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7-07-16 “그리스도의 강림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7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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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17-07-16
2017′경향의 강단(31) (2017년 7월 16일 / 주일 대예배)
“그리스도의 강림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7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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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강림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7절 / 석기현 담임목사
유명한 연예프로 ‘무한도전’의 인기에 편승하여 ‘여자 무한도전’이 나와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모 여자 연예인이 어떤 토크쇼에 나와서 사실은 자기가 그 프로의 원년 멤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녀는 제작자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고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했는데, 하필이면 그 첫 촬영하는 날이 자기가 패널 멤버로 출연하고 있는 다른 연예프로와 겹치는 날이어서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그녀는 결국 ‘여자 무도’ 쪽을 포기했는데, 이유는 그 프로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또 만약 잘못되면 그나마 있는 ‘밥줄’마저 끊어질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처럼 ‘흔들리고 불안한 마음’ 때문에 인기 연예프로의 ‘고정 멤버’가 될 수 있는 호기를 제 발로 차버린 격이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바로 사도 바울이 1절과 2절에서 “1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에 대해 1장에 이어 계속 언급하는 가운데 그와 동시에 벌어질 한 중대한 일을 두고 “우리가 그 앞에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는 그 주님을 믿고 기다리던 모든 신자들이 다 그분 앞에 함께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주적 교회’에 속한 참된 성도들이 드디어 천국 공동체의 ‘고정 멤버’가 되는 그 자리야말로 우리에게는 ‘신앙생활의 결승점’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상교회에 속한 교인들 중에는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흔들리거나”란 배가 바람이나 물결에 흔들리는 것을 뜻하며, “두려워하거나”란 안정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계속 불안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안에는 교인들로 하여금 그처럼 “마음”이 ‘신앙의 중심’을 잃고 흔들리면서 ‘구원의 확신’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끝내 영적 파선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영으로” 즉 어떤 ‘특별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말로나” 즉 입으로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하고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 즉 ‘사도가 보낸 것이라고 사칭하는 가짜 편지’까지 돌리면서,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즉 ‘예수님은 이미 재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거기에 넘어가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고 두려워하게’ 되면 결국 ‘재림하신 예수님 앞에 모이는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도중탈락자’가 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 저는 주신 말씀을 통해 성도가 과연 어떻게 해야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끝내 그 ‘재림주 앞에 모이는’ 영광스러운 ‘천국 멤버’가 될 수 있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예수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세어질 ‘이단의 미혹’에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3절부터 12절에 기록하기를 “3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5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7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8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거짓말에 대해 사도 바울은 “(어떤 일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라고 천명했습니다.
  즉 진짜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반드시 그보다 먼저 나타날 징조가 있다는 말인데, 그것이 곧 “먼저 배교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교’란 원래 정치적 배신자나 군사적 배반자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여기서는 물론 ‘신앙적 배신’을 뜻합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 재림 직전에 ‘대환난’이 있을 것이며 그 때문에 신앙을 저버리는 교인들도 많이 생길 것을 가리킵니다.

  그 ‘대환난’은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역사에 등장함으로써 초래될 것인데, 이하의 본문에서 “대적하는 자”, “악한 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용어와 내용은 다니엘 7장, 8장, 11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이 “불법한 자”란 곧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우선 “대적하는 자”라는 이름 자체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라는 뜻이며, 그가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즉 자신을 ‘신들 중에 최고의 신’이라고 스스로 높인다고 한 것만 보아도 명백한 것입니다.

  그 ‘적그리스도’가 저지를 최악의 행위는 곧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가리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서지 못할 곳”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본문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특히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말의 헬라어는 ‘남성형(男性形)의 동명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어떤 ‘물체’가 아니라 ‘사람’인 것을 강력하게 시사해 줍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는 기독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대신에 자신에게 ‘예배’할 것을 강요할 자로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어떤 세력을 등에 업고 활동하든지 간에 하여튼 본질적으로는 ‘이단’인 것입니다.

  6절과 7절은 정확하게 해석하기가 좀 까다로운 난해구절입니다.
