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7-08-27 “여호와께 이같이 드릴지니” 민수기 28장 1절 – 29장 40절 / 석기현 담임목사

More videos
171
Views
   

WMA음성받기MP3음성받기동영상다운받기동영상다운방법
주일낮예배 2017-08-27
2017′경향의 강단(37) (2017년 8월 27일 / 주일 대예배)
“여호와께 이같이 드릴지니” 민수기 28장 1절 – 29장 40절 / 석기현 담임목사
주일낮예배
1부 오전 7:00 / 2부 오전 9:00 / 3부 오전 11:00

(171)

"여호와께 이같이 드릴지니"

민수기 28장 1절 – 29장 40절 / 석기현 담임목사
영화에 보면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왕이나 사령관은 으레 부하들을 정렬시켜 놓고 일장훈시를 합니다.
  그 목적은 곧 자기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용기를 북돋우어 줌으로써 그 전투에서 반드시 이기기 위함입니다.
  사실 유능한 지휘관은 특히 전력에 있어서 적군에 비해 열세에 있을 때조차 강력하고도 감동적인 훈시 한마디만으로도 휘하 군사들에게 필승의 신념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런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앞장들에 보면, 이들은 가나안 땅의 동쪽 입구에 해당되는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마지막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정복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모세의 뒤를 이어 그들을 이끌어갈 후계 지도자도 미리 임명해 두었으며, 제2차 인구조사를 실시함으로써 가나안 땅의 기업을 나눌 기준까지 미리 확정해 두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그야말로 ‘완전군장’을 갖추고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의 상태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마지막 훈시를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8장과 29장에 기록되어 있는 그 일장훈시의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의외로 그것은 무슨 ‘가나안 민족을 상대로 용감히 싸워라.’라든지 ‘정복전만 끝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는 따위의 흔히 짐작할 만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내게 이런 저런 제물을 꼭 바쳐야 한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실 어떤 경우에 어떤 제물을 바쳐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규례는 이미 시내산에서부터 시작해서 중대한 시점에 이를 때나 특별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서 벌써 여러 차례 반복강조하시고 때로는 개정첨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오신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축복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또 한 번 이 주제로 그들에게 훈시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억력이 없으셔서 그러신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오직 ‘여호와께 합당한 예물을 드리는 것’이 곧 그들이 누리게 될 새 생활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대 사안이요 결정적인 요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어떻게 드리는 예물이었습니까?
  이 시간 저는 예나 지금이나 축복의 미래를 소망하고 있는 성도라면 꼭 명심하고 시행해야 할 헌금생활의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헌금은 ‘원래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당연히 바치는 것입니다.

