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밤예배 2017-11-19 내가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잠언 8장 27-31절]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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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밤예배 2017-11-19
추수감사 찬양예배(주일 밤 예배)
설교:내가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잠언 8장 27-31절] 석기현 담임목사
찬양:할렐루야 연합찬양대
※ 찬양 연습 – 오후 4:00, 제1세미나실(지하 1층)
추수감사 찬양예배

(81)

"내가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

[잠언 8장 27-31절] 석기현 담임목사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페르마라는 아주 유명한 수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수학적으로 많은 업적을 성취하기도 했지만 ‘페르마의 정리’라는 아주 골치 아픈 문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페르마는 아주 잘 알려진 ‘피타고라스의 정리’ 즉 ‘삼각형에서 a제곱 더하기 b제곱은 빗변 c제곱과 같다.’라는 등식을 좀 더 발전시켜서, 그 제곱수가 ‘2’가 아니라 ‘3제곱이나 그 이상의 제곱수’가 될 때에도 그 등식이 성립되는 경우가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 간단한 예를 들자면, ‘a3 +b3 = c3’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킬 수 있는 정수 a, b, c가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페르마는 ‘이 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수 a와 b와 c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문제는 그 결론에 대한 증명을 전혀 남겨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대신 그는 “나는 실로 위대한 정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 증명을 쓸 여백이 없다.”라는 애매모호한 자화자찬의 글만 남겼습니다.
  실제로 그는 책의 가장자리 여백에다 자신의 이론을 기록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그 ‘페르마의 정리’에 대한 증명은 양적으로 너무나 방대해서 그것을 기록할 자리가 없다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만 남겼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페르마 이후의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은 그야말로 끝없는 수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숱한 수학자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3백 년이 넘도록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 누군가 결국 그 증명을 해내었다고 하는데, 그 증명과정에서 사용되는 수학이론이 페르마 시대에는 아예 존재도 하지 않았던 아주 복잡한 것이어서, 어쩌면 페르마가 그 정리를 증명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 것은 그의 착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쪽으로 수학계의 여론이 기울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여튼 그 ‘페르마의 정리’를 중심으로 페르마 본인부터 시작해서 수백 년 동안 수학계의 최고 지성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 같은 범인들로서는 도대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조차 전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결국 그처럼 ‘지극히 고고한 지식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원 높은 일’에 대해서는 페르마와 같은 최고수준의 학자만이 이해할 수 있고 감탄할 수 있으며 그런 까닭에 본인 스스로 자화자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하나님의 지혜는 그야말로 인간으로서는 불가해한 신비요 추측조차 할 수 없는 오묘막측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당신의 창조 지혜에 대해 스스로 기뻐하실 수밖에 없으셨는데,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선 27절에서 “그”란 하나님을 가리키며 “내”라는 1인칭은 앞 절의 문맥으로 볼 때 ‘지혜’를 의인화해서 칭하는 말인데, 궁극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 사실을 의식하면서 본문을 읽어 보면, 그 성자 예수님께서는 천지창조 사역 때부터 이미 ‘로고스’로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란 ‘하늘을 준비하시며’ 혹은 ‘하늘을 제자리에 두시며’라는 뜻입니다.
  즉 하늘과 우주 공간을 위한 계획과 청사진 및 그 필요한 재료와 물리적 법칙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의 창조 지혜는 사람이 아무리 자기 머리를 굴리며 모든 물리학과 천문학을 다 동원하더라도 결코 완전히 이해할 길이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궁창을 해면에 두르셨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깊음의 표면에 원(경계선)을 그리셨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우리나라의 해안선의 총 길이는 얼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경계선이란 어떻게 그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즉 모래알 한 개, 물방울 하나까지 따져서 꼼꼼하게 그리면 그릴수록 그 경계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며, 그래서 소위 ‘프랙탈’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모든 해안선의 길이는 무한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처럼 인간으로서는 정의도, 결론도 내릴 수 없는 ‘바다의 한계선’은 오직 그것을 애당초 정해 놓으신 하나님 한 분만 아시는 것입니다.

