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밤예배 2017-04-16 “그들의 피가 그의 눈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시편 72편 12-15절/ 석기현 담임목사

More videos
74
Views
   

WMA음성받기MP3음성받기동영상다운받기동영상다운방법
주일밤예배 2017-04-16
2017′경향의 강단(18-1) (2017년 4월 16일 / 부활주일밤 찬양예배)
“그들의 피가 그의 눈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시편 72편 12-15절/ 석기현 담임목사
찬양:시온·호산나·할렐루야 연합찬양대 (지휘:오유정 권사)

(74)

"그들의 피가 그의 눈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시편 72편 12-15절/ 석기현 담임목사
우리나라의 좌파 정치인들은 우파를 향해 걸핏하면 ‘유신정권의 잔재, 독재자의 부활’이라는 따위의 비난을 퍼붓습니다.
  정말 끝나도 이미 이십 년 전에 완전히 끝난 군사독재가 도대체 무엇이 무서운지, 속된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 죽은 사람의 망령을 두려워하는 듯이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독재는 나쁘고 악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국민들 편에서는 누가 정권을 잡느냐, 누가 얼마나 오래 정권을 누리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그 정권을 잡은 통치자가 자기네들을 얼마나 잘 살게 만들어주느냐, 여기에 훨씬 더 큰 관심과 기대가 늘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국익을 위해 훌륭한 정치를 하고 국민들의 경제생활을 책임지고 향상시키는 정치가라면 오히려 헌법을 뜯어고쳐서라도 장기집권하시라고 사정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헌법상 대통령을 2선까지밖에 못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즈벨트 대통령이 경제공황을 잘 극복하고 미국 경기를 회복시키니까, 온 국민들이 기꺼이 그를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3선 대통령으로 뽑아 주지 않았습니까?
  만약 그가 세 번째 대통령 임기 도중에 병으로 죽지 않았더라면 정말 4선까지도 갔을지 모릅니다.
  가까운 싱가포르에서도 그와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광요 수상은 그야말로 장기집권에다 독재까지 했지만, 그 작은 나라를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불릴 만큼 강하게 만들고 온 국민들로 하여금 그렇게 부요를 누리게 해 주니까, 아무도 불평불만을 가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통치자는 무엇보다도 백성을 잘 살도록 해 주기만 하면 백성으로부터 절로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에도 보면 바로 그런 이상적인 한 왕이 나타납니다.
  이 시편 72편 1절 앞의 표제에 보면 “솔로몬의 시”라고 되어 있는데, 제일 끝 19절 하반절에 보면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구절은 총 5권으로 나누어져 있는 전 시편에서 제2권이 종결되었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며, 이 시편 72편은 표제에 나와 있는 대로 이스라엘의 양대 성군 중의 한 명이었던 솔로몬이 지은 것입니다.
  이 시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실로 완벽한 왕의 모습, 그야말로 왕으로서의 이상형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습니다.
  그처럼 완전무결한 왕이 되기 위한 조건은 이 시편에서 크게 둘로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그 무엇보다도 바로 자기 백성을 잘 돌보는 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왕들로부터도 존경과 높임을 받는 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은 바로 이 점을 이 시편을 통하여 각 문단마다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1절부터 7절까지는 백성에 대한 선정, 그리고 이어지는 8절부터 11절까지는 그런 왕에 대한 권위와 영광을 노래합니다.
  똑같은 패턴이 그 이하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됩니다.
  즉 12절부터 14절까지는 다시 자기 백성에 대한 왕의 선정을 말하고 있고, 그 뒤에 이어지는 15절 이하 17절까지는 그런 왕에 대하여 영광과 찬양이 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18절과 19절은 그처럼 완벽한 왕을 세워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궁극적인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모두 다 돌림으로써, 이 시편 72편을 실로 멋있게 마무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전체 줄거리를 염두에 두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시면, 우선 12절부터 14절까지는 바로 그 완전무결하신 왕이 자기 백성을 그 얼마나 자상하게 돌보아 주시는지를 노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라고 했습니다.
  그 왕은 약한 백성의 간구에 대하여 끝까지 귀를 기울이는 왕이시라는 뜻인데,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려면 무엇보다도 일단 왕의 귀가 항상 백성을 향하여 열려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한 13절에서는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 왕은 자기 백성에게 뜨거운 사랑을 늘 발휘하는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조금이라도 책임감이 있는 왕이라면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것입니다.
  하지만 왕이 자기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함으로써 선정을 베푸는 것은, 그냥 열심히 들어주기만 하는 정도보다는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왕은 거기에서도 그치지 않습니다.
