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2017-04-23 “에베소교회” 사도행전 18장 19절 – 19장 7절/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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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경향의 강단(19) (2017년 4월 23일 / 교회설립44주년 주일대예배)
“에베소교회” 사도행전 18장 19절 – 19장 7절/ 석기현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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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교회"

사도행전 18장 19절 – 19장 7절/ 석기현 담임목사

  안데르센이 지은 ‘미운 오리 새끼’라는 유명한 동화가 있습니다.
  어쩌다 백조 알 하나가 오리 알들과 섞이게 됩니다.
  알들이 부화되었을 때 다른 오리 새끼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이 백조 새끼는 오리들 사이에서 ‘미운 놈’으로 보여 ‘왕따’를 당하면서 온갖 고초와 설움 속에 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원래 가지고 있던 백조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면서 엄마 백조의 곁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가 설립되고 성장하는 과정도 그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막 개척된 시점의 교회란 어딘가 엉성하고 좀 구질구질하면서 무언가 심기 불편한 기분까지 들게 만듭니다.
  같은 동네에 먼저 세워져 있던 기존 교회에서는 은근히 눈총을 주고, 불신 주민들 역시 ‘또 교회가 하나 섰나?’ 하고 퉁명스럽게 대하기 일쑤입니다.
  그야말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되었던 개척교회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교인 수가 열 명, 스무 명 늘어가면서 제직회와 전도회를 비롯하여 당회까지 조직하게 되고, 셋방살이 하던 건물의 평수가 조금씩 확장되다가 나중에는 교회 부지를 구입해서 예배당을 짓게 되며, 처음에는 이웃 전도에만 전력을 기울이다가 차츰 국내의 다른 개척교회 지원을 비롯하여 세계 선교에까지 그 후원의 날개를 뻗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의 성장 과정은 실로 처음에는 그저 ‘미운 오리 새끼’처럼만 보였다가 끝내 ‘백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되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에베소교회 역시 시작은 여러 가지로 어설픈 데가 많았습니다.
  뜻있는 성도들이 기도하면서 모이다가 예배 처소를 마련한 후에 영력 있는 목회자를 정식 초청하는 식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획되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창립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교회는 출발 때부터 목회자 선임이나 교인 자질 등에 문제가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에베소교회는 초대교회들 가운데 크고도 중요한 교회로 자라게 되었으며, 나중에 사도 바울의 친서인 에베소서를 받게 된 교회,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신 편지들’ 중에 제일 첫 편지를 받을 정도로 유명한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어만 보이던 에베소교회가 그처럼 아름답고 강한 교회로 자라나게 된 신기한 비결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이제 교회설립 44주년 기념주일을 맞이하게 된 오늘 저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참된 교회는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하게 되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집니다.

  18장 19절부터 23절에 “18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고린도에서 일 년 반 동안의 사역을 마친 사도 바울은 이제 2차 전도여행을 끝내고 안디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귀향길에 에베소를 들르게 되었는데, 에베소는 로마 제국 산하에 있던 소아시아 지방의 수도이며 최고의 상업 도시였습니다.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에베소 역시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으며, 여러 민족과 문화가 교차 집결했던 일종의 국제도시와 같았습니다.
  당연히 아주 큰 유대인의 공동체도 존재하던 도시였습니다.