  28절의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라고 한 것은 ‘구름을 제자리에 달아 놓으시며’라는 뜻입니다.
  시인 헤르만 헷세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구름의 아름다움을 두고 “구름은 천재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처럼 인간의 지혜로써는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구름의 모양과 위치를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그 자리에 고정해 놓으시는 것입니다.

  29절에서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씀도 역시 하나님의 창조 지혜의 놀라운 결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학기술이 극한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도 사람은 ‘해수면’을 조절할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뻔히 보이는 대재앙을 자초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그 ‘바다의 한계’를 정해 놓고 계시는 한 ‘물은 그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고’ 일정한 높이와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지혜는 또한 “땅의 기초를 정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질학을 통해 이 지각 밑이 어떤 구조와 재질로 되어 잘 알고 있습니다.
  지표면에서 조금만 밑으로 내려가면 거기에는 고온의 반액체 물질이 유동적 상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땅’을 받쳐 주고 있는 기초란 무슨 딱딱하고 견고한 콘크리트 같은 물질이 아니라 용해질 상태의 아주 불안정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위에 ‘땅’을 고체 상태로 유지시켜 우리의 활동 기반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창조 사역이 진행되는 동안 30절과 31절에 보면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창조자”라고 번역된 말은 ‘기술자, 설계자’라는 의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당신의 전지전능으로써 실로 오묘하고도 완벽하게 진행되는 동안 아무도 그 하나님 곁에서 무슨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직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즉 ‘하나님의 지혜’만, 혹은 ‘로고스이신 성자 예수님’만 그 창조주와 함께 계시면서 그 사역을 돕고 그 진행되는 창조를 두고 함께 기뻐하는 동역자가 되신 것이었습니다.
  특히 “사람이 거처할 땅”이라는 말은 그 모든 천지창조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말하자면 이 우주 전체가 오직 인간의 생존과 활동을 중심으로 창조되었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인자들을 기뻐하였다”고 즉 천지창조가 완성된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보다도 당신이 지으신 사람을 두고 제일 기뻐하셨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오직 성삼위 하나님 한 분만 당신의 창조 지혜를 이해하실 수 있고 그런 까닭에 천지창조가 진행될 때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은 함께 사역하시면서 또한 함께 스스로 기뻐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화자찬’으로만 끝내지 않으시고, 그 많은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당신의 창조사역을 두고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존재를 정해 두셨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신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속성을 부분적으로 공유한 존재로 지어진 까닭에 사람은 자기 속에 주어진 ‘하나님의 지혜의 형상과 모양’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전지를 전부 다는 물론 아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속성 또한 부분적으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그 성삼위 하나님과 ‘같이 감탄하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원된 지혜와 능력을 깨달을 수 있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릴 줄 아는 아주 특별한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존재하게 된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는 요리문답 제1문답의 의미 또한 바로 이것입니다.
  천문학자들조차 그 끝을 잴 수 없는 이 방대하기 짝이 없는 전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생명체 중에서 오직 저와 여러분만이 유일무이하게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통을 할 수 있는, 실로 엄청난 특권을 받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감사찬양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식물이나 동물이 아니라 오직 사람만 하나님의 창조 지혜를 깨닫고 이해하고 감탄할 수 있도록 특별히 창조되었습니다.
  그 사람 가운데서도 오직 원래의 ‘창조 형상’을 회복한 기독신자만이 그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두고 ‘그의 곁에서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공감대’를 나눌 줄 아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하신 것을 유지시키시고 작동시켜 주신 덕분에 생존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천지창조 때에 만들어 놓으신 ‘하늘’이라는 지붕이 무너지지 않고 ‘땅’의 기초가 흔들리지 않으며 ‘바다의 한계’가 지켜진 까닭에 저와 여러분의 생명이 오늘까지 영위될 수 있었음을 기억하면서, 이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을 인하여 함께 크게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감사찬송을 부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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