  우선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란 그 ‘적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에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라는 의미이며,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니”란 그 ‘적그리스도의 불법적 활동이 은밀하게 이미 시작되고 있지만’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대환난’ 때에 본격적으로, 공개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하실 것인데, 그때가 오기까지는 그 ‘불법의 사람’을 “막는 것” 혹은 “막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적그리스도’의 활동을 저지하고 있는 ‘막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로마제국의 법치’, ‘교회’, ‘성령’ 등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치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속사를 통해 이미 예정해 놓으신 때가 차기까지는 ‘적그리스도’의 활동까지 전적으로 통제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셔서 ‘마지막 대환난’을 일으키도록 주권적으로 역사하시겠지만, 그것도 잠깐뿐이며 결국 “주 예수께서” 그를 “죽이시고... 폐하시는”(kill and destroy) 날이 오게 됩니다.
  ‘불법한 자’가 “사탄의 활동을 따라” 행하는 최후발악은 아주 대단하고 강력해 보이지만 약속대로 “강림하여 나타나실” 재림주 예수님께서 그저 “그 입의 기운”으로, 즉 ‘훅’ 하고 한 번만 불어버리시면 간단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단 ‘적그리스도’뿐 아니라 바로 그의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에 넘어간 자들 역시 “멸망하는 자”로 전락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내 주신 “진리의 사랑”을 저버리고 그 대신 “미혹의 역사”에 홀려 “거짓 것을 믿으며” 그 결과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의 무리에 속하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즉 이단에 넘어간 ‘배교자’들은 애당초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불신자’들과 똑같이 “심판을 받게” 되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마 25:41)에 함께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의 토크쇼 같은 데에 보면 연예인들 중에서 사업이나 주식에 투자했다가 망한 사람들이 흔히 나옵니다.
  물론 다 지난 일이니까 이제는 그냥 우스개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실상 그 얼마나 안타깝고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식으로 소위 ‘몇 빵’을 날렸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들 ‘팔랑귀’의 소유자라는 사실입니다.
  즉 누군가가 곁에서 ‘저 회사에 투자하기만 하면 금세 대박이 터질 거야.’라고 귀띔만 해 주면 당장 솔깃해져서 그 주식을 샀다가 대박은커녕 그 동안 어렵게 모아놓았던 돈을 홀랑 날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단의 미혹에 쉽게 넘어가는 교인이야말로 진짜 ‘영적 팔랑귀’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성경공부 새로 해 봅시다.’라고 하면서 기성교인들에게 접근해 오는 이단의 교리란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면 유치하고도 저질적인 ‘불의의 속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지상교회의 교인들이 그 꼬임에 걸려드는 바람에 지금까지 그토록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오고도 결국에는 ‘구원함을 받지 못하는’ 탈락자로 전락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 사회에서도 사기꾼은 자기에게 사기 당한 사람에게 절대로 변상해 주지 않습니다.
  법 역시 사기꾼을 감옥에 넣을 수는 있지만, 피해자에게 국가의 돈으로 보상해 주지는 않는 것입니다.
  결국 ‘속는 놈이 바보’인 것입니다.
  이단에게 속은 사람도 똑같습니다.
  나중에 아무리 원망해 보았자 그 이단 역시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뿐이며, 이단에게 속아 배교자가 된 사람 역시 그 이전까지 아무리 충성스럽게 예배생활, 봉사생활, 헌금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 따위는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 직전에 있을 ‘대환난’은 결코 정치적 혹은 경제적 환난이 아니라 바로 신앙적 대환난입니다.
  그것은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고’ 있는 현재의 이단과는 비교도 안 될, 온갖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이 동원된 아주 강력한 ‘사탄의 활동’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면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대신 자기에게 예배할 것을 강요하면서 신자와 교회를 핍박해 올 것입니다.
