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 2017-04-02 이자영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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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간증 2017-04-02
청년회 헌신예배(주일밤 예배)
설교: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창세기 32장 21-31절] 신승욱 교육목사(제네바신학대학원 교수)
찬양:청년회 연합찬양대

청년회 연합 헌신예배 신앙간증

제12청년회 이자영 청년

이 시간, 저의 부족함은 고이 접어두고, 죄인 된저를 행복자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자랑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저를 향하신 구원계획 속에서 그 사랑을 알게 하셨습니다.

불신가정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고 살았던 저는 단순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까닭에 지금의 경복비즈니스 고등학교 디자인과로 진학하
게 되었고, 교회를 나오지 않으면 참된 제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미술선생님의 강력한 전도로 경향교회에 어쩔 수 없이(?)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좋아하는 학교선생님들을 뵐 수 있으니 예배시간에는 지각하더라도 S.F.C.시간은 꼭 지키는 그런 엉터리 신앙생활을 시작으로 개념
없던 저의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매시간 경향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S.F.C.신앙생활을 통하여 믿음의 씨앗이 자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누구보다 행복했던 지난 S.F.C.시절의 신앙생활 속에서 저는 남들 앞에 쉽사리 꺼내기 힘든 가정사의 어려움 역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부모님의 불화가 극심했고, 지금은 교회를 잘 나오고 계시지만 아버지께서는 성경책을 집어 던져 가시며 교회생활을 반대하셨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정이 쪼개지면서 어머님과 저와 동생들은 당장 머물 곳이 없어 국가가 제공하는 보호기관에서 지내야만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
시 저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저는 그 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너무나 가깝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기도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집을 교회처럼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랑
하는 두 명의 동생들과 함께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잠시 머물게 된 국가보호기관은 기독교 기관이었고, 때문에 어머니와 동생들과 날마다 새벽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후에 기관을 나와서 잠시
지냈던 오피스텔은 현재 교육관의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집에 조용히 있다 보면 교육관의 찬양소리가 들려올 정도였습니다. 집의 앞마당이 경향교회
가 되니 새벽기도를 가는 데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고, 막내 동생은 당시 경복여고에 재학 중이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푹 쉬다가 다시 등교하곤 했습니다.
우리의 나그네 된 삶에서 폭풍 가운데에 있을지라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으로 인하여 잠잠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체험
적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영적 전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셨습니다.

거처가 안정이 되어갈 무렵, 공부에 대한 미련을 접고 직장을 알아보던 중 사실 이렇다 할 스펙도 없는 저였지만 배짱하나 만큼은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달란트가 너무나 분명하고, 틀림없이 저의 자리를 먼저 예비해 놓으셨으리라는 믿음이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도 생각처럼 직장은 빨리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다는 착각과 교만을 모두 내려놓은 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이 성경캠프에 찬양부 교사로 섬기기 위해 지금의 제네바 신학대학원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떨어졌던 KBS의 의상제작부에서 계약직으로 채용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
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순탄할 줄 알았던 직장생활은 새로운 차원의 영적 전투가 되었습니다. KBS에서의 방송일은 한 치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프로의 세계였습니다. 촬영이 한번 시작되면 끝이 날 때까지 집에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수많은 팀들 가운데 제가 속한 팀에서 ‘실수’가 발생되면 연기자부터 모든 스태프들이 대기를 해야 하고 제작비가 공중으로 흩어지게 되는, 22살이라는 나이로 견디기에는 너무나 막중한 책임감과 긴장이 늘 저를 누르며 삶속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된 촬영으로 밀려오는 육체적인 피로나 정신적인 압박도 아닌 주일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보통 새벽 6시부터 촬영을 시작해서 그 다음날 새벽에 끝나는 일이 다반사니 오전예배는커녕 저녁예배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주일이 다가올 때마다 늘 어떻게 하면 잠깐이라도 예배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남몰래 눈물짓곤 하였습니다. 저 혼자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을 붙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영적인 일에 너무나 갈급했던 저는 결국 1년 뒤에는 미련 없이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공채 공고가 났으니 시험을 보라는 직속 선배님의 귀띔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거절했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고까지 말씀을 드렸음에도 선배님께서는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저에게 유리한 시험이라며 떨어져도 좋으니 경험 삼아서라도 지원을 해보라고 강권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원한 KBS 공개 채용에서 1차와 2차로 서류와 논문, 실기시험 등이 이루어졌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통과가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한 명을 뽑는 최종면접에서도 젊음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던 제가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들 이제 공무원이라는 등 자영이네 집에 소를 잡아 잔치를 벌여야 한다는 등 저보다 더 호들갑을 떨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국회에 누구의 연줄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괴소문까지 나돌았습니다. 단순히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었다면 저도 물론 마냥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예배 문제로 고민하던 제가 최종합격통지를 받았던 그 날, 유일하게 기뻤던 것은 “자영이니까 될 만하다.”라는 동료 선배님들의 칭찬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S.F.C.생활에서 훈련받은 대로 직장생활을 했던 것밖에는 내세울 것이란 게 없었으니 계약직으로 10년 가까이 일해 온 선배님들을 제치고 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새파랗게 어린 후배가 직원이 된 것이 사내에서는 적지 않게 충격적인 일이었음에도, 그렇게 칭찬을 듣는다는 것은 제가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게 생활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만두어야 하는데 왜 나를 붙이셨나?’라는 의문이 가득했던 저는 하나님께서 제가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이 직위를 허락하셨음을 얼마 후 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직원이 된 후엔 후배와 함께 팀장으로서 일하기 때문에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어 예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청년 취업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사실 저에게는 취업이 가장 쉬웠습니다. 왜냐면 늘 하나님께서 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게 이 땅에서의 ‘나그네’ 된 삶을 잘 깨닫고 알게 하셨고, 진정한 홈 스윗 홈은 저 천국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고, 하나님의 일을 구하는 진실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앞으로도 바라는 것은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없어질 세상의 것에 눈길 주지 않고, 독생자를 죽이기까지 저를 사랑하신 하나님 한 분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주어진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고 싶습니다.
제가 이 땅에서 참된 행복자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성도님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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