학교로 진학하거나 혹은 사회에 진출하여 본격적인 성인으로서의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될 때에 더욱 철저하게 ‘교회중심’의 생활원리를 따름으로써, 성경이 절대로 가지 말라고 경고해 주는 대로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결코 앉지 않는 가운데 저 천국에 예비되어 있는 ‘영광스러운 의인들의 모임’에까지 꼭 함께 들어가는 모든 SFC 운동원들과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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