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7-06-25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 신명기 21장 1-9절, 23장 15-16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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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주) 주일낮예배
1부 오전 7:00 / 2부 오전 9:00 / 3부 오전 11:00
2017′경향의 강단(28) (2017년 6월 25일 / 주일 대예배)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 신명기 21장 1-9절, 23장 15-16절 /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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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

신명기 21장 1-9절, 23장 15-16절 / 석기현 담임목사
우리나라의 헌법 제3조에 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附屬島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북한 역시 대한민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나라 정부에는 ‘이북5도의 각 도지사’가 존재합니다.
  이것은 ‘대한민국’만을 한반도에 현존하는 유일한 합법적 국가임을 간접적으로 선언하는 것으로서, 자연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합법적인 국가가 아니며 오직 대한민국의 영토를 불법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로 규정되는데, 대법원에서도 이렇게 해석한 판례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영토에 관한 이 헌법조항은 자연히 북한 주민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즉 북한도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포함되니까 거기서 태어난 사람은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헌법 제3조가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까닭에 법적으로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물론 앞으로 ‘헌법 개정’에 종북좌파 정치인의 입김이 닿는다면 어떻게 바뀌어 버릴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법치국가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수호하며 지키고 있는 현행 대한민국 헌법에 따른다면 ‘북한도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북한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견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록 현실은 북한의 공산독재정권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기본권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지만 분명히 혈통적으로 같은 ‘한민족’일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인 저 북한의 동포를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오늘 이 한반도와 한민족을 반세기가 넘도록 갈라놓아버린 ‘6.25 전쟁’ 67주년 되는 주일을 맞이하여, 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말씀을 통해 이 ‘나누어진 우리의 골육지친’에 대해 우리가 과연 어떤 마음과 자세를 지켜야 마땅한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는 ‘모든 인권을 박탈당하고 고통 중에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해 같은 동포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21장 1절부터 9절의 말씀에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2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3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4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5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6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7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8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9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회에서는 살인 사건이 흔히 발생하는데, 개중에는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하고 ‘미결’로 넘어가 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건들을 계속 수사를 해 간다면 한이 없을 테니까, 경찰에서는 공소시효 기간이라는 것을 정해 놓고 그 안에 해결되지 못하면 그냥 수사종결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살인 사건은 일어났었고 또한 끝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는 때도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살게 된 후에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이라고 한 것이 바로 그런 경우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규례를 뜻합니다.

  동네 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라면 웬만해서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증인이 없어도 무슨 정황 증거나 심증 등을 통해서 추리도 하고 수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적이 끊어진 들에서, 더구나 어느 동네 사람인지도 알 수 없는 낯선 사람이 죽임을 당했을 때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아무런 과학적 수사 방법이 전무했던 당시에 그 범인을 찾기란 참으로 요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생각해도 그런 경우에는 그저 자연히 ‘미제 사건’으로 넘어갈 도리밖에 달리 아무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는 것처럼만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경우를 위한 특별규례를 하나 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2절 이하에 나오듯이, 그런 경우에는 일단 그 살인 사건이 발견된 지점에서 거리상 “제일 가까운 성읍”이 어디인지를 “재어” 보게 했습니다.
  그런 후에 그 해당 성읍의 “장로”들과 “레위 자손 제사장”들이 “암송아지” 한 마리를 취해서 그것을 가지고 일종의 ‘속죄의식’을 행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9절에서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대로, 그 살인 범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어떤 개인을 용의자로 지목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부터 거리가 제일 가까운 성읍에 범죄자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을 하고 그런 율례를 주신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즉 비록 누가 저질렀는지 모르고 또 자기 동네 사람이 그랬을 가망성도 희박한 것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범죄가 일어난 곳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의 주민이 그 일어난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에 대해 같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책임이 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내가 직접 당한 일이 아니니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라든지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닌데 왜 내가 신경을 써야 하나?’라는 자세로만 일관한다면, 그런 사람들만 모인 동네나 그런 마음이 일반화된 나라는 결국 점점 더 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언젠가는 그 악영향이 본인에게도 돌아오고야 말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기독신자는 물론 ‘개인구원의 확신’이 가장 중요하며 그 다음 단계는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 중심의 생활’이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가 살고 있는 이웃과 사회 및 국가 전체에서 ‘악을 제하고 선을 확장시켜 나가야 할 사명’ 역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에게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생존권을 위시하여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언론 출판 표현의 자유’를 비롯하여 ‘종교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 그 어떤 종류의 자유도 전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 북한 사회 전체는 오로지 ‘서로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체제’로 조직되어 있으며, 심지어 자식이 자기 부모를 고발하는 일까지 흔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닌 현실입니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으로 볼 수 있는 평양직할시는 그야말로 ‘북한의 금수저’들만 거주할 수 있으며, 국가행사를 할 때 길거리 좌우편에 서서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는 군중들 역시 바로 그 ‘0.1퍼센트에 해당되는 북한의 기득권층’일 뿐입니다.