  28장 1절부터 8절에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3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 4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5또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빻아 낸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서 소제로 드릴 것이니 6이는 시내 산에서 정한 상번제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화제며 7또 그 전제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 드릴 것이며 8해 질 때에는 두 번째 어린 양을 드리되 아침에 드린 소제와 전제와 같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3절 이하에 기록된 것은 “상번제” 즉 ‘매일 드리는 제사’의 제물을 열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 상번제의 대표적인 제물은 아침저녁으로 각각 한 번씩, 즉 하루에 두 번 드리는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희생 제물’이었으며,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예표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께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은 은혜를 누리고 있는 신자라면 그런 제사를 매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즉 구원의 확신과 기쁨으로 인하여 자신의 심령 속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그 대속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 곧 신약 시대의 영적 ‘상번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당연히 당신께 바쳐야 할 제물들을 가리켜 하나님께서는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라는 1인칭 소유격이 세 번이나 반복되어 있으며, 특히 제일 첫 번째에서는 그 ‘내’라는 말 외에 다른 아무 수식어도 붙이지 않음으로써 그 의미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쳐야 할 예물은 ‘이스라엘 백성이 소유한 것’ 중에 얼마를 떼어서 ‘하나님께 갖다 드리는 것’이 결코 아니라, 원래 하나님께 속한 것을 당연히 하나님 앞으로 가져와서 바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리켜 “내 음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음식이란 그것을 먹는 당사자에게는 꼭 필요한 것인데, 물론 하나님께서 제물을 잡수셔야 살 수 있는 분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음식’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심으로써 제물이 당신께서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시기 위해 꼭 받으셔야 할 필수적인 것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두고 “내 향기로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제물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것’임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음식의 냄새를 맡게 될 때 만족스럽고 꽃의 냄새를 맡게 될 때 절로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처럼, 하나님 역시 당신의 백성들이 제물을 태워 올리는 그 향기를 지극히 기분 좋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겠습니까?
  이처럼 제물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선하게 사용하시기’ 위하여, 또 ‘스스로 기뻐하시기’ 위하여 구별해 놓으신 것인 줄을 깨닫게 되면, 그처럼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 조금도 어렵지 않고 오직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신자에게 있어서 헌금생활이란 그저 지극히 당연한 의무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헌금생활은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된 그날부터 평생토록 자동적으로 따라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감당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가 곧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세상 사회에서의 ‘기부금’(donation)과는 전혀 의미가 다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세무서에서는 신자가 교회에 헌금한 것을 그런 명목으로 처리하면서 감세의 혜택을 주고 있을지라도 적어도 기독신자 본인은 헌금을 두고 ‘하나님께 기부하는 것’이라고 여겨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즉 원래는 다 ‘내 것’인데 내가 특별히 마음을 써서 그 중에서 얼마를 하나님께 생색내면서 갖다 드리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을 대기업 회장들이 대통령께서 좋은 일에 쓰시라고 청와대에 갖다 바치는 ‘정치적 기부금’과 비슷한 것으로 착각하면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원래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따름입니다.
  아니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정해진 제물’들을 가리켜서 ‘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자체가 우리로서는 정말 황공무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드려야 할 제물뿐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전부 다 오로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어떤 헌금도 참 하기 어려운 일이 수밖에 없지만, 이처럼 소유물 전부가 다 하나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 일부만을 ‘내 것’이라고 구분해 주시면서 당신께 바치라고 명하시는 하나님께 진정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향기로운 제물’을 바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헌금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만큼’ 반드시 바쳐야 합니다.

