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교회] 주일낮예배 2017-08-06 “그날 밤에, 그 날에” 에스더 6장 1-10절, 8장 7-14절 / 석기현 담임목사

More videos
186
Views
   

WMA음성받기MP3음성받기동영상다운받기동영상다운방법
주일낮예배 2017-08-06
2017′경향의 강단(34) (2017년 8월 6일 / 주일 대예배)
“그날 밤에, 그 날에” 에스더 6장 1-10절, 8장 7-14절 / 석기현 담임목사

(186)

"그날 밤에, 그 날에"

에스더 6장 1-10절, 8장 7-14절 / 석기현 담임목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있는데, 직역하면 ‘변방 노인의 말’이라는 뜻입니다.
  중국의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노인이 기르던 말이 도망을 쳐 버렸을 때 이웃사람들이 그 일을 두고 위로하자 그는 “이게 복이 될지 어떻게 알겠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도망갔던 말이 다른 야생마들을 여러 마리 이끌고 돌아왔습니다.
  이웃사람들이 이번에는 너도나도 축하를 해 주었는데, 노인은 “이것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하면서 덤덤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노인의 아들이 그 야생마 중의 하나를 타고 다니다가 그만 낙마해서 다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역시 이웃사람들은 크게 안타까워했지만 그 노인은 또다시 “이게 복이 될지 어떻게 알겠소?”라고 역시 가볍게 넘겨버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랑캐들이 쳐들어와서 많은 남자들이 전사하고 말았지만 노인의 아들은 그 불구 때문에 징집되지 않고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인생에 있어서 화와 복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의미로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쓰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화가 복으로 바뀌기도 하고 복이 화로 바뀌기도 했던’ ‘변방의 노인’과는 달리 언제나 ‘화(禍)가 복(福)으로 바뀌는’ 일만 벌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가운데 사는 성도로서, 본문에 나오는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시간 저는 주신 말씀을 통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도가 당한 ‘화’를 ‘복’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하여 개인의 인생과 역사의 흐름 가운데 과연 얼마나 오묘하게 역사하시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선행에 따르는 결과가 없어 보일 때에도 결국에는 훨씬 더 큰 상급을 받도록 섭리해 주십니다.

  에스더 6장 1절부터 10절에 “1그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2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3왕이 이르되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4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5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6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7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8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9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 10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일은 앞서 에스더 2장에 기록된 내용과 연결됩니다.
  거기서 바사 제국의 왕 아하수에로는 폐위된 와스디를 대신할 새 왕비를 뽑게 되는데, 물론 그것은 엄청나게 경쟁률이 높은 선발 과정이었지만 결국 에스더가 극적으로 왕후의 자리를 얻게 됩니다.
  그 후 2장 19절에 보면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고 했습니다.
  당시 바사의 모든 왕들이 다 그랬듯이 아하수에로 역시 에스더 한 사람만 왕비로 둔 것이 아니라 그 외에도 여러 왕비들과 많은 첩들과 후궁들까지 거느렸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새 아내를 뽑기 위해서 이전에 했던 대로 또다시 처녀들을 왕궁으로 소집한 것입니다.