  그 무서운 마지막 대환난을 이겨내려면 지금 아직은 하나님께서 그 ‘불법의 사람’을 ‘막아’ 주고 계실 때에 이단이 ‘불법의 비밀’로써 우리를 속이려 하는 것 정도는 간단히 물리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그 미혹에 넘어가면 아무리 지금은 기독신자라 해도 끝내는 ‘멸망하는 자’들과 같이 심판을 당하게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는 이 엄중한 경고를 자신의 심령에 깊이 새기는 가운데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집요하면서도 강력해질 이단의 온갖 속임수를 넉넉히 물리침으로써 결코 ‘배교자의 무리’에 끌려가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선지자와 사도로부터 전해진 ‘전통적 신앙’을 중심으로 끝까지 굳건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13절 이하 17절의 말씀에 “13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6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록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단의 미혹’에 대해 경고해 준 사도 바울은 이제 그처럼 흔들리고 두려움에 빠져 있는 마음을 굳게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선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을 두고서 다시 한 번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 받을 자로 예정해 주신 사실이었습니다.
  그 구원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주권적으로 ‘택자를 예정’해 주신 사실만이 죄인이 구원을 받게 되는 동기요 이유가 됨을 가리키는데, 바로 앞의 문단에서 ‘구원함을 받지 못하도록’ 유기(遺棄)된 자들과 극단적으로 대조됩니다.

  그처럼 택함 받은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과정은 13절 하반절에 나오는 대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택자가 오직 성령의 강권적인 감화감동을 통하여 ‘성경의 진리’를 믿고 그 복음에 대하여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구원 얻게 되는 것을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즉 구원의 전 과정이 전적으로 삼위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방법을 두고서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좀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조금 전까지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성령께서 예수님의 복음을 믿게 만들어 주심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해 놓고 여기서는 감히 ‘우리의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물론 이 말은 바울이 ‘우리가 만들어 낸 복음’이라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우리가 전한 복음’이라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
  즉 택자 구원의 전 과정을 전적으로 주장하고 계시는 분은 분명히 하나님 한 분이시지만, 그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이 전파하는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 그 사역을 구체적으로 완성해 나가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원로목사님께서 ‘하나님의 구속사는 교회를 중심으로 선포되는 케리그마 운동을 통해 진행되어 간다.’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통해 ‘부르심’을 받은 택자는 결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 말씀은, 적어도 이 문맥에서는, 신자가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신자가 원래 예수 그리스도께만 속해 있던 영광을 자기도 입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모든 신자들이 예수님과 똑같이 영광스러운 존재로 변화하게 되는 것, 곧 성화의 완성 단계인 영화(榮化)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처럼 영광스러운 구원의 반열에 꼭 함께 서기 위해서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곧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굳게 서라’(stand firm)는 말은 앞서 나왔던 ‘흔들리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말로나”란 앞의 5절에서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라고 바울이 언급한 것처럼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이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직접 들은 것을 가리키며,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것이란 이 데살로니가후서처럼 나중에 신약성경이 된 ‘사도들의 서신’을 통해 배운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단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고 신앙생활을 굳건히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곧 ‘사도들이 가르쳐 준 전통적 신앙을 지키는’ 데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전통’이라고 번역된 말의 헬라어는 ‘파라도시스’인데,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관습이나 계율’을 가리킵니다.
  “가르침을 받은”이라는 말에서 ‘받다’라는 단어가 영어로 ‘hand over’ 즉 ‘변하지 않고 계속 전달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이 ‘전통’이란 단어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마 15:3)라고 책망하셨던 그 ‘장로들의 전통’에 사용된 것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고 했으니 곧 ‘사도들의 설교나 서신’을 두고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전통’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전통’이란 오늘날의 성도에게는 곧 ‘선지자와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 말씀’이 됩니다.

  왜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에 불과한 선지자와 사도들이 쓴 글이 우리가 영화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꼭 지켜야 할 절대적인 전통이 되는 것이겠습니까?
  왜냐하면 이 전통의 원래 출처가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비록 복음이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 전달되기는 했지만, 그 복음을 통해 택자 구원이 완성되는 전 과정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과 섭리와 역사를 통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교인들이나 자유주의 목사와 신학자들은 ‘전통’이라는 말 자체에 아예 거부감을 가지고 달려듭니다.