  28장 9절부터 15절의 말씀에 “9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10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 11초하루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12매 수송아지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삼에 기름 섞은 소제와 숫양 한 마리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13매 어린 양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섞은 소제를 향기로운 번제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며 14그 전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포도주 반 힌이요 숫양 한 마리에 삼분의 일 힌이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이니 이는 일 년 중 매월 초하루의 번제며 15또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는 “안식일”“초하루”라는 절기에 드릴 제물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매주일 한 번씩, 그리고 매달 초에 한 번씩 드리는 정기 제사의 제물들인 것입니다.
  ‘안식일’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기리는 동시에 후에는 가나안 정복을 통해 내려 주신 구원역사를 함께 감사드리는 날로 지킨 대표적인 절기였습니다.
  ‘초하루’는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거룩하게 지켜졌으며 특히 가족 중심의 예배를 드렸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정기 절기를 지킬 때의 예물은 앞에서 나온 상번제의 제물보다는 그 양이 늘어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달라진 제물의 양을 설명하면서 특별히 언급된 것이 바로 10절의 “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는 말씀과 15절의 “또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안식일과 초하루에 드리는 특별예물 중에서 매일 드리는 상번제의 제물이 중복되는 것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중복되는 것이 있다고 해서 한쪽을 생략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라고 분명히 못을 박고 있는 것입니다.
  즉 매일 ‘어린 양’을 ‘상번제’의 제물로 이미 드렸다 하더라도, ‘안식일’이나 ‘초하루’의 특별예물로 또 ‘어린 양’이 지정되어 있으면 그것을 먼저 드린 상번제의 제물로 대신할 수 없고 반드시 따로 한 번 더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비단 안식일과 초하루 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예물을 드리는 다른 특별절기 때에도 똑같이 적용된 규정이었습니다.
  나중에 23절에서 무교절 절기에도 “아침의 번제 곧 상번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며”라고 했고, 칠칠절의 경우에도 31절에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29장에 이어지는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의 경우에도 각각 똑같은 언급 즉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드릴 것이니라”(16절)는 말씀이 어김없이 첨부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특별절기 때 드리는 예물의 양은 상번제의 경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규정이 빠짐없이 첨부되어 있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즉 아무리 다른 특별예물을 많이 드린다 하더라도 그날 상번제로 드리게 되어 있는 예물 또한 결코 생략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제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바치는 헌금이 원래 하나님께 속한 것인 줄을 안다면 얼마만큼 바쳐야 하는지 역시 우리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헌금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대로 조금이라도 빠짐없이 다 바쳐야만 할 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 중에는 헌금의 양을 자기 마음대로 계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으니까 하고 일단 소득에서 십분의 일을 구별해 놓습니다.
  그런 후에 그것을 십일조로 한꺼번에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조금씩 조금씩 떼어 주일헌금이나 감사헌금, 또는 특별헌금을 내는 것입니다.
  즉 한달 동안 그 십일조 액수 한도 내에서만 이리저리 나누어서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양이 결코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신성모독적인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특별헌금을 하는 주일에도 마찬가지로 이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성탄헌금이나 추수감사헌금 같은 특별헌금을 하게 되는 날에 ‘오늘은 이렇게 많은 헌금을 하니까, 주일헌금이나 십일조 같은 것은 한번쯤 넘어가도 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상번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는 명백한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행위입니다.
  ‘지난주 부흥회 기간 중에 매시간 특별감사헌금을 드렸으니까 이번 주일 한 번쯤은 감사헌금을 또 할 필요는 없겠지.’라고 얄팍한 계산을 하는 것 역시 정말이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몰염치하기 짝이 없는 모습일 뿐인 것입니다.
  희생 제물을 수십 마리씩 일주일 동안 매일 드리는 ‘장막절’ 기간 중에도 또한 하루도 빠짐없이 ‘어린 양 두 마리의 상번제’를 반드시 따로 바치라고 명하신 말씀을 따라서, 그 어떤 경우에도 꼭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만큼’의 예물을 온전하게 바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헌금은 ‘하나님의 성일을 지키는 필수적인 순서’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28장 16절 이하 25절에 “16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유월절이며 17또 그 달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이니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18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19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 할 것이며 20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를 드리고 21어린 양 일곱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22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되 23아침의 번제 곧 상번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24너희는 이 순서대로 이레 동안 매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의 음식을 드리되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드릴 것이며 25일곱째 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매년 “첫째 달 열넷째 날”에 지키는 “유월절”과 바로 그 다음 “열다섯째 날”부터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중대한 특별절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절기 기간 중에 대표적인 행사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어린 ’양을 잡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음으로써 출애굽의 구원을 상기하며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런 대표적인 순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으시고 그 대신 무교절 기간 중에 바쳐야 할 제물만을 아주 상세하게 열거하셨습니다.
  물론 큰 절기인 만큼 그 특별제물 역시 질적으로 최상급이면서 동시에 양적으로도 아주 많은 것이었는데, 아까 언급했던 대로 이 역시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꼭 바쳐야 했습니다.