  그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다’는 것은 그저 우연히 거기에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관직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아마 에스더가 왕후가 된 후에 자기를 어릴 때부터 돌봐주었던 사촌오빠 모르드개로 하여금 그리 높지는 않지만 공무원직 하나를 얻도록 주선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왕궁에 기거하게 된 에스더는 그렇게 함으로써 유일한 친척인 모르드개와 가끔 연락이라도 하면서 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대궐 문에서 근무하고 있던 모르드개는 그 문을 지키는 책임을 맡고 있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고 모의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즉시 에스더에게 알렸고, 에스더는 그 사실을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결과 모반의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게 되자 그 두 내시들은 나무에 달려 처형을 당했던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왕의 목숨을 살리는 엄청난 공을 세웠으니 정상적으로 일이 진행되었더라면 모르드개는 당연히 큰 상을 받을 뿐 아니라 이 일을 계기로 출세가도를 달려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연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당연한 논공행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단지 그 반역자를 발견하게 된 때부터의 모든 전말이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되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모르드개로서는 어떤 상을 바라고 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누가 보아도 납득할 수 없는 결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앞서 읽었던 에스더 6장 1절의 “그날 밤에”란 그런 일이 있은 후 무려 5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바로 앞의 5장에 보면 이 밤은 에스더가 하만의 책략에 의해 몰살당하게 된 유다인의 목숨을 위해 탄원하려고 아하수에로 왕을 자기 궁에 초청했던 바로 그 날 밤이었습니다.
  그 잔치 자리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5장 6절)고 말했지만, 에스더는 이 대사를 꼭 성공시키기 위해 일부러 왕의 애가 닳도록 하려고 “내일 밤에 다시 한 번만 더 오시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했습니다.
  그처럼 에스더가 지연작전을 써서 하루를 늦춘 것이 사실은 기가 막히는 ‘하나님의 타이밍’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하여금 “잠이 오지 아니하게” 만드시면서 전후사건의 인과관계가 절묘하게 맞물리도록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밤잠을 설치게 된 아하수에로 왕은 시종으로 하여금 “역대 일기” 즉 ‘왕조실록’을 자기 침상 곁에서 읽도록 했는데, 물론 그 의도는 순전히 잠이 잘 들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대 일기에서 “두 내시”가 자기를 “암살”하려 했다는 기록이 나오자 아하수에로 왕은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모르드개”라는 충신 덕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르드개에게 그 어떤 포상도 시행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마자, 아하수에로 왕은 당장 “게 누가 없느냐?” 하고 신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시각에 하만이 자기가 세워 놓은 나무에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왕에게 허가를 구하기 위해 막 왕궁 바깥뜰에 들어선 참이었습니다.
  결국 모르드개를 죽일 허가를 받으러 갔던 하만은 바로 그 자리에서 오히려 모르드개를 위해 최고의 영광스러운 퍼레이드를 벌이라는 특명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그는 모르드개를 모시고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고 외치면서 하루 종일 성중을 돌아다녀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10절에 나오는 대로 아하수에로 왕은 그 모르드개가 “유다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바로 그날 밤에 알게 되었고 자연히 유다인에 대한 호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 다음날 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자기 민족 유다인을 살려 달라고 탄원했을 때 그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지는 다시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하나님의 타이밍은 얼마나 정확합니까?
  모르드개의 공훈이 5년 동안이 묻혀 있던 것, 에스더가 왕에게 소청하는 것을 하루 더 늦춘 것, 왕이 그날 밤에 잠이 오지 않은 것,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왕의 허락을 받으러 한밤중에 찾아온 것 –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결국 완벽한 인과관계로 맞물리도록 실로 절묘하기 짝이 없게 섭리하셨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모르드개는 자신의 선행에 대해 당장은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비롯하여 본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민족의 생명까지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온 우주 속에 작용하고 있는 각종 물리적 법칙,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역사의 흥망성쇠가 하나라도 무슨 ‘불확정성’이나 ‘우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따라 정확하게 이행되고 있을 뿐입니다.
  각 개인이 통과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희로애락 역시 무슨 ‘운수’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예측할 길이 없어 보이는 인생의 희비쌍곡선 하나하나 역시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정된 그대로, 하나님의 계획에 맞춘 시간표 그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공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다 합력하여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을 이루도록’ 바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전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어떤 선한 일에 대하여 지금 당장 무슨 좋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원망해서는 결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그처럼 당연히 받게 되리라고 기대했던 보상이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지지 않는 것까지도 사실상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속에서는 오히려 훨씬 더 큰 상급, 지금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복을 위하여 잠시 보류되고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완벽하고도 오묘한 섭리를 믿는 성도는 그야말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만 않으면 때가 이를 때에 반드시 거두게’ 되어 있으며 ‘식물을 물 위에 던지면 여러 날 후에 반드시 찾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노력은 조금밖에 안 해 놓고서 당장 엄청난 복이 굴러올 것만 기다리는 것은 실로 유치한 기복종교에 불과합니다.
  비록 우리의 선행에 아직까지는 ‘큰 비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우리의 기도에 대해 아직까지는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조차 보이지 않는다 해도 결코 조급해 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고 기다림으로써 이미 정해져 있는 ‘그날 밤’의 때가 차게 될 때 ‘훨씬 더 좋은 것’을 꼭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원수에 의해 최악의 궁지에 몰리게 되어도 오히려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두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에스더 8장 7절 이하 14절에 기록하기를 “7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8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9그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백이십칠 지방 유다인과 대신과 지방관과 관원에게 전할새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쓰되 10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그들은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11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12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13이 조서 초본을 각 지방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들에게 준비하였다가 그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14왕의 어명이 매우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고 했습니다.

