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밤예배 2017-10-01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시편 119편 105절] 신승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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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교구 헌신예배(주일 밤 예배)
주일밤예배실황 2017-10-01 화곡교구 헌신예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특강 ①
강사: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시편 119편 105절] 신승욱 목사(제네바신학대학원 교수)
찬양:화곡교구 연합찬양대
※ 찬양 연습 – 오후 4:30, 제3성전(지하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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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시편 119편 105절
종교개혁기념주일 특강 ①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의 진정한 중요성은 ‘오직’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구호가 중요한 모토(motto)들 중 하나로 주창되기 시작한 종교개혁시대에도 이미 성경의 중요성과 권위는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종교개혁자들의 교회개혁의 대상이었던 로마카톨릭도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로마카톨릭이 성경의 권위뿐만 아니라 ‘전통’(tradition) 역시 성경과 동일한 권위로 인정한다는데에 있었다. 성경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도 성경의 자증적(自證的) 해석의 원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교황이 해석의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권위에 그 어떤 것이 우선할 수도, 상응할 수도 없다는 성경 자체의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해 단순하지만 중요한 ‘오직’이라는 부사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성경만이 최고/최종의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일까?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규범)으로서의 성경

‘오직 성경’의 중요한 핵심개념은 성경만이 ‘최종권위’(final authority)를 갖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어떤 의미를 상정하고 어떤 것들의 옳고 그름을 가리고자 할 때에 필요한 것은 ‘기준’이다. 특정 기준에 의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기준들의 최종 기준’ 그리고 ‘모든 판단들의 마지막 판단’이 곧 성경이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구원의 책이므로 세상의 전 분야에 걸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답을 일일이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은 이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원리’를 제공할 뿐 아니라 해석의 ‘빛’을 던져준다. 오늘날 현대주의 사조는 ‘오직’이나 ‘절대’의 개념을 꺼린다. ‘상대주의’(relativism)의 허상에 빠져 모두가 나름대로 옳을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성경주의와 같은 무슨 ‘-주의(-ism)’ 역시 거부한다. 그래서 성경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내세우는 기독교의 사상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을 간과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스스로의 모순에 빠진다. 그들은 ‘-주의(-ism)’를 그렇게도 싫어하면서도 그토록 상대“주의”에 몰입되어 있다. ‘절대’를 극히 부정하면서도 스스로 ‘절대’는 “절대로” ‘안 된다’고 외치며 자신들만의 ‘절대’에 함몰되어 있다. 사람은 결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 우주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다. 사람은 의존적인 존재이다. 하나님 의존적인(God-dependent)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의존하기를 거부한다면 그 자리에 하나님 대신 다른것을 갖다 놓고 그것을 의존할 수 있을 뿐 독립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인간은 ‘-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유일한 기준으로서의 ‘성경주의’를 거부하고 대신 취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스스로를 신봉하는 ‘자율주의’(autonomy)이다. 그러나 최종/최고 판단기준으로서의 성경을 거부하고 한 치앞도 내다볼 수 없고 오류가 가득하며 의지실현이 자유롭지 못한 인간 스스로의 ‘자율성’을 최종/최고의 권위로 삼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모두에게 유일한 표준이 된다. 그것은 신앙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행위에 있어서도 그렇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의 일을 보여주며 인간에게 구원의 방법을 밝히 말해 주고 있다. 성경은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알려 주고 있다. 성경은 세상 역사의 성격을 명시적으로 알려 주고 있고 그 위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언하고 있다. 성경은 인간의 존재론적 의의와 현 상태에 대해서, 또한 진정한 의(義)와 악(惡)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설명하며 도덕과 죄의 정의를 알려 주며 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decrees)에 의한 것으로 ‘절대’하고 ‘불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만이 우리에게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이 된다. 성경을 따르는 자만이 인간으로서 참된 삶을 살게된다. 올리핀트(Scott Oliphint)는 성경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참된 인간됨을 앗아가고 우리를 비인간화(非人間化) 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경은 모든 권위 위의 ‘최종 권위’이다.

