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밤예배 2017-10-08 오직 그리스도 / Solus Christus [디모데전서 2장 5절] 신승욱 목사(제네바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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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밤예배 2017-10-08 경향선교회 헌신예배
경향선교회 헌신예배(주일 밤 예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특강 ②
강사:오직 그리스도 / Solus Christus [디모데전서 2장 5절] 신승욱 목사(제네바신학대학원 교수)
찬양:대학부S.F.C. 찬양대
※ 찬양 연습 – 오후 5:00, 제1세미나실(지하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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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디모데전서 2장 5절
종교개혁기념주일 특강 ②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구원의 당위성

인간은 누구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그 당위성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상관없이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적극적으로는 구원으로 말미암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하여 영생복락을 누리며 기쁨과 감사와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함이며, 소극적으로는 지옥형벌을 면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인생의 ‘본질’과 ‘목적’을 찾게 되는 것이며 동시에 현세의 ‘양상’과 ‘상태’를 바르게 해석하고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교환(The Great Exchange):‘죄’의 전가와 ‘의’의 전가

구원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죄 사함’과 ‘칭의’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를 굳이 분리시켜서 별개의 사건인 듯이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개념을 나눠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공의’와 ‘사랑’

하나님의 여러 가지 속성들 중에 ‘공의’와 ‘사랑’이라는 중요한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공의의 속성은 있는 죄를 결코 간과하실 수 없고, 사랑의 속성은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절대하신 하나님께서 이 두가지 속성을 모두 유지하시는 것으로써 죄 값을 지불하시고 사랑의 용서를 이루십니다.

죄 사함

인간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그 ‘원죄’와 ‘자범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죄 사함을 얻지 못하면 구원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비극적인 이유는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전적타락 (total depravity)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악해 빠질대로 완전하게 악해 버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악한 것이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인간이 다 악한 정도의 극단에 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가 지(知), 정(情), 의(意)를 비롯한 모든 요소들이 다 죄로 물들어서 그 어느 한 요소도 온전한 것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해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적타락’을 ‘전적 무능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인간이 모종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노력들을 경주할 수는 있으나 완벽하신 하나님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완벽하신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을 충족시키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완벽한 즉 온전한 죄 값의 자격을 갖춘 희생제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흠이나 점이 없으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택한 백성들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두 부어졌습니다. 그의 ‘십자가 대신속죄’ 사역으로 인해 그것을 믿는 모든 자들의 죄가 ‘단번에’, ‘영원히’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passive obedience)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 순종을 통해 죄인들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두 ‘전가’(imputation)되었습니다. 이 길만이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완벽한’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의롭게 됨(칭의)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드러나야만 완전하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의롭게 되는 일 역시도 인간의 모종의 ‘선한 행위’ 혹은 ‘선한 행위에로의 진심 어린 노력’으로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매우 가치 있고 권장되어야 하는 것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결국 아무도 행위로 ‘완전’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율법’의 기준은 인간이 이룰 수 없다고 성경이 확고하게 단언할 만큼 높고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행위에 있어서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킨 존재는 사람의 몸을 입고 화육강세(化肉降世) 하신,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편에서 온전한 ‘의’로 여겨 주실 수 있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외에는 없습니다. 이 예수 그 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즉 믿는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그 온전하신 의를 전가(imputation)시켜 주십니다. 믿는 순간 온전한 의인으로 만들어 주시는(to make righteous) 것이 아니고 의인이라고 칭해(to declare righteous) 주시는 것입니다. - 물론 중생을 통하여 의롭다 칭함을 입은 사람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성화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성화적 삶’과 죄인을 의인으로 칭해 주시는 ‘의의 근거’는 다른 것입니다. 이 주제는 강좌④ ‘오직 믿음’ 시간에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그 온전하신 의를 우리의 것으로 ’간주’해 주시는 것입니다. 죄인이 의롭게 되는 길도 ‘오직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을 일명 복음의 ‘위대한 교환’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자 사이의 이렇게 역동적이고 은혜로운 ‘전가’(imputation)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

위에서 설명한 그토록 놀라운 복음의 일들은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영적이고도 실제적인 개념으로서 고린도전서 2장에서 말하는 대로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에 영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동시에 매우 실제적인 일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쉬운 비유를 제시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머리와 몸, 신랑과 신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 이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결코 깨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길만이 살 길입니다.