  반면에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은 밤에 찍은 위성사진에 뻔히 드러나듯이 전깃불조차 제대로 없어서 ‘물리적으로도 깜깜한 동네’이며 외국에서 온 여행객이나 기자가 절대로 방문할 수 없어서 ‘정치적으로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암흑’에 묻혀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식량배급은 적을 때에는 일일 3백 그램이고 아주 많을 때에라야 4백 그램 정도인데, 유엔의 권장량인 6백 그램에는 턱도 없이 모자라는 수준입니다.
  그나마 공식적인 발표가 그 정도이니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못했으면 못했지 조금이라도 나을 리가 만무합니다.

  게다가 이런 북한의 현실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평하거나 비판을 가하면 영락없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기 마련입니다.
  특히 정치범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좌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한번 걸리면 그 직계가족과 근친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심한 경우 8촌까지도 처벌을 받게 됩니다.
  정치범 수용소 중에서도 소위 ‘혁명화 구역’이라고 불리는 곳은 그나마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가는 곳이지만, 중범죄자들이 수용되는 ‘완전통제구역’은 문자 그대로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그러니 2015년에 ‘이코노미스트’ 지에 나온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민주주의 지수’는 대상국가 167개국 중에 167위였으며, 역시 같은 해의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GDP는 일인당 642불(약 70만 원)으로서 우리나라 GDP 2만8천불에 비해 약 45분의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2000년 때부터 인권탄압에 대한 규탄이 시작되었고, 2005년에는 유엔에 ‘북한 인권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면서 결의문을 채택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역시 2004년에 ‘북한 인권법’(North Korean Human Rights Acts)을 제정한 이래 매 4년마다 연장해 오고 있으며, ‘북한인권특사’까지 임명해서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정작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을 따라 2005년 제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북한인권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당시 야당에서 ‘남북대결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발함으로써 끝내 채택되지 못했고, 이것은 제18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가 제19대 국회에서 여야가 간신히 합의안을 도출하여 2016년 3월에 드디어 ‘북한인권법안’이 제정되었습니다.
  북한 주민에게서 ‘제일 가까이 있는 나라’, 더구나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 오히려 국제사회보다 훨씬 더 늦게 겨우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래 전에 어느 여자 가수의 옛 남자친구가 그녀와 함께 가졌던 사적인 관계에 대한 동영상을 유출함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는데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책임’을 느끼고 직장상사에게 사임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때 그 상사는 “진짜 죄를 지은 사람은 그 남자와 우리 모두인데 왜 피해자인 당신이 사임을 하려 하느냐?”라고 하면서 그 사임서를 반려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상사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감탄스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악독한 범죄에 대해 함께 ‘공분’하지 않고 그 동영상을 스스로도 즐긴 모든 사람들이 실상은 공범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악의 인권탄압 범죄’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나 ‘공분’하고 있습니까?
  그들과 ‘제일 가까운 성읍’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무심하게 그 악행을 못 본 체하는 것은 실로 ‘공범자’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깨닫고, 같은 피를 나눈 동포가 매일같이 당하고 있는 저 ‘생존권 말살의 고통’에 대해서 ‘책임의식’을 가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독재자의 압제로부터 도망쳐 나온 탈북자’를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따뜻이 맞이해야 합니다.