  본문에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했다는 말은, 나중에 그가 에베소를 떠나게 되었을 때 고린도에서부터 그와 동행해 왔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그 도시에 남겨 두었다는 뜻입니다.
  에베소에 남게 된 이 부부는 나중에 나오는 대로 에베소교회의 개척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바울은 잠시 지나가는 길이기는 했지만 그 기회조차 역시 전도를 위해 활용했습니다.
  새 도시에 갈 때마다 항상 그랬던 대로 에베소에서도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을 상대로 전도를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비록 짤막한 전도이기는 했지만 그 곳 유대인들의 심령이 반응을 보였고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 요청을 “허락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모처럼 복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좀 더 오랫동안 같이 있어 달라는 간청까지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바울이 허락하지 않은 것은 조금 의아스럽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다른 도시에서는 방해와 위협을 무릅쓰고 전도했던 그가 왜 에베소에서는 그처럼 빨리 떠나려 했겠습니까?
  아마도 바울은 이때 즈음부터 제3차 전도여행 계획에 바빴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바로 이어지는 22절에 나타나는 대로, 원래 계획했던 2차 전도여행은 다 끝났으니 즉시 안디옥교회로 돌아가서 그간의 선교 활동을 보고한 후에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려 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항해하기에 알맞은 계절을 놓치지 말아야 했었는데, 그런 일정 계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에베소를 속히 떠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23절에 “얼마 있다가 떠나”라는 말이 바로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의 출발이었습니다.

  그처럼 에베소를 잠시 들렀다 지날 수밖에 없었던 바울이었지만 그는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남겼습니다.
  지금 당장은 원래 세웠던 계획에 쫓기는 몸이 되어 어쩔 수 없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뜻하시면 자기를 다시 에베소로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바로 다음 장에 나오듯이 바울은 3차 전도여행 도중에 에베소로 돌아오게 되었을 뿐 아니라 거기서 약 3년 동안이나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성장시키게 됩니다.
  그 결과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목회했던 교회가 되었는데, 비록 예루살렘으로 가려던 계획이 그 때문에 몇 년 늦어지기는 했지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어떤 ‘영력 있고 유능한 목사’를 몇 명의 교인들이 붙잡고 교회를 시작하자고 설득해서 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처럼 평신도이지만 성경 지식이 뛰어나고 열심이 있으며 재력도 뒷받침하고 있는 ‘원년 멤버’들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적으로는 그런 동기와 기회와 조건들이 분명히 작용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심으로써 한 교회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향교회의 설립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부산에서 소속 교단 산하의 교회들 중에 가장 큰 교회를 담임하고 계셨지만, 원로목사님께서는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원로목사님을 모시고 함께 개척을 하고 싶다는 성도들도 몇 명 있었고, 실제로 그분들이 나중에 개척멤버가 되셨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의 뒤에는 바로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은 원로목사님의 꿈이나 개척멤버들의 소원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경향교회를 ‘세계를 받은 교회’로 사용하여서 국내전도뿐 아니라 세계선교를 위해서까지 크게 사용하시려는 실로 ‘큰 뜻’이었고,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이 오늘의 경향교회를 이루게 된 것은 우리 모두가 목도하고 있는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이처럼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질 때 진정 확고부동한 기초를 잡게 되는 것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참된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자라납니다.

  18장 24절부터 28절에 “24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고 기록했습니다.

  바울이 확실한 기약도 없이 떠나간 동안에 에베소교회에는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소위 ‘후임자’ 격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향인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로마제국 산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애굽의 유명한 학문도시였으며 또한 유대인의 공동체도 강력했기 때문에 그런 배경에서 자랐던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질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볼로가 어떻게 “일찍이 주의 도를 배우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그의 고향 도시에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으니 자연히 예루살렘과 여러 인적 교통도 많았을 것이고 그런 기회를 통해 우연히 기독교를 접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이 아볼로가 에베소에 와서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는 순수한 믿음과 학문과 더불어 열정적인 사명감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 아볼로는 나중에 바울이 크게 칭찬하는 훌륭한 동역자요 사도까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초창기에는 그에게 큰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말을 볼 때 아마 아볼로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관해서 전파했던 내용’만을 듣고 “주의 도”를 접하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3장 1절부터 18절에 보면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면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내용이 나오는데, 아볼로가 만약 그 메시지만 전해 들었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데에는 충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깊은 복음, 특히 교회에서 다른 성도들을 가르치기 위한 신학적 지식은 크게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언급해 드렸던 대로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면서 그 도시에 남겨 두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바로 이때 요긴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미 바울에게서 철저한 성경공부와 신학교육을 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치는, 요즘으로 따지자면 성경에 근거한 ‘구원론’이나 ‘기독론’ 같은 교리 공부를 시켜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도’를 완벽히 알게 된 아볼로는 이제 사도 바울이 이미 개척교회를 세워 두었던 “아가야” 지방에 있는 고린도로 가고자 했습니다.
  이때 에베소교회의 “형제”들은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고 했습니다.
  즉 아볼로는 제대로 신학 공부를 했으며 실력과 영력 있는 훌륭한 목회자라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추천서를 써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 가게 된 아볼로는 거기서 이미 바울을 통해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목회를 하게 됩니다.
  또한 “공중 앞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면서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인의 말을 이기는” 왕성한 전도 활동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에베소교회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이처럼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까지 더욱 신학적으로 완벽한 사도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성경 중심의 진리’에 숙달된 평신도 사역자였던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목사는 오직 ‘성경만을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으로 선포하고 교인들은 그 ‘성경중심으로 신행일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른 신학, 정통 교리는 결코 딱딱한 지식이 아니라, 한 영혼을 바른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서, 또한 한 교회를 똑바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필수적인 진리인 것입니다.