로마카톨릭의 심하게 왜곡된 구원관

로마카톨릭 역시도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로만이 아닌 인간 편에서의 공로가 첨부되어야만 구원이 완성, 확증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그들의 구원 이해의 기본적인 구조는 종교개혁 당시에 만연했던 ‘유명론’(nominalism) 사상에 입각해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반펠라기안주의(semi-Pelagianism)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기본적인 내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를 받아내기 위해 참되게 살고자 하는 자연인으로서 인간의 최소한의 공로(congruent merit)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후의 인간의 행위 역시도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한 참된 공로(condignmerit)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로만 되는 것은 아니고 인간의 행위도 필요로 한다는 ‘이행득구(以行得救)’의 기본 틀을 가져감으로써 구원은 결국 ‘신인협동’의 산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그리스도인의 인간으로서의 ‘성화적행위’는 매우 중요하며 구원받은 자의 삶에 있어서 불가결의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말도 결코 구원의 공로적 요소로서 작용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로만 입니다. 로마카톨릭은 이행득구 사상만이 아닌 인간이 죄 사함을 받고 은혜를 받는 데 있어서 인간의 중보적 역할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로마카톨릭의 ‘사제주의’는 ‘고해성사’와 ‘성례’ 등을 통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제들의 중보적 역할을 주장합니다. 로마카톨릭의 인간 중보직의 최고 정점에는 마리아의 ‘공동 대속자’(co-redemptrix)와 ‘공동 중보자’(co-mediatrix) 교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Scriptures)이 아닌 단순히 그들의 ‘전통’(tradition)에 입각한 교리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구원이 이루어지며, 사제나 성자들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중보자이시며, ‘오직 그리스도’외에 구원에 이르는 다른 길은 없음을 확정하려 했습니다. 세상에 알리려 했고, 가르치려 했으며, 성경의 진리를 밝히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자아확립’과 ‘자아실현’

‘오직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를 발견, 해석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합니다. 자신의 존재의의와 목적 자체를 그리스도와 연종합된 자로서 발견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인’으로 정의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그 결과 ‘자아실현’은 궁극적으로 ‘예수를 잘 믿고 예수를 위해서 사는 것’이 됩니다. 물론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자아실현은 특정 직업을 갖는다든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특정 라이프스타일(life style)을 실현한다든지 하는 등의 것을 말합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삶에서 이러한 요소들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것들이 삶의 핵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즉 그러한 것들을 이루었다고 하여 자아를 실현시켰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진정한자아실현은 예수를 잘 믿게 되고 예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자아실현이 이루어졌다면 내가 무슨 직업을 갖든지 무슨 스타일의 삶을 살고 있든지 상관없이 그 사람의 매일은 온갖 의미와 가치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유는 성경이 선언하는 대로 그리스도가 만물의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이며 그 발아래 통일을 이루게 될 것이므로 그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하여 그 안에서 이유를 찾고 그를 위해 사는 것은 최고 최상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실제에 있어서도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종교개혁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교회개혁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오늘날 교회가 개혁된다는 것은 잘못된 교회의 진상과 개혁의 필요성만을 적나라하고도 반복적으로 외친다고 될 일은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인 ‘오직 그리스도’ 사상을 계속 가르치고 배우기를 힘쓰며, 진지하고도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 실천하기를 힘쓰는 길 외엔 참된 종교개혁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오늘날 다시 한 번 ‘오직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