특별계시로서의 성경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씀으로 세계와 원리들과 속성들을 창조하셨고 여전히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운영하고 계신다(히 1:3). 하나님은 자연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요소들 가운데 스스로의 ‘존재와 영광’을 나타내(계시)고 계신다. 이 세상은 달리 핑계치 못할 만큼(롬 1:20) 하나님의 존재성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스프로울(R. C.Sproul)은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This world is filled with God’s glory. You can’t turn without bumping into it).”라고 했다. 하나님은 여전히 성실하게 당신을 우리에게 계시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일반계시(자연계시)’라고 부른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하나의 특별한 방식의 계시를 주셨다.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기록’이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계시하신 후 섭리를 발휘하셔서 ‘보존’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성경(Scriptures)이다. 성경을 일반계시(자연계시)와는 구분되는 ‘특별계시’라고 부르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는 일반계시가 충분히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과 통치를 말하고 있음에도 그것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계시는 심판의 근거는 제공하지만(롬 1:20) 구원의 길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둘째로는 특별계시의 빛에 의해서만 일반계시를 더욱 바르게 해석하고 일반계시의 요소들을 삶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토록 성실하고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계시를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이며 복인지 모른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구도자적 자세를 가지고 숙고하고 탐구하여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자비로, 선수적으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스스로 알 수 있는 그런 능력은 없다. 특별계시인 성경의 특징은 ‘기록’/’보존’된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다.

최종/최고 권위로서의 성경의 특징들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으로서의 성경은 크게 네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성경의 절대성을 입증하는 증거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가 범하기 쉬운 오류들 중 하나는 ‘성경의 자증성’(Scripture’s self-attestation)에 철저히 의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성경은 성경 스스로가 입증하고 보증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유일한 “최종권위”(final authority)이므로 성경 위에 더 이상의 권위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성경 외의 다른 권위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결국 성경의 ‘최종 권위성’을 신뢰하지 않는 행위이며, 성경의 진위를 판단하는 더 큰 권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고, 성경은 그 권위에 종속되어 판단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오류의 대부분이 성경을 변호하기 위한 선한 의도에서 이루어지며, 성경을 변호하기 위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으나 성경에 대한 궁극적인 신뢰는 성경 자체가 말하는 성경의 증언에 두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성경의 특징들을 살펴보자.

성경의 영감성(Inspiration)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우리말 번역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원어의 뜻은 theopneustos (theo 하나님 / pneo 숨을 내뱉다, 불다)이다. 즉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입으로 직접 말씀하셨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글자와 표현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축자적’(verbally)으로 영감되었다. 인간을 도구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셨으나 인간을 기계적으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고, 그의 환경과 기질과 능력 등 실질적인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여 ‘유기적’(organically)으로 영감하셨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유기적 축자 영감’의 섭리가 성경을 그토록 ‘실제적’이면서도 동시에 ‘신적’인 것이 되게 하였다. 구약은 그 말씀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듣고’ ‘따르게’ 하기 위한 하나님 자신의 말임을 셀 수 없을 만큼 반복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예수님 자신도 여러차례 구약의 말씀들을 하나님의 신적 영감의 말씀들로 인정하셨다. 또한 신약의 저자들이 구약을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 여기면서 자신들의 영감의 기록을 작성하였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신약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성경의 무오성(Inerrancy)