  경향교회의 성장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개척될 당시 주위의 다른 목사들은 원로목사님의 그 ‘억센 경상도 사투리’의 설교를 듣고 이 교회에 찾아올 ‘서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비관적인 예상과는 달리 오직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시는 원로목사님의 강력한 메시지는 ‘이 성중에 있는’ 택자들의 심령을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 설교를 중심으로 한 교회 행정’과 ‘그 말씀을 생활에서 체험하는 성도들의 삶’이 구체적인 열매를 거두면서 경향교회는 순식간에 급성장을 보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로 교회는 그 어떤 ‘사람의 언변’이 아니라 오직 ‘진리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열심히 배우는 가운데 실로 건강하고도 빠르게 자라날 수 있음을 명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참된 교회는 ‘중생 받은 신자’를 낳게 됩니다.

  19장 1절 이하 7절에 기록하기를 “1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고 했습니다.

  이때 즈음 “아볼로”는 이미 “고린도에” 가 있었는데, 이제 막 3차 전도여행을 시작했던 사도 바울이 “윗지방” 즉 북부 소아시아에 있는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18장 23절)을 거쳐서 “에베소에”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어떤 제자들” “열두 사람쯤” 되는 에베소교회 교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어 보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참된 신자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은 신자가 되었다고 생각해도 그 믿음은 참된 것이 아닐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 참된 믿음의 여부를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질문으로 물어 본 것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울에게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라고 대답하자 바울은 이어서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바른 믿음’과 ‘세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 짐작했던 대로 그들은 “요한의 세례” 즉 세례 요한이 가르치고 행했던 식의 세례만 받았다고 했습니다.
  비록 물로 세례를 주는 형식은 같다 할지라도 요한의 세례는 ‘죄를 자각하고 회개하는 상징’으로만 그 의미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는 그 단계를 지나 ‘죄 사함 받고 영생 구원에까지 이르게 하는’ 완전한 세례였습니다.
  실제로 세례 요한 자신도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면서 자기는 그저 물로 세례를 줄 뿐이지만 자기 뒤에 오실 메시아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 주실 분’이라고 분명히 밝혔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고 증거했음을 그 형제들에게 상기시켜 주면서 이 ‘성령의 세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즉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즉 그들은 세례를 다시 받았던 것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받았던 첫 번째 세례에는 ‘죄 인식과 회개’는 있었지만 이처럼 ‘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믿음’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교회는 개인의 죄를 회개하는 과정을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써 죄 사함과 구원까지 얻게 된 참된 중생신자를 낳음으로써 비로소 진짜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이처럼 ‘구령 단체’가 되어야만 진정 그 목적을 제대로 성취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그 귀한 피로 값을 치르면서까지 이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오직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교인들이 모여서 ‘성도 교제’를 나누고 ‘지역발전’에 큰 기여까지 한다고 해도 정작 ‘구원의 확신이 있는 신자 한 명’을 낳지 못하는 교회란 그저 ‘사교클럽’이나 ‘사회사업단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경향교회는 이 점에 있어서 분명하고도 철두철미하지 않습니까?
  매년 두 차례 온 교인들이 각자 ‘태신자 작정’을 하고 그 후에는 ‘사랑의 편지 쓰기’, ‘아파트 방문 전도’, ‘수요 노방전도’, ‘주보 발송’ 등을 통해 ‘태신자’를 ‘해산 신자’로 낳기 위해 그야말로 온 교회가 총력을 동원합니다.