  23장 15절과 16절에 기록하기를 “15종이 그의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고 16그가 네 성읍 중에서 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고대근동사회에서 종이란 바로 그 주인의 재산이었습니다.
  헬라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현인조차 “노예는 살아있는 도구”라고 정의를 내리면서 노예제도의 정당성을 인정할 정도였으니, 당시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엄격하게 구분하자면 노예와 종은 다르겠지만, 실제로는 같은 단어를 그저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른 것으로서 큰 차이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구약의 이스라엘 사회에도 역시 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노예제도를 인정하셨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스라엘 사회에 종이 있었던 것은 그저 그 당시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똑같이 있었던 사회적 관습을 따른 것일 뿐이었으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이방민족과는 달리 종을 관대히 대하도록 율법을 통해 명령까지 내려놓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등에 보면 그런 종의 인권을 보호해 줄 뿐 아니라 종을 품꾼 즉 일꾼처럼 또는 형제처럼까지 대해 주도록 명하신 규정들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종이 주인의 학대를 받아서 도망치는 경우란 극히 드물었을 것이며,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종이 그의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이란, 이웃 이방민족의 종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로 도망쳐 온 경우일 것입니다.
  물론 당시 대부분의 이방민족들은 도망친 종에 대하여 아주 엄격하고도 잔인한 형벌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함무라비 법전 같은 데에 보면, 도망쳤다가 붙잡힌 종은 사형에 처하거나 두 발이 잘리는 중벌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웃나라끼리도 그처럼 도망쳐서 넘어온 종의 경우에는 서로 본국으로 인도해 주도록 공식적인 협정까지 맺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처럼 이웃 민족에게서 도망쳐 온 종을 “그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 종을 주인에게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바로 그 종에게 가장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16절에 기록된 대로 그 도망친 종을 이스라엘의 “성읍 중에서 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자유롭게 거주하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이방민족들이 보기에는 실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처사였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지극히 인도적인 일이며 아주 당연한 도리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자유진영의 국가들은 바로 이런 정신이 반영된 법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정치적인 박해를 피해서 자기 나라로 망명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무조건 받아들여 주는 것입니다.
  그냥 살기 위해서 이민을 원하는 사람이나 때로는 유학 오는 학생까지도 엄격하게 비자 심사를 하는 나라라 할지라도, 그런 정치적인 망명자는 인도적으로 기꺼이 영접해 줍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월남이 망하게 되었을 때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소위 ‘보트 피플’이라 불렸던 망명인들을 자국으로 받아들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극소수이지만 받아들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 관례와 인도적 윤리를 생각해 볼 때, 오늘날 탈북자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의 자세와 정책은 어떠합니까?
  이 탈북자들은 이웃나라의 노예도 아니요 타민족의 망명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 동포’이며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노예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러운 박해를 피해서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이며, 만약 붙잡혀서 되돌아가게 되면 정치적 망명인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처벌을 받게 될 것이 뻔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탈북자들을 따뜻이 맞아주기는커녕 ‘북한에서 온 거지’라고 부르며 혐오하고 비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법치주의와 상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표적으로 삼는 ‘탈북자털이 전문사기꾼’들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정말 같은 동포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입니까?

  정치인 중에서도 오로지 북한 독재자의 눈치를 보느라고 중국 공안당국이 이들을 체포해서 도로 북한으로 넘겨주는 것에 대해서 아무 제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실 직접 상관할 책임도 없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오히려 ‘탈북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까지 통과시키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을 오히려 ‘남북 관계를 경색시키는 행위’라고 비난하며 심지어 탈북자들을 가리켜 ‘조국을 떠난 배신자’라고 욕을 퍼붓는 어처구니없는 국회의원마저 수두룩한 것입니다.
  그처럼 탈북자를 ‘귀찮은 존재’로만 여기는 분위기는 공무원 사이에도 퍼져가면서, 일전에 제3국으로 탈출한 일단의 북한 청소년들을 구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당시 외교부에서 “그들은 북한 사람인데 어떻게 한국인이라는 신원확인서에 도장을 찍어 줄 수 있겠느냐?”라고 외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외교부 직원들은 아까 제가 서론에서 언급했던 ‘대한민국 헌법 제3조’도 모르면서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버젓이 대한민국 공무원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심지어 ‘국군포로’ 장무환 씨나 ‘납북어부’ 이재근 씨가 천신만고 끝에 중국으로 탈출해서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전화를 받은 대사관 직원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차라리 밀항을 하라.”고 폭언을 했던 것이 녹음되어 언론에 공개된 적도 있었습니다.
  탈북자는 고사하고 북한에 억류되고 납치된 진짜 ‘대한민국 국민’까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취급해 주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을 받아먹고 있는 대한민국의 철밥통 공무원’의 모습인 것입니다.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그처럼 회피만 하고 있으니, 결국 기독교 선교단체나 민간 탈북자 보호단체에서 이 일을 주도하는 형편이고 그처럼 탈북자를 돕던 목사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되곤 하는 일들이 흔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언론계에서도 탈북자들을 두고 “이전에 몸담았던 곳에 대해서 무지막지한 비난을 쏟아내면서 동시에 새로 넘어온 곳의 권력층과 그 체제에 대해서는 과잉충성에 가까운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 무리라고 싸잡아 비난을 퍼붓는 자들이 있습니다.
  즉 전향자들이 자신의 과거 이미지를 벗기 위해 ‘오버’하면서 특히 반공세력과 극우집단과 수구단체와 ‘유착’해서 운동권이나 진보좌파를 무조건 종북으로 몰아가는 데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언론인의 말대로 탈북자들이 ‘새로 넘어온 곳의 권력층과 체제에 대해서 과잉충성’하는 자라면, 왜 좌파 정권이 들어섰을 때에도 그들은 ‘이미 권력과 체제의 주도권을 잃은 우파’에만 계속 남아 있는 것일까요?