앞서 살펴본 성경의 신적 영감성을 확인할 때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또 다른 특징은 성경의 무오류성(inerrancy)이다. 성경 기록에 오류가 없다는 말은 성경이 주장하는 모든 사실들에 오류가 전혀 없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내용들은 모두 진리이며 신뢰할 수 있다. 성경이 바르게 해석되면 그 내용은 시대, 지역, 대상을 초월하여 진리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의 무오성(inerrancy)을 말할때 이는 성경의 원본(original autographs)에 한해서 하는 말이다.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사본/해석본들은 경우에 따라서 번역상, 표기상의 오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역본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번역본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며 간혹 원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난해한 구절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성경 자체의 신뢰성을 해칠 만큼 중대한 것들이 못된다. 그러므로 번역상 문제가 있는 몇몇 역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역본들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성경에 오류가 없음을 인정하였다. 또한 구약의 솔로몬, 히스기야, 에스라 같은 인물들 역시 사본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신앙과 행위에 권위를 갖는 정경적 말씀으로 여겼다. 당신의 말씀을 기록케 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의 명료성(Clarity)

종교개혁 당시에는 성경을 성직계급에 있는 특정인들만 읽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였으며 실제로 라틴어로 되어 있는 성경을 대부분의 평민들은 읽을 수 없었다. 당시 로마카톨릭은, 성경은 너무 심오하고 난해하기까지 한 거룩한 경전이라서 일반인들은 읽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읽고 듣는 누구나가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자신을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내어 맡기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바랄 때 모든 성경의 내용들은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읽어보지 못하였느냐?”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는데 이는 곧 성경을 읽는 자에게 그 내용은 매우 명확한 것임을 이미 전제로 하고 있는 말이다. 많은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인한 역사를 경험했던 자들이다. 그 말씀은 택함 받은 자들에게는 매우 효과적으로(effectually)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때의 바로 그 동일한 말씀이 지금 우리 손에도 있다. 성경을 읽을 때에 그것은 곧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될 것이다(시 119:105).

성경의 충족성(Sufficiency)

이 말은 구원과 행위에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성경이 충족하게 계시해 주고 있다는 말이다. 성경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물론 일부 난해구절들이 성경에 있지만 그것들은 그대로 놓아두어도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이 되기에 충분하며, 그러한 구절들마저도 성경 전체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에 입각한다면 얼마든지 합리적인 유추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말해 주고 있고 예수님과 사도들의 모든 설교와 행적들을 다 기록해 놓은 것은 아니다(요 21:25). 그러나 그 기록은 ‘구원에 이르게 하며 의와 진리로 교육하기’에 가감이 필요치 않은 충분한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충족성을 말할 때 두 가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는 성령의 내적 조명하심(inward illumination)이다. 성경의 내용 외에 성령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직접 들으려고 하거나 혹은 성령의 내적 도우심을 의지하지 않고 순전히 이성의 기능만을 사용하려는 이 두가지 양극단에 빠진다면 성경의 충족성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 성경이 열어 보여 주시는 충족성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선 온전하고 상식적인 이성의 작용에 성령의 조명하심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로는 성경(특별계시)이 충족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반계시(자연계시)를 소홀히 여기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연계의 질서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예를 들면, 제약회사의 한 연구원이 개발한 신약이 인간의 몸속에 들어가 효능을 보이는 그러한 일상적인 일들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나타내시고 영광을 취하신다.

‘오직 성경’ 사상의 실천

예수님은 입으로 고백은 하지만 실천이 전혀 따르지 않는 자들을 책망하셨다(마 7:21). 이 ‘오직 성경’ 사상 역시도 이것을 우리 삶에 실제로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종교개혁 사상의 모토들 중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Semper Reformanda)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은 항상 변화하고 혁신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항상 ‘성경으로 돌아가야’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사상과 행위들을 늘 성경에 입각하여 점검해보고 성경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달리 완전히 신실하셔서 지금도 여전히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사탄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그 말을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속삭인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냐?”라고. 하나님은 그 열매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고 사탄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다(창3:1-4). 우리 첫 조상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스스로의 독립성에 의존하여 스스로의 판단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비극은 시작되었다. 후에 자신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살면서도 그 곳의 풍습과 사고와 생활양식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말씀에 따르라고 하시며 말씀을 또 주셨다. 그 백성들의 실패의 결과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직 성경’의 반석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으로 삼고 천국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나그네요 객으로서 이 땅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