  본문 다음의 26절 이하에서는 “칠칠절” 즉 ‘맥추절’이 나오는데, 역시 그 절기 기간 중에 바쳐야 할 제물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장인 29장에서도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주요 절기들이 이어집니다.
  “일곱째 달”“초하루에 성회로 모이는” 절기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라”(1절)고 한 대로 소위 ‘나팔절’이라고 불리는 절기였습니다.
  아까 ‘유월절’을 지켰던 ‘정월’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력에 따른 것인데, 그 종교적 달력으로 ‘일곱째 달 초하루’되는 날이 당시 ‘사회적 달력’으로는 정월 초하루에 해당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나팔절’은 오늘날 우리의 ‘신년주일’에 해당되는 절기였던 것입니다.
  29장 7절 이하에서는 그 “일곱째 달 열흘 날”에 지킨 ‘대속죄일’이 나오고, 이어지는 12절부터 38절까지 기록된 내용은 이스라엘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되는 ‘장막절’에 관한 것입니다.
  공통적인 사실은 이 모든 특별절기들을 언급할 때 역시 그 절기의 다른 의미나 행사에 대해서는 일절 말씀하지 않으시든지 아니면 지극히 짤막하게 설명하시고 그 대신 그 절기 중에 바쳐야 할 제물들에 대해서만 아주 자세하게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성일과 절기들을 거룩하게 지키는 중대한 순서 중에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곧 ‘특별한 제물을 바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특별절기를 이처럼 제물을 바쳐 지킴으로써 이방인들과는 다른 절기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민족들에게도 물론 절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절기는 ‘음주’와 ‘폭식’과 ‘행음’으로 일관된, 오직 자기네 스스로를 즐기기 위한 축제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처럼 스스로에게 퍼 먹이는 대신 오직 하나님께 구별된 예물을 온전히 바침으로써 그 모든 특별절기들을 실로 거룩하고도 뜻깊게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특별절기를 앞두고 목사가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오겠습니까?
  다음 주일에 지킬 행사나 절기를 두고 그 의미에 대한 설명은 일절 없고 단지 그 날 드릴 특별헌금에 대해서만 광고를 하고 지나가면 아마 많은 교인들은 거부감이나 반감부터 생길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현대교인들은 헌금에 대한 광고는 두말할 것도 없고 헌금을 강조하는 설교조차 강단에서는 가급적 언급하지 말아야 할 무슨 ‘터부’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어떤 성일에 따르는 특별한 의미와 다른 특별순서를 강조하신 때도 있으셨지만, 그와 꼭 마찬가지로 그 성일에 반드시 바쳐야 할 예물도 지극히 중요하게 여기고 계셨던 까닭에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는 대로 장장 두 장에 걸쳐 오직 각 절기마다 바쳐야 할 제물에 대해서만 상세하게 명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헌금은 예배 중에 가장 부담스러운 순서가 결코 아니며 설교나 광고에서 가능하면 꺼내지 말아야 할 껄끄러운 주제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각종 성일과 절기를 지킬 때 그에 따른 특별한 예물을 바치는 것이야말로 그 날을 실로 즐겁고 은혜롭게 지킬 수 있는 요긴하고도 필수적인 순서임을 똑바로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민수기 29장 39절과 40절의 말씀에 기록하기를 “39너희가 이 절기를 당하거든 여호와께 이같이 드릴지니 이는 너희의 서원제나 낙헌제로 드리는 번제, 소제, 전제, 화목제 외에 드릴 것이니라 40모세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니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을 향해 이제 본격적인 첫 걸음을 시작하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이 절기를 당하거든 여호와께 이같이 드릴지니”라는 훈시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예상이나 기대와는 전혀 뜻밖의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합당하고 온전한 제물을 바치면서 성일과 절기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바라고 있던 ‘승리’와 ‘축복’을 반드시 누리게 해 줄 필수요건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2017년의 상반기를 다 보내고 결실의 계절을 앞에 두고 있는 우리 역시 이런 하나님의 훈시를 다시 한 번 새겨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헌금을 ‘내 것’ 중에서 얼마를 떼어 내어 하나님께 바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로 교만한 자세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헌금의 종류가 많은가?’라고 교회를 비방하고 ‘신약시대에도 십일조를 바쳐야 하는가?’라고 목사에게 항의하는 것은 사실상 신성모독죄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헌금의 종류와 액수를 정해 놓으시고 명하시는 분도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예배 시간에 하면 부담스러우니까 예배당 입구에 헌금함을 두고 들어오면서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든지 ‘절기 때 특별헌금을 꼭 해야 하나?’라고 불만을 품는 것 역시 하나님 앞에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 앞에 나아오는 예배자들로부터 예물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며, 그런 까닭에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라면 헌금생활 또한 신자가 누리는 은혜임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 ‘교회를 중심으로 함께 지어져 가면서’ 이제 ‘희년맞이 5대 목표 완수’를 향해 더욱 힘찬 도약을 내딛고자 하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너희가 이같이 여호와께 드릴지니’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 꼭 바쳐야 할 ‘하나님의 것’이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 마음대로가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대로’ 빠짐없이 바치며, 또한 이처럼 온전한 헌금생활이 우리가 지키는 모든 주일과 절기를 실로 뜻깊고 은혜롭게 만드는 귀한 순서임을 명심함으로써, 다가오는 가을의 새 계절을 통해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가나안 복지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