  전혀 상관할 바 없는 이웃 민족의 종이 도망쳐 와도 보호해 주는 것이 도리인데, 같은 동포가 그 무서운 독재자의 압제를 피해서 도망쳐 오는 것을 두고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욕까지 퍼부어대고 있으니, 정말이지 뭐라고 표현할 말조차 찾을 수 없는, 그저 황당하고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로 무슨 비윤리적, 비인간적이라는 말로도 한참 모자라는, 진짜 양심을 팔아먹고 민족을 배반하는, 실로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는 매국노적 행위인 것입니다.
  저 공산독재자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해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서 지금도 중국 등지에 숨어 있는 탈북자들을 늘 가슴에 안고, ‘그래도 같은 민족이니 받아 주겠지.’라는 기대 하나만을 붙잡고 이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탈북자들을 진정 따뜻하게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2010년에 방영된 ‘북한 3대 권력세습 김정은,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KBS 스페셜에 토끼풀을 뜯어먹는 북한의 한 여자 꽃제비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일정한 주거가 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이나 도적질을 해서 연명하는 영락없는 ‘거지’를 왜 북한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꽃’과 ‘제비’라는 단어를 합성해서 부르는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사회주의 천국’을 이룩했다고 하는 북한에서는 ‘거지’가 단 한 명도 있을 수 없으며 그런 까닭에 ‘거지’라는 단어조차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그 여자 꽃제비는 일본의 아시아프레스가 그해 6월에 평안남도에서 촬영했다고 하는데, “토끼풀을 매서 뭐하니? 토끼 줄라고?”라는 기자의 질문에 “제가 먹으려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계속해서 “너 몇 살이니?”라는 질문에 “저요? 스물 세 살이에요.”라고 했는데, 그녀의 얼굴은 거의 할머니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그해 10월 말에 그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무연고자인 까닭에 그 시신마저 오랫동안 옥수수밭에 방치되어 있었고 발견 당시 이미 부패가 시작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 텔레비전에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한 개발도상국가에서는 ‘6초에 한 명씩’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급식과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후원해 달라는 광고를 흔히 보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자 꽃제비는 먼 아프리카 대륙의 어린이가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에 살던, 그러면서도 같은 동포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고 김동식 목사님은 경향교회의 여의도 시절에 대학부 SFC 담당 교역자였고 저도 그 분에게서 배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시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선교사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그 기간 중에도 제가 한 번 뵌 적이 있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그때 즈음 미국에서 올림픽이 열렸을 때 북한 선수단을 대접하기도 하셨고, 그 이후에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장애인 선교활동을 하시다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탈북자를 돕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김 목사님에게 접근해 온 북한 공무원 출신의 탈북자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자기 가족을 북한에 남겨 놓고 나왔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김 목사님에게 그가 ‘위장 탈북자’일 가망성이 높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김 목사님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찾아온 사람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느냐고 하시며 계속 그와 접촉을 하던 중 얼마 후인 2000년 1월에 연변의 어느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자들에 의해 납치를 당하셨습니다.
  그 현장의 목격자였던 다른 선교사님이 즉시 신고를 했지만 한국 정부는 김 목사님이 북한에 납치를 당한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는 식의 냉담한 반응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일부 목사님들만 김 목사님의 송환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속수무책이었고, 김 목사님은 약 1년 후에 영양실조와 고문후유증에 의해 결국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당시 검찰에서는 사건 발생일로부터 4년이나 지난 후에야 김 목사님의 피랍 사건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김동식 목사님 본인도 지체장애인으로서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은 ‘당신 일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라고 외면하며 국내의 종북좌파들이 ‘조국을 떠난 배신자’라고 욕을 퍼붓고 있는 그 ‘외롭고 오갈 데 없는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피할 곳’을 마련해 주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쓰시다가 끝내 자신의 생명까지 순교의 제물로 바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대한민국에 그런 ‘여자 꽃제비’들을 도와줄 수 있는 또 다른 ‘김동식 목사’들이 과연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나와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모두는 비록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은 가지고 있다 해도 실제로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것입니다.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을 나와 피를 나눈 동포요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성읍’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정말 기꺼이 그리고 진정 따뜻하게 영접해 주는 ‘장로와 제사장’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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