  앞서 7장에서 드디어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자기와 자기 민족이 당한 처지를 알리면서 구원을 요청했고, 그것은 그 전날 밤부터 이미 일이 꼬이기 시작하고 있던 하만에게 결정적인 최후의 일격이 되었습니다.
  하만이 자기 목숨을 살려 준 충신 모르드개와 자기의 사랑하는 왕후 에스더를 죽이기 위해 유다인 살해 음모를 꾸민 것을 알고 노발대발한 아하수에로 왕은 당장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했던 장대에 오히려 하만을 매달아 죽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8장 2절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사제국 안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었던 하만의 지위가 모르드개에게 이전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진척되었으면 이제는 아무 남아 있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3절에 보면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의 발아래 엎드려서” 또 다시 탄원을 했는데, 그 내용은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앞서 에스더 3장 7절부터 15절에 기록된 사실과 연결되는 일이었습니다.
  모르드개에 대해 앙심을 품은 하만은 모드르개 한 사람만 죽이는 것으로서는 성이 차지 않아서 아예 바사제국 산하의 유다인 전체를 몽땅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어떤 민족이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고 자기네 고유의 법률을 지키고 있으니 그들을 진멸하는 조서를 내리시는 것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라고 부추겼습니다.
  하만은 그것을 왕이 허락해 주면 그 대가로 “은 일만 달란트”“왕의 금고”에 넣어 주겠다고 뇌물까지 썼고, 그 말에 넘어간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의 진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바사제국에서는 옥쇄나 다름없는 자신의 “반지”를 그에게 줌으로써 그 조서 제정에 관한 전권을 하만에게 위임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 해 말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3장 13절)는 조서가 각 지방에 이미 배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그 조서는 순전히 하만이 유다인을 죽이기 위하여 왕을 속이고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문제는 바사 제국에서 일단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그 후에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취소될 수 없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즉 하만은 죽었지만 유다인을 12월 13일에 다 죽이라는 법령 자체는 여전히 효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 자신조차 그 법을 다시 “철회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하만의 악한 꾀” 때문에 에스더가 다시 탄원을 했던 것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하수에로 왕은 본문 8절에 나오는 대로 이제 모르드개에게 전권을 주어서 그 ‘하만의 조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조서’를 만들어서 “왕의 반지로 인을 치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르드개는 새로운 조서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그 하만의 조서가 발동되는 십이월 십삼일 당일에 “(모든)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는” 권한을 부여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인들에게 그들의 원수들로부터 자기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집회결사의 자유’와 ‘정당방위권’을 부여해 주는 법령이었습니다.
  즉 바사제국의 관례를 깨뜨리지도 않고 아하수에로 왕의 권위를 손상시키지도 않으면서도, 이미 먼저 선포된 ‘하만의 조서’를 무력화시키고 유다인을 구원해 낼 수 있는, 실로 절묘한 방법을 모르드개가 생각해 낸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새 조서에 아하수에로 왕의 어인이 찍히고 그 법령이 효력을 발휘하게 됨으로써, 유다인들에게는 실로 전화위복의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즉 유다인들은 이 기회에 평소 자기네 민족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던 원수들을 오히려 제거해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바사 제국의 각 지역에는, 오늘날 사회에서의 인종차별주의자들처럼 유다인들에 대하여 악감정을 품고 박해하던 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며, 이들은 ‘하만의 조서’가 반포되자 얼씨구 좋다 하면서 그날만 오기를 벼르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새 법령으로 인하여 바로 “그 날에” 즉 원래는 대적에 의해 꼼짝없이 죽게 되어 있던 그 ‘십이월 십삼일’에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 즉 ‘유다인의 원수들’을 아예 합법적으로 완전소탕해 버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다인을 ‘독 안에 든 쥐’처럼 몰아넣었던 ‘하만의 조서’, 게다가 그런 ‘바사의 법령’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철회할 수 없게 되어 있던 그 최악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새 조서를 만들어야만 했고, 바로 그 새 법령 때문에 유다인은 그저 자기네 목숨만 구하게 된 정도가 아니라 이참에 평소에 유다인을 위협하던 세력을 깨끗이 제거함으로써 미래의 안전보장까지 받게 된 것은 실로 신묘불측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참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역사는 이처럼 멋있고도 통쾌하게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간사한 꾀, 악인의 교묘한 함정, 악인이 철두철미하게 완성해 놓은 ‘취소될 수 없는 법’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절묘하게 역이용하셔서 오히려 그들 자신의 목에 걸리는 올무가 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성도를 쳐 죽이려고 풀스윙으로 휘두르는 배트를 그냥 허공만 가르는 헛스윙이 되게 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작용 반작용 법칙’에 따라 오히려 그 악인에게 치명타로 되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든든한 하나님의 도우심이며 이 얼마나 완벽한 복수이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은 우리 기독신자에게 있어서는 결코 막연한 희망사항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문자 그대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는”(고후 4:8) ‘전설의 불사조’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같은 막다른 코너에 몰려 원수들은 이미 ‘게임오버’라고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마치 ‘초능력을 발휘하는 슈퍼맨’처럼 기적의 대역전승을 거두고야 마는 것입니다.