  ‘전통적 신앙’을 지키는 기독신자를 가리켜 ‘보수’라는 정식 명칭 대신에 ‘수구’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즉 신앙의 전통, 교회의 전통, 복음의 전통 - 이런 것들은 다 고리타분한 것이며 크게 오도되고 있는 것들이니 모조리 뜯어고쳐야 한다고 매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지자와 사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전한 참된 복음은 마땅히 교회가 대대로 가르쳐야 할 ‘부동의 전통’이며 구원의 완성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굳게 지켜야 할 ‘유일한 진리’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결코 시대와 사조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정통 신앙’은 초대교회 때부터 현대까지 부단히 ‘전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진보주의’라는 미명으로 치장을 해서 내놓는 ‘새로운 복음’이라는 것이야말로 여지없는 이단입니다.
  ‘새 계명’은 이미 예수님께서 스스로 완성해 놓으셨다고 선포하지 않으셨습니까?
  즉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 지금까지 전달되고 있는 ‘전통적 신앙’이야말로 진정 ‘새 복음’이며 ‘조금이라도 더하거나 덜할 것이 없는 영원한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 개혁주의 기독신자들이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라고 고백하는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자를 구원하시는 방법으로서 기뻐하시는 ‘전도의 미련한 것’, 성령께서 감화감동하시며 보증해 주시는 ‘참된 복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시고 선포해 주시는 ‘구원의 유일한 길’이 바로 오늘날까지도 바른 목사를 통해 강단에서 선포되고 있는 ‘전통적 신앙’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온갖 시험과 핍박 중에 지금까지도 여전히 ‘말로나 편지로 가르침을 받게 해 주는 선지자와 사도의 전통적 성경중심의 신앙’을 지킴으로써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 가운데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서서’ 끝내 ‘그리스도의 영광’에 꼭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요즘 ‘보이스 피싱’에 속아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로 ‘팔랑귀’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따르면 사기꾼이 은행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든지, 혹은 너무 많이 낸 공과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그냥 홀랑 넘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금융기관이나 국가기관에서 반드시 지키는 ‘정식 절차’만 제대로 알아도 그런 속임수에 결코 걸려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단의 미혹’ 역시 ‘전통적 신앙’만 똑바로 알고 있으면 아주 간단히 물리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의 강림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저와 여러분이 꼭 명심해야 할 사실이 바로 이것입니다.
  대학교 합격자들만 모이게 되는 신입생들의 입학식이나 서류 심사와 필기시험과 면접까지 통과한 후에 드디어 정식 사원이 된 최종합격자들만 모이는 자리란 거기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에게는 그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럽겠습니까?
  반면에 아슬아슬하게 탈락한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부러운 자리가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재림주 예수님 앞에서의 모임’, 그야말로 완벽한 ‘의인의 회중’이란 상상만 해도 그 얼마나 멋있고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이겠습니까?
  반면에 신앙생활에서 도중 탈락한 ‘배교자’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밖에 없는’ 순간이 될 뿐인 것입니다.

  종말이 다가올수록 마귀는 자기 때가 다 된 줄을 아는 까닭에 더욱 발악을 하며 ‘할 수만 있다면 택자까지도 미혹하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만약 그 ‘이단의 미혹’에 넘어가서 구원을 놓치게 되면 평생을 교회에 출석했다 해도 그 때문에 오히려 더 억울한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이 ‘경향공동체의 회중’에 앉아 있는 교인들 중에도 그런 안타까운 탈락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내게 벌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오직 성경 말씀이 가르치는 그대로 ‘전통적 신앙’만 굳게 믿고 따르면 반드시 그 ‘결승 테이프’를 함께 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이 가까워질수록 신자로 하여금 ‘구원함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온갖 이단 사설로써 미혹해 오는 ‘불법의 비밀’에 속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하여 선지자와 사도를 거쳐 오늘날까지 참된 교회와 바른 목사를 통해 ‘가르침을 받고 있는 전통’을 지킴으로써 ‘그 주님 앞에 모이는 자리’에 꼭 영광스럽게 함께 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