  14절에 보면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란 물론 백성을 두고 하는 말인데, “그의 눈 앞에서”란 누구의 눈앞을 가리키는 말이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왕 자신을 가리킵니다.
  즉 이 왕은 자기 백성이 압박과 강포를 당할 때 전심전력을 다 동원해서 구원해내고야 마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백성들의 피가 그 왕에게 있어서는 최고로 존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도 아까 제2단계의 왕의 자질보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아니겠습니까?
  왕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이 왕은 그 백성의 피를 자기 자신의 가장 귀중한 소유물처럼 여기는, 즉 자기 백성의 생명을 바로 자기 자신의 생명과 동일시할 정도로 귀하게 여기는 왕이신 것입니다.
  왕이 백성의 생명을 자기 생명처럼 여겼다 하면, 정말 말 다한 것 아니겠습니까?
  실로 더 이상 무슨 사족이 필요 없는, 정말 기가 막히도록 놀라운 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런 왕을 모신 백성은 15절에 나오는 대로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게” 됩니다.
  그처럼 자기네의 ‘생존권’을 위해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아 주는 왕이라면, 그 백성들은 세금을 기꺼이 내는 정도가 아니라 최상품의 금을 사서라도 그 왕에게 감사 예물을 드리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백성을 그토록 사랑하고 돌보아 주는 왕은 이제 백성들로부터 지극한 경외와 찬양을 한 몸에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보통 왕이라고 하면 자기와 격이 같은 다른 나라의 왕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그 왕들과 잘 공조해서 자기 권좌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왕은 전혀 다르게, ‘자기 백성’을 최고로 중요하게 여기고 제일 사랑하고 최선의 것으로 베풀어 주고 계시니, 백성들 쪽에서는 무엇이라도 그 왕에게 바치고 싶어서 안달이 나고, 그 왕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 모든 사랑, 모든 존경을 절로 다 바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시편을 지은 솔로몬이 과연 자기 자신을 그런 완벽한 왕, 이상적인 왕으로 생각하고 지었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그는 이 시편에서 노래하고 있는 왕처럼 되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고 스스로 노력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이 시편을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지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8절의 내용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끝까지 다스리리니”라는 말씀만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왕은 이스라엘이나 그 주변 국가뿐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자이신데, 그런 세계적인 통치란 솔로몬의 능력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 역시 메시아를 예언하는 시편이 확실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예수님이야말로 이런 완벽한 왕의 모습을 실제로 구현한 유일한 왕이셨습니다.
  예수님만큼 자기 백성을 위하고 돌보아 주신 왕이 누가 있었습니까?
  예수님처럼 자기 백성들이 환난과 어려움 중에 부르짖는 기도와 간구를 자상하게 들어주시는 군주가 어디에 있었으며, 예수님처럼 그 못난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는 사랑을 발휘한 대통령이 누가 있었습니까?
  무엇보다도 자기 백성의 피를 자기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고 자기 피로 맞바꾸어서라도 구원해 주신 통치자가 이 세상에 예수님 외에 누가 있었으며, 누가 어디 비슷한 흉내라도 낼 수 있었습니까?
  실로 이 시편은 모든 백성이 바라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결코 기대할 수 없었던 왕, 또한 세상의 왕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추구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능력이나 인격으로는 절대로 성취할 수 없었던, 심지어 다윗과 솔로몬 같은 최대의 성군들조차 근처에도 갈 수 없었던 완전무결한 왕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시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뚜렷하게 증거해 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왕을 모시게 된 저와 여러분의 반응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15절에 있는 대로, 우리 역시 이 왕께 최고의 예물을 드리고, 이 왕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존경과 영광을 다 돌려드리는 것이 지극히 마땅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 왕께 헌금을 드리고 그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충성 봉사하는 것은, 불신자들이 보기에는 부담스러운 의무처럼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마운 왕을 모시게 된 은혜를 제대로 체험한 신자에게는, 이 왕을 섬길 수 있는 기회와 사명을 얻게 된 것이 오히려 황공무지하고 감격스러울 따름이 아니겠습니까?
  자기 백성의 약한 것을 들어주시며, 자기 백성의 못난 모습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여 주실 뿐 아니라, 이제 그 죄인와 악인에 불과한 자기 백성들의 생명을 지극히 존귀하게 여겨주시고 당신의 피까지 대신 흘리신 이 신기하고도 놀라운 왕을, 이번 부활절을 통해 더욱 크게 찬양하며 뜨겁게 감사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