  우리를 핍박하는 원수가 지금 기고만장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성도와 교회를 둘러싸고 조여드는 물샐틈없는 포위망에 꼼짝없이 걸렸다 싶습니까?
  절대로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저 위에 계시면서 이 모든 과정을 순전히 당신께서 짜 놓은 시나리오대로 착착 진행해 나가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악인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고 자기가 파 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져 죽게 만드시는’ 통쾌한 역전의 순간, ‘바로 그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같이 여겨질 때에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원수들을 완전히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게’ 될 ‘유다인의 부림일’을 이미 다 예비해 놓고 계심을 확신함으로써, 끝내 ‘선으로 악을 이기고야 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새옹지마’는 사실상 ‘복불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화가 복이 될지 복이 화가 될지’ 사람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으며 또한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까 ‘변방의 노인’이 그랬듯이 사람은 자기에게 벌어진 현실을 그대로 무력하게 받아들이면서 그저 ‘덤덤한 척’ 할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 섭리하시고 역사해 주시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은 결코 ‘복불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기정사실’이며 따라서 성도에게도 ‘필연’이 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오묘하게 섭리하시며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절대주권자’이신 동시에 ‘당신의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당신만 아시는 가장 적절한 때에 꼭 베풀어 주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이런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을 확실히 믿고 끝까지 의지하는 것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이 하나님만 믿고 기다리면 지금 당장은 자신의 선행에 따르는 결과가 없어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훨씬 더 큰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맞추어 놓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고 살면 혹 악인의 핍박으로 인해 최악의 궁지에 몰리게 된다 해도 오히려 마지막 순간에 기적적인 역전승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과관계를 절묘하게 이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날 밤’뿐 아니라 ‘5년 전’부터 이미 모든 시간표를 다 작정해 놓으시고 ‘그 날’만 아니라 ‘유다인들이 대대로 즐기며 기뻐할 부림일’이 되게 하시려고 오늘도 당신의 모든 전지와 전능을 다 동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절대주권의 섭리와 역사를 꼭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