  또한 ‘경향어린이선교원’이나 ‘경향어린이새소식반’을 통해서 ‘아파트 문을 여는 열쇠는 그 집 아이에게 있다.’는 원로목사님의 멋진 전도 전략을 실천에 옮깁니다.
  심지어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님들도 그저 무슨 ‘프로젝트 선교’가 아니라 반드시 그 지역의 전도 활동을 통해 ‘중생 받은 신자’들을 낳고 그런 원주민 신자들을 중심으로 ‘선교지 교회’를 설립하는 것을 필수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당 백성’을 모으지 못하는 교회란 그야말로 ‘있으나마나 한 교회’가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교회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오직 ‘중생 신자’를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낳아서 ‘십사만사천 인의 남은 자’의 수를 채워가야만 주님께서 그 교회를 세우신 ‘존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끝까지 기억하고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에베소교회의 시작은 아무리 보아도 잘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비록 사도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리고 교회 개척의 계기는 만들었지만 기약도 없이 금세 떠나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임 목회자로 왔던 아볼로는 열심도 있고 실력도 있었지만 교리에 약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교회의 창립멤버라 할 교인들 중에서도 아직 참된 ‘중생’을 받지 못한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에베소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진 교회였으며, ‘성경의 진리’가 그 중심에 있었고, 결국 ‘성령 세례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가진 신자’들이 생기면서 급성장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작할 때는 ‘미약’하기만 했던 교회가 그처럼 ‘창대’하게 자라가는 가는 과정은 정말 ‘미운 오리 새끼’가 자라서 ‘백조’가 되는 것과 같은 놀라운 변화요 성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기 위해서는 애당초 그 알이 ‘오리 알’이 아니라 ‘백조 알’이어야만 합니다.
  즉 비록 ‘미운 오리 새끼’처럼 보이지만 오직 원래 백조의 알에서 태어난 것만이 장차 백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지상에 세워지는 교회들이 다 참된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 교회의 ‘원래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이미 결정됩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진 교회만이 처음에는 볼품없게만 보이다가도 결국 영광스러운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개척될 때부터 철두철미하게 ‘성경중심’의 원칙에 따라 ‘바르고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며, 그런 가운데 ‘중생 받은 신자’를 한 명 두 명 낳는 가운데 끝내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전도와 선교를 통해 얻게 되는 것입니다.

  경향교회가 1973년 4월 15일에 을지로의 작은 창고에서 창립예배를 드릴 당시의 모습이란 영락없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경향교회 역시 결코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크고도 선한 뜻’을 따라 세워진 ‘세계를 받은 교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 교회의 강단은 오직 ‘성경 말씀’만을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으로 지난 44년 동안 변함없이 선포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의 구주’로 고백함으로써 ‘성령의 세례’를 받은 진정한 ‘중생 신자’들의 수가 날마다 더하는 ‘구령의 방주’가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이 경향교회는 정말 ‘백조’처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희년’을 향해 줄기차게 계속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44년 동안 우리 교회를 인도하시는 가운데 이미 이처럼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돌리면서, 이제 ‘Y-6’의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이 교회를 더욱 아름답고 강하게 세워 감으로써 진정 이 경향교회를 ‘사랑하고 자랑